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8경(萬頃八景)을 블로그에 올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2023년 만경강을 따라 여행을 떠났던 게 벌써 1년 전입니다. 현재 8경~1경까지 모든 장소를 찾고 사진에 담아왔었습니다. 오늘은 만경2경 신창지정(新倉之情)을 가기 전에 봤던 춘우정 김선생 투수순절비와 새창이다리(새창이나루터)의 이야기를 옮겨봅니다.
춘우정 김선생 투수순절추모비(春雨亭 金先生 投水珣節追慕碑)_좌 / 비의 글씨는 강암 송성용의 글씨이다.
춘우정 김선생 추모방명비(春雨亭 金先生 追慕芳名碑)_우
춘우정 김선생 투수순절비
▪관리번호: 51-1-20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자: 도강김씨 훈도공파 춘우정보존회
도강김씨(道康金氏), 충민공(忠敏公) 회련(懷鍊)의 후예로 정읍시 정우면 산북리에서 경흠의 아들로 태어난 춘우정(春雨亭) 김영상(金永相 1836-1911)은 16세 때 선조들의 고향인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원촌으로 이사하여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 선생 문하에서 수학(修學)하며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충효정신(忠孝精神)을 배웠고 당대의 거유(巨儒)인 노사 기정진, 간재 전우 등과도 교유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이 국권을 침탈하자 전국의 우국지사들이 척일을 부르짖으며 벼슬을 버리고 연합상소를 올렸으며 이듬해에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무성서원에서 창의할 때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등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순종 4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후 왜추(倭酋)가 조선의 지조 있는 선비들을 회유하고자 이른바 은사금(恩賜金)*을 주었으나 거절할 뿐만이 아니라 사령서에 적힌 자신의 성명 3자를 찢어 버렸고 왜 헌병의 팔을 물어뜯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일왕에 대한 불경죄를 저질렀다 하여 1911년 4월에 동곡헌병대로 연행되었다가 군산 감옥으로 이송되던 중 김제 만경강 사챙이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다 따르던 손자 환각(煥珏)에게 의대찬을 남기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왜 헌병에게 구출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군산감옥으로 이송되어 단식 8일만에 순절하였다. 1978년에 뜻있는 지방 인사들이 김제 만경 사챙이 나루터에 춘우정 김선생 투수순절비(春雨亭 金先生 投水殉節碑)를 세웠으며 정부에서는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은사금(恩賜金): 1910년 한일병합(경술국치_庚戌國恥)에 협조한 친일파들에게 일왕이 10만~83만엔의 돈을 지급한 것. 은사금을 받은 예로 이완용은 백작 작위와 함께 15만엔(현재 가치로 약 30억), 고종의 친형 이재면은 공 작위와 함께 83만엔(현재 가치로 약 165억)을 받았다. 최하 10만엔이니, 춘우정 김영상은 약 20억과 작위를 받지 않은 것이다. [전주 럭셔리크로우]
춘우정 김선생 투수순절비의 소개글에 한자가 많아 다시 한글로 써 보았다.
이곳新倉(신창)나루에 우뚝 서 있는 珣節追慕碑(순절추모비)는 韓末義士春雨亭金先生(한말의사춘우정김선생)의 忠節(충절)을 기리고자 함이다. 先生(선생)은 四二九六年(단기4296년 / 1963년) 三一節(3.1절)에 獨立有功者(독립유공자)로 大統領褒賞(대통령포상)에 追敍(추서)되었으며 四三二四年(단기4324년 / 1991년) 光復節(광복절)에 愛國勳章愛國章*(애국훈장 애국장)으로 昇格追敍(승격추서)되었다. 이 殉節追慕碑(순절추모비)는 道內有志(도내유지)들의 誠金(성금)으로 四三一ㅇ年(단기4310년 / 1977년)에 建立(건립)되었으나 十七年(17년)의 歲月(세월)이 흐르는 동안 周邊環境(주변환경)이 荒廢(황폐)하여 先生(선생)의 英靈(영령)에 罪悚(죄송)스럽게 여기던 즈음에 從曾孫湧基甫(종증손용기보)가 周圍(주위)의 淨化(정화)를 主張(주장)하고 本孫(본손)과 協心合力(협심합력)하여 物心兩面(물심양면)의 獻誠(헌성)을 行(행)하였다. 이에 그의 爲先心(위선심)을 讚揚(찬양)하면서 그 顚末(전말)을 記述(기술)한다. 檀紀四三二六年十一月 日(단기4326년 11월 일)
全北大學校名譽教授(전북대학교명예교수) 李康五(이강오) 謹識(근지) / 玄孫(현손) 鎮惇(진돈) 謹書(근서)
*愛國勳章 愛國章(애국훈장 애국장)은 建國勳章 愛國章(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수정함이 타당하다.
만경대교(새창이다리)
새창이다리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33년 昭和(소화) 8년 공사비 25만원으로 준공되었다. 김제평야의 쌀을, 새로 만들어진 신작로(新作路)를 거쳐서 군산을 통해 일본으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이다. 세월이 흘러 다리가 노후되고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1989년 바로 옆에 새로운 만경대교를 만들게 되어서 지금은 차량통행이 금지된 상태다.
한때 다리 위에서는 망둥이와 숭어 낚시로 강태공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다리 아래 만경강에서는 실뱀장어 잡이를 통해서 이곳 주민들이 큰소득을 올리기도 했으나 새만금공사로 해수유통이 막히면서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풍요의 강 만경강 이야기
황금빛 들녘과 푸른 물길이 만나는 풍요의 강 만경강입니다. 새창이다리(만경대교, 1933년 준공)는 일제 수탈의 흔적이자 지역의 애환이 깃든 곳입니다. 조선시대 고지도인 ‘대동방여전도’와 ‘조선지형도’를 통해서도 당시와 지금의 지형을 비교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만경강을 따라 수많은 인연이 함께했던 이곳에서 지난 역사의 자취를 느껴보세요.
현재 새창이다리는 여행자 인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김제의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판과 사진이 붙어 있다.
걸음을 옮기며 김제의 관광자원도 살펴본다. 현재 블로그의 사진은 2024.09. 사진으로 1년 전 사진은 낡고 바랬는데, 새롭게 보수를 해놓았다.
김제 농·특산물_지평선몰
친환경 농·특산물브랜드 지평선은 자연의 신선함을 그대로 소비자의 식탁에 배달해 드리기 위하여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한 생산에서 판매까지 관리하여 고품질의 농특산물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며, 소비자의 건강을 고민하는 믿음직한 친환경브랜드가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증산법종교_등록문화재 제185호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증산법종교 본부의 모습이다. 증산법종교 본부는 1949년 증산도 교주 강일순(강증산) 부부의 무덤을 봉안하면서 형성된 종교 성지로서 묘각인 영대와 증산 미륵불을 봉안한 삼청전을 비롯하여 1950년대 지어진 많은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금산교회_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
금산교회는 1905년 미국 선교사테이트(한국명 최의덕)에 의해 이곳 마방 주인이었던 조덕삼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의해 남녀가 분리되어 예배를 볼 수 있도록 “ㄱ”자형 구조로 건물을 지었는데 당시 건물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수류성당_水流聖堂
1895년 모악산 자락 화율리 상하마을에 자리 잡았던 수류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전소되어 1959년에 지은 벽돌식 건물이다. 이전에는 목조건물이었으며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이기도 하다.
새창이다리 아래로 만경강 자전거길이 지나간다. 다리에서 보이는 나루터가 현재의 새창이나루터로 보인다. 그 앞으로 만경 2경 "신창지정(新倉之情)_새창이 나루를 오가던 사람과 이곳에 남겨진 역사문화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나루터 앞에 보이는 정자가 바로 신창정(新倉亭)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만경 2경 신창지정(新倉之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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