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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익산 왕궁리 5층석탑(국보 제289호)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1.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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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과 배롱나무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과 배롱나무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이다.
높이가 9m인 이 석탑은 단층기단, 얇고 넓은 옥개석, 3단 옥개 받침 등이 특징적이다.
1965~1966년에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다.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에서는 금강경판 19장,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 같은 사리장엄구 (국보 제123호)가, 석탑 밑에서는 가로16.8m, 세로 12.7m인 건물 기초가 발견되었다. 이건물 기초를 보면 이 석탑은 본디 목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탑 주변에서는 ‘왕궁사, 관궁사, 대관관사, 대관궁사’라는 글자가 적힌 통일 신라 시대 명문 기와가 여럿 출토되었다. 지금도 이 탑의 축조 시기를 놓고, ‘백제, 통일 신라, 고려 초’라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왕궁리 오층석탑 입면도
도면_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입면도

 

왕궁리 오층석탑과 소나무
왕궁리 오층석탑과 소나무

 

마한시대의 도읍지로 알려진 익산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基壇)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왕궁리 오층석탑_전주 럭셔리크로우
왕궁리 오층석탑_전주 럭셔리크로우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 올려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장식이 남아있다.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과 소나무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과 소나무


지붕돌이 얇고 넓어 빗물을 받는 낙수면이 평평한 점이나, 탑신부 1층의 지붕돌이 기단보다 넓은 점 등 백제석탑의 양식을 일부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언제 제작되었는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으나 1965년 보수작업 때 기단의 구성양식과 기단 안에서 찾아낸 사리장치의 양식이 밝혀지면서 그 시기가 비교적 뚜렷이 밝혀졌다. 즉, 백제의 옛 영토 안에서 고려시대까지 유행하던 백제계 석탑양식에 신라탑의 형식이 일부 어우러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왕궁리 오층석탑_전주 럭셔리크로우
왕궁리 오층석탑_전주 럭셔리크로우


이 석탑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유물들은 국보 제123호로 일괄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과정에서 지금의 석탑에 앞서 목탑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이 탑 밑부분에서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다. [글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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