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근교 완주군 용진읍 간중리에 있는 천년사찰 봉서사(鳳棲寺)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전에 송광사와 망해사를 통해 알았던 진묵대사와 관련이 있는 봉서사를 향해 운전대를 잡게 되었다.
가는 길에 봉서사의 위치를 나타내는 비석이 있어 사진을 찍고 조금 더 올라가니 완주 용진저수지(간중지)가 왼편에 있어 사진을 찍어 보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아이들 체험시설이 좌우로 있어 사진기에 담아본다.
조금더 올라가니 맞게 올라왔다고 봉서재라 써진 비석이 또 나왔다. 봉서재는 밀양 박 씨 제실이 있는 곳이다.
종남산 송광사처럼 봉서사 앞에 서방산이 붙는다. 가는 길에 서방산 등산로 안내도가 있어 서방산에 대해 잠시 알아본다.
서방산(西方山)
높이는 612m이다. 종남산(終南山 610m)에서 이어지는 연봉 중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오도치(五道畤)를 분수령으로 하여 안수산(安峀山 554m)과 남북으로 맞서고 있고, 동쪽으로 되실봉 · 위봉산성과 마주보고 있다. 옆에 있는 종남산과 함께 김제평야와 산간 구역의 경계를 이룬다. 산 이름은 아미타불의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라는 뜻의 서방정토(西方淨土)에서 유래하였다. 주위로 평야와 넓은 들녘이 펼쳐져 위치상 조망이 매우 좋은 산으로 헬기장이 있는 정상에서는 봉실산, 미륵산 , 대둔산 , 안수산, 주줄산(운장산), 만덕산, 김제평야가 한눈에 보이고 맑은 날에는 서해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종남산과 서방산 사이 서남쪽 골짜기에는 신라 성덕왕 7년(727)에 창건한 봉서사(鳳棲寺)가 있는데, 숱한 이적을 행한 조선 중기의 고승 진묵 일옥(一玉)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수도했다고 전해진다. 진묵이 서방천변에서 펄펄 끓던 가마솥의 매운탕을 먹었는데, 상류에 대변을 보니 물고기들이 펄펄 살아서 헤엄쳐 내려갔다는 이적도 함께 전해진다.
서방산 역시 진묵의 일화와 엮여 있었다. 주차를 하고 바로 봉서사를 가지 않고 왼편에 진묵대사 부도가 있는 안내판을 따라가 보았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조금 올라가니 자연석에 조각된 듯한? 마애삼존불상이 있었다.
대략 높이는 3m정도...
우리나라의 불상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보는 위치에 따라 느낌 및 표정이 달리 보여 신기하다!
마애삼존불상 측면으로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납골당이 있었다.
길 옆으로는 개망초가 활짝 펴있었다.
종종 원추천인국도 펴있다.
여기에서 다시 빠져나와 진묵대사 부도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년 ~ 1633년 /이름은 일옥(一玉). 진묵은 법호(法號)이다.
진묵대사는 조선 명종 17년(1562)에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萬頃縣 佛居村,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리 성모암 자리)에서 태어나서 임진왜란 시기를 거쳐 인조 11년(1633)에 72세로 입적하였다. 진묵 대사 본인이나 제자가 쓴 행적(行蹟)은 없는데, 1850년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짓고 전주 봉서사(鳳棲寺)에서 간행한 『진묵대사유적고(震黙大師遺蹟考)』에 그의 일화가 18편이 전한다. 구전하는 진묵 대사 관련 전설은 현재 32편 정도가 채록되었다. ...(중략)...진묵은 부처의 화신이라 신통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면서 정반대로 속인처럼 술을 *곡차(穀茶)라고 하면서 마시고, 물고기(*해산물)를 먹었다. ...(중략)...
그가 어렸을 때 사화(士禍) 같은 일로 시대는 암울하였고, 서른 살 때 일어난 임진왜란 7년간 백성은 비참하였다. 이렇게 당시 답답하고, 불안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일반 백성이 구원자(救援者)이자, 활불(活佛)이자, 현세불(現世佛)이자, 위로자(慰勞者)인 신통력 있는 기인(奇人)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을 때 진묵 대사가 나타났고, 이로 인해 그의 활동을 담은 전설이 나왔다. 진묵 대사의 전설에는 중으로서 속인과 같이 술도 먹고 고기도 먹는 반속반불승(半俗半佛僧) 모습으로 진묵 대사가 형상화되듯이 속인을 진정으로 구원해 주었으면 하는 백성들의 바람과 더불어,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불교에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글 출처: 한국민속문학사전]
*곡차(穀茶)와 석화(石花)의 어원이 진묵대사와 얽혀있다.
석화에 얽혀있는 진묵대사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아래 김제 망해사 편을 클릭!
오늘날도 진묵대사의 부도 앞에는 *곡차(穀茶)가 끊이지 않고 놓여있다.
진묵대사 부도 | 震默大師浮屠
The Stupa of the Monk Jinmuk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이 부도는 조선 시대에 진묵 스님을 추모하여 세운 것으로, 전체 높이는 1.8m이다. 화강암을 다듬어 만들었으며, 여러 겹의 받침돌 위에 둥근 몸체를 얹었다. 지붕 머리에는 연꽃을 조각하였으며, 꼭대기 부분을 비교적 충실하게 갖추었다. 진묵 스님은 김제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7세 때 불교에 몸을 담았다. 주로 완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진묵스님은 이곳 봉서사에 머물면서 참선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불경을 공부하였다. 그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봉서사는 한국전쟁 때 불탄 것을 다시 지었다.
부도전에서 나와 봉서사 입구 즈음에 오니 수기의 비석들이 있었다.
가장 좌측에 노벨평화상~ 글씨가 보인다. 세계불교 초대법왕 일붕(一鵬) 서경보(徐京保)스님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만든 비석 같다! 실제로 스님은 노벨평화상 후보로 2회 추천되었다.
봉서사 대웅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서방산 봉서사(全羅北道 完州郡 西方山 鳳捿寺)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西方山) 사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
"이곳 대웅전 현판의 편액은 세계불교 초대법왕 일붕(一鵬) 서경보(徐京保)스님이 쓰셨다고 합니다."
한국불교 태고종 종찰이다. 727년(성덕왕 26)에 창건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창하였다. 조선시대 선조 때에는 진묵(震默)이 중창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전국승려대조사(全國僧侶大祖師)로 추앙받으며 중생을 교화하였던 유서 깊은 절이다. 1945년 전까지는 지방 굴지의 대찰이었으나 6·25 때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어 폐사가 되었다가, 호산(湖山)이 1963년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하고 1975년에 삼성각(三聖閣)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관음전·칠성각·진묵전(震默殿)·요사채 등이 있으며, 6·25전쟁 전에는 이밖에도 명부전·나한전·삼성루(三聖樓)·천왕각(天王閣)·동루(東樓)·서전(西殿)·일주문(一柱門)·상운암(上雲庵) 등이 있었다. 문화재로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인 진묵대사부도를 비롯한 몇 기의 부도가 있으며, 1979년에 세운 일붕선시비(一鵬禪詩碑)가 있다.
이 절에는 진묵대사와 해인사 대장경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이 절에서 수도하던 진묵은 자주 해인사를 내왕하면서 대장경을 모두 암송하였다 한다. 하루는 진묵이 제자를 데리고 급히 해인사로 갔는데, 그날 밤 대장경각 옆에서 불이 났으나 도저히 끌 수 없게끔 되었다. 이때 진묵이 솔잎에 물을 적셔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번 뿌리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불길을 잡음으로써 대장경판의 위기를 구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나마 많이 보았던 조계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느낌이 있었다.
아래는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시비의 내용이다. 갑자기 서산대사(법명은 휴정休靜)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진묵대사가 임진왜란 전후에 살았던 승려로... 임진왜란에 승병을 이끌고 싸움에 나선 서산대사와 인연이 있을지도...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시비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 길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난행) 모름지기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隨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석탑과 시비 좌측으로 빠져나와 바로 옆에 범종각(梵鐘閣)으로 가 본다.
범종각(梵鐘閣) :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으로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법구사물이 걸려있다.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법구사물의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송광사 2편 URL 클릭
범종각의 아래 기단석에 한자가 쓰여있습니다. 진묵대사의 시(詩)라고 합니다. 봉서사에 와서 옛날 대사님들의 시(詩)를 만나게 될지는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震默大師 悟道誦(진묵대사 오도송)
天衾地席山爲枕(천금지석산위침)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로 삼고
月燭雲屛海作樽(월촉운병해작준)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大醉居然仍起無(대취거연잉기무)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却嫌長袖掛崑崙(각혐장수괘곤륜) 도리어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꺼려지네.
이제...왔던 길을 돌아 진묵전(震默殿)과 삼천불전(三千佛殿)으로 향합니다. 이때부터 사진에 이상한 점이... 에잇 설마!~
약간 심령사진 비슷한 게...ㄷㄷ 이런 분위기 싫은데...
진묵전의 풍종을 찍어봅니다.
진묵전(震默殿)은 정측면 1칸의 규모로 진묵대사와 그의 어머니 영정이 모셔진 공간입니다.
진묵전(震默殿)의 전(殿)만 보더라도 누구의 편액인지 알겠죠? 앞서 대웅전과 같은 일붕(一鵬) 서경보(徐京保)스님의 편액입니다. 이제 가장 최근에 지어진 듯한 삼천불전으로 GO GO!~
삼천불전(三千佛殿)은 삼천개의 불상(정말 많다!)이 있는 건지...*삼천배(三千拜)를 올리는 곳 이겠지요.^^::
*삼천배(三千拜) : 불교에서 번뇌를 잊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삼천 번 하는 절. 삼천은 온 세상과 그 안의 것을 뜻하는 숫자로, 삼천 번 절을 하는 것은 우주의 모든 번뇌가 소멸됨을 상징한다.
속세에 퍼진 코로나19가 어디 있느냐는 듯~ 깊은 산속에 있는 자연은 아무것도 모른 체 지금의 여름을 만끽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 산사의 풍경소리가 더욱 시원하게 들려온다.
지금까지 늘 사찰편에서 고생하는 전주 럭셔리크로우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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