2023년 3월 5일 남원 실상사를 찾아가는 길목에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남겼던 곳의 포스팅이다. 인월-월평마을-영월사-중군마을-실상사-백장암-황산대첩비, 동편제마을-관음사 등을 돌아보았다.
인월면을 지나 지방도 60호를 따라서 중군마을과 국수교과서를 보고, 길(지방도 60호)을 따라 가면 백장암을 갈 수 있다.
백장암의 연혁과 문화재
전북 남원시 산내면 수청산 중턱에 위치하는 백장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실상사의 부속 암자이다. 실상사 연혁을 보면 실상사는 신라 말에 지금의 백장암 터에 홍척국사(洪陟國師, 770-840년 경 생존추정)가 828년(흥덕왕 3년) 창건하였는데, 규모가 커지자 제자인 수철화상(秀澈和尙817년-893년)에 의해서 지금의 실상사 자리로 옮겨갔다고 전해진다.
실상사는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최초이자 으뜸사찰로 발전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백장암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선종(禪宗)을 개창한 역사와 관련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라 하겠다.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백장암 3층 석탑_국보 제10호》과 《백장암 석등_보물 제40호》의 제작 연대로 보아 사찰의 건립시기는 적어도 9세기(신라 말)로 추정된다.
백장암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중종 25)]의 「전라도 운봉현 불우조」이다. 이에 따르면, “백장사재수청산(百丈寺在水淸山)”이라고 씌어져 있다. 『난중잡록』, 『동국여지지』, 『동여비고』, 『대동지지』 등 대부분의 문헌에서 백장사로 기록돼 있어 17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규모가 꽤 큰 가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실상사가 1468년(세조 14년) 화재로 폐허가 되다시피하여 약 200년 가량 승려들이 백장사에 머물렀을 정도로 백장암은 선종사찰의 맥을 이어왔다. 불행히도 1679년(숙종 5년) 화재로 백장사가 소실되자 다시 사찰을 건립하기로 논의하였는데, 협소한 백장사 터보다 넓은 옛 실상사 터에 절을 짓기로 중론을 모았다. 1680년(숙종 6년) 실상사를 중창한 후로 백장암은 부속암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스님들이 백장선원에서 옛 가풍을 일신(一新)하고자 올곧게 정진하고 있다.
남원 실상사 백장암 석등 / 南原 實相寺 百丈庵 石燈 / 보물 제40호
Stone Lantern at Baekjangam Hermitage of Silsangsa Temple
이 석등은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비교적 완연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받침부에 연꽃이나 난간을 새긴 기법이 옆에 있는 삼층석탑의 조각기법과 동일하여 서로 같은 시기인 9세기경에 세운 듯하다. 석등의 높이는 2.5m이며 팔각형 몸체에는 한 면씩 건너 네 면에 네모진 창을 내었다. 몸체와 받침기둥은 거의 장식을 하지 않았고, 지붕은 간결하면서도 평평하게 처리하였다. 실상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등에 비해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백장암의 석등의 위 설명처럼 간결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부터 보주-옥개석(파손부위가 보인다)-화사석-연화 상대석-중대석(간주석)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석등의 아랫부분 역시 간결하고 소박한 중대석(간주석)-연화하대석-기단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석등의 각 부위 명칭을 정확히 알고 싶다면 지난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 南原 實相寺 百丈庵三層石塔 / 국보 10호
Three-Story Stone Pagoda at Baekjangam Hermitage of Silsangsa Temple
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 것으로, 탑의 구조와 장식이 일반적인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높이 5m인 이 석탑은 받침부가 매우 낮은 반면 1층 몸체는 폭에 비해 높다. 탑이 올라가면서 너비가 별로 줄지 않았다. 탑의 장식 역시 독특하여, 층마다 탑의 몸체에 보살, 선녀, 천왕 등 다양한 인물상을 화려하고도 자유분방하게 새겨 놓았다. 지붕 아래에는 일반 석탑과 달리 연꽃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일반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서 풍부한 예술성과 독창적 상상력을 담아 만든 석탑이다. 마치 나무를 다루듯 돌을 섬세하게 조각한 모습이 시대를 뛰어 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南原 實相寺 百丈庵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at Baekjangam Hermitage of Silsangsa Temple, Namwon
지정(등록)일: 1962.12.20
소재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975
시대: 통일신라시대 9세기
실상사는 지리산 천왕봉 서편에 위치한 절로,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洪陟)이 창건하였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얼마쯤 가다보면 백장암이 나타나는데, 실상사에 딸린 소박한 암자로, 그 아래 경작지에 이 탑이 세워져 있다.낮은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각 부의 구조와 조각에서 특이한 양식과 수법을 보이고 있다. 즉, 일반적인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드는데 비해 이 탑은 너비가 거의 일정하며, 2층과 3층은 높이도 비슷하다. 층을 이루지 않고 두툼한 한 단으로 표현된 지붕돌의 받침도 당시의 수법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탑 전체에 조각이 가득하여 기단은 물론 탑신에서 지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각이 나타난다. 기단과 탑신괴임에는 난간모양을 새겨 멋을 내었고, 탑신의 1층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을, 2층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천인상(天人像)을, 3층에는 천인좌상(天人坐像)을 새겼다.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이 새겨져 있다.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는 이 탑은 갖가지 모습들의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조가 돋보이고 있어, 당시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석탑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글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백장암 삼층석탑 1층 각 면에는 보살상(菩薩像)과 신장상(神將像)*이 있다.
▪석탑 1층 남쪽 면: 문비(門扉)장식과 증장천왕과 권속인 구반다(鳩槃茶)
▪석탑 1층 서쪽 면: 광목천왕과 권속인 부단나(富單那), 용(龍)
▪석탑 1층 동쪽 면: 지국천왕과 권속인 건달파(乾達婆)
▪석탑 1층 북쪽 면: 다문천왕과 권속인 야차(夜叉) 또는 약차(藥叉)
* 신장상(神將像): 사천왕과 권속
백장암 삼층석탑 2층 각 면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상이 있다.
▪석탑 2층 동쪽 면: 주악천인상과 박판(拍板)
▪석탑 2층 남쪽 면: 주악천인상과 생황(笙簧), 동발(銅鉢)
▪석탑 2층 서쪽 면: 주악천인상과 배소(排簫), 요고(腰鼓)
▪석탑 2층 북쪽 면: 주악천인상과 향비파(鄕琵琶), 횡적(橫笛)
전체적인 조형은 단아해 보이면서도 각 층의 조각과 지붕돌 밑면에는 연꽃무늬가 있고 3층만은 삼존상(三尊像)을 새겨 독특하다.
햇빛의 밝기와 그림자에 따라 3층 지붕돌 밑면의 삼존상을(三尊像) 사진에 담기가 정말 어려웠다.
3층 동서쪽 면에는 연꽃봉우리를 든 공양천인상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산신각(山神閣)은 산신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백장암의 문화재
▪삼층석탑 기단부재 / 통일신라 / 금산사 성보박물관
▪청동은입사향로 / 1584년(선조 17) / 보물 제420호 / 금산사 성보박물관
백장사 만력12년명 청동은입사향로
백장사 만력12년명 청동은입사향로는 넓은 전이 달린 몸체에 나팔형 받침이 붙은 전형적인 향로이다. 몸체에 비하여 받침이 빈약한 감이 있지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구연 윗부분에는 범어가 새겨진 9개의 작은 원과 당초문양이 빈틈없이 새겨졌고 몸체에는 범자가 있다. 몸 아랫 부분에는 앙련이 있고 큼직한 굽받침에는 소용돌이 무늬가 있다. 받침대는 매우 날렵한 형태로서 정상에 소용돌이 무늬가 있고, 곡면에는 사실적인 연꽃무늬가 묘사되었다.
몸체의 넓은 전 안에는 ‘운봉백장사은사향완’으로 시작되는 명문이 있고 끝에는 ‘만력12년 갑신3월주성’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만든 때는 조선 1584년(선조 17)임을 알 수 있다. [글 출처: 지리산 실상사 홈페이지_실상사 안내]
▪금동보살좌상(菩薩坐像) / 14세기 추정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 금산사 성보박물관
▪범종 / 1743년(영조 19)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11호 / 백장선원
백장암 소장 범종(百丈庵 所藏 梵鍾) / Bell of Baekjangam Hermitage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11호
이 범종은 1743년에 조성한 것으로 전체높이는 64cm, 직경 42cm이다. 천판이 높게 솟아있는 봉긋한 형태와 음통 및 유곽과 보살상 등 전통적인 조선종의 형식을 따른 작품이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유려한 연화당초문의 조각수법, 전형적인 포탄형의 종신 등이 특징적이다. 하단부의 명문을 통해 봉안장소와 제작연대가 정확하게 밝혀져 있다.
위 문화재의 위치에 따라 확인을 해보았는데, 일단 범종은 찍지 못했다. 현재 대웅전에 있는 범종은 근대에 만들어진 종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3개의 문화재는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있다고 나온다. 삼층석탑 기단부재, 청동입사향로는 전시품목이 아니었다. 금동보살좌상(菩薩坐像)만 확인 가능하다.
가파른 산길을 차로 한참을 올라와야 하는데도 참으로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깊은 산속 실상사 백장암의 국보와 보물 등 문화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인연(因緣)이었을까? 나는 멀지 않은 미래 2023년 8월 4일 다시 한번 오게 된다.
'남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원 국악의 성지와 판소리 (73) | 2024.03.01 |
---|---|
남원 동편제마을,비전마을과 가왕 송흥록, 국창 박초월 생가 (75) | 2024.02.29 |
남원 황산대첩비지(南原 荒山大捷碑址)&어휘각 (91) | 2024.02.22 |
남원 인월면 영월사 (89) | 2024.02.08 |
남원 중군마을 유래와 국수교과서 (23) | 2023.05.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