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와 함께 떠날 곳은 익산 한국불교 화엄종 석불사입니다. 익산 석불사(石佛寺)는 2022년 7월 25일 찍은 사진을 가지고 포스팅 합니다. 이 곳 석불사에는 불신에 광배와 대좌를 갖춘 현존하는 백제 최대 불상인 연동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5호)이 있습니다.
미륵산을 지나 연동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석불사거리가 나온다. 한국불교 화엄종 석불사는 사거리에서 바로 보인다. 석불초등학교 옆에 있다. ▪ 석불사 소재지: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연동리)
보통 다른 사찰 일주문에는 대문이 없지만 석불사에는 대문이 있습니다. 천왕문이 없어서인지 일주문 양 옆으로 천왕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면 정면에 바로 종각이 나옵니다.
위 사진에 범종의 측면부에 석불사石佛寺라 써있습니다. 범종의 용뉴와 용통(음관)이 보입니다.
종각의 중앙에는 법구사물인 범종이 있으며 범종의 상단에는 용뉴가 몸통에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종각이 작아서인지 목어 및 법고는 없습니다. 운판에는 석불사 (불기 2536년 11월=1992년 11월)가 새겨져있습니다.
범종, 운판, 목어, 법고를 법구사물이라 하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아래 완주 종남산 송광사 2편을 찾아주세요.
일주문의 우측에는 삼성각三聖閣과 야외 불단이 있습니다.
삼성각 우측으로 부도 2기 및 약사여래불과 산신님이 있습니다.
대웅전 大雄殿 앞으로는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5호)을 알리는 안내판 및 비석이 있습니다.
석불사 석조여래좌상의 신비로운 현상
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45호 석조여래좌상은 '땀 흘리는 부처님’ 으로 알려져 있다. 불두를 제외한 불상과 좌대, 광배에서 물이 스며 나와 흐르는 현상을 보이곤 한다. 그 현상을 목격한 후에는 나라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곤 해서 사람마다 다양한 추측을 하기도 한다.
▪ 1950년 6월 25일 전 3일 정도 현상을 보임 ▪ 1979년 10월 10일경쯤 하루 정도 현상을 보임
▪ 1980년 5월 18일 전 현상을 보임 ▪ 1997년 11월 전 현상을 보임
▪ 2009년 5월 23일 전 반나절 정도 현상을 보임 ▪ 2013년 2월 1일 오후 6시경 현상을 발견
▪ 2016년 2월 13일 오후 8시경 현상을 발견 ▪ 2016년 3월 5일 오후 5시 30분경 현상을 발견
▪ 2020년 1월 8일 오전 4시경 현상을 발견-오전에 물기가 마르기 시작
익산 연동리 석불사 석조여래좌상_주변 문화재 발굴조사 및 복원고증 학술연구
석불사 석조여래좌상은 현존 최대 규모의 백제 불상으로 1989년 10월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차 발굴조사시 보호각을 새로 축조하는 과정에서 긴급하게 실시해서 석불사 일대를 충분히 조사하지 못했다. 1차 발굴조사 결과 연동리사지 창건은 백제 무왕 때인 7세기 전반 미륵사 창건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되며, 출토유물 중 평기와의 제작수법이 부여 정암리 와요지 출토품과 같고 사역 내에서 확인된 방형초석의 존재로 볼 때, 익산지역에 건립된 백제사찰 중 가장 초기에 속함을 알려준다. 금당지와 연관하여 전체적인 건물의 윤곽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금당지 내부에서 초석 적심 2개소와 굴립주공 4개소가 확인되어 2층 건물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정방향에 가까운 평면 형태에 규모는 동서 13.8m, 남북 12.8m 내외의 건물지로 추정된다. 백제시대로 판단되는 다량의 평기와가 출토되었고, 미륵사지에서 상감청자와 함께 출토되는 어골문과 국화문, 어골문과 반호문이 결합된 형태의 평기와 등문양이 확인되어 백제시대에 창건되고 고려시대경까지는 법등이 이어 오다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석불은 당시 우리나라 최대의 원각여래좌상으로서 귀중한 유례이며, 서해안의 서산과 당진에 있는 석조불상의 유례와 더불어 우리나라 석상조각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광배에 있는 연화문과 그 주위에 화불과 더불어 훼룡문계 화염문을 조각하였다. 이러한 화염문은 금동불상과 더불어 서산마애불에서도 나타나는데 연동리사지 석조광배에서 절정을 이룬다. 나아가 일본 아스카시대, 조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석불좌상은 백제에서는 최초의 대형 원각불이며, 최초 최대 규모의 광배도 석탑과 더불어 금마저 석조문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불두복원안 사업'이 추진되어 불두 가상복원안은 '국립익산박물관' 에 전시되어 있다.
그래서 저는 익산제석사지, 익산쌍릉(무왕릉), 왕궁리유적 등을 포스팅하면서 국립익산박물관에 있는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복원안을 찍어왔습니다. 사진은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제 1 안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과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307호)을 바탕으로 한 복원안
제 2 안
부여 구교리사지 출토 소조 불상과 일본 호류지 금동삼존불입상(헌납 보물 제143호)을 바탕으로 한 복원안
제 3 안
익산 제석사지 폐기장 출토 소조 천부상과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 석조여래상을 바탕으로 한 복원안
익산 연동리사지 발굴조사
2011년 11월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2차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기와가마 2기와 수혈유구 1기가 확인 되었으며, 토기류는 2호 기와가마와 수혈유구에서 대부분 편으로 출토되었다. 1호 가마는 2호 가마가 축조되는 과정에서 파괴되어 정확한 구조를 파악할 수 없는 상태이며, 2호 가마의 형태를 종합해 보면 지하식 평요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와요와 출토된 연화문수막새에 대해서 사비백제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연화문수막새와 녹유연목와, 인장와가 출토되었다. 막새와 속성을 검토해 보았을 때 연동리 유적의 수막새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유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출토된 연목와는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연목와에서 같은 문양의 유물이 확인되는 바 연동리 2호가마와 미륵사지와의 관련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인장와의 명문은 '上部乙瓦' 로 추정되는 인장와 1점이 확인된다. 이는 왕궁리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으며, 인장의 형태와 크기, 글씨체 등이 유사하여 연동리 유적의 인장와와 비교, 검토가 가능할 것을 보인다. 평기와의 통쪽흔이 확인되는 암키와의 하단에는 통쪽매듭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확인되는데, 이 흔적은 미륵사지와 왕궁리, 제석사지 출토기와에서 흔하게 확인되는 제작기법으로 백제기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의 머리가 없어진 이야기
정유재란 당시 순식간에 남원을 장악한 일본군 장수의 얼굴엔 늠름함과 거만함이 묻어 나왔다. 남원을 평정하고 북으로 향하는 일본군의 대열은 마치 뱀의 몸뚱아리처럼 고요하고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전주도 손쉽게 삼킨 뱀의 행렬은 완주를 거쳐 금마를 향하고 있었다. 금마와 가까워지자 안개가 뱀을 삼키기 시작하였고 북으로 나아갈수록 일본군의 행렬은 안개에 막힌 채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황한 일본군 장수는 부하들을 사방으로 흩어지게 해 원인을 찾게 했다. 한참 후에 나타난 정찰병의 보고는 짧았다. 주위에 석불 뿐이라는 짧은 보고에 일본 장수는 머뭇거림 없이 석불로 향했다. 안개 사이로 번뜩임이 일었고 석불의 목이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안개가 걷히고 정유재란이 깊어지고 있었다. [글 출처 : 세계유산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스토리텔링 가이드북]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益山 蓮洞里 石造如來坐像)
Stone Seated Buddha in Yeondong-ri, Iksan
이 불상은 머리만 없어졌을 뿐 불신(佛身), 대좌(臺座), 광배(光背)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백제의 작품이다. 지금의 머리는 새로 만든 것이며, 불상의 현 신체 높이는 156㎝이다.
당당한 어깨, 균형잡힌 몸매, 넓은 하체 등에서 서툰 듯 하면서도 탄력적이고 우아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자락은 길게 내려져서 사각형의 대좌를 덮고 있는데, 앞자락은 U자형, 좌우로는 Ω형의 주름이 대칭으로 2단씩 표현되어 있다. 왼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세번째와 네번째 손가락을 구부려 다리에 올려놓은 특이한 손모양을 하고 있다.
광배의 중앙에는 둥근 머리광배가 볼록 나와있고 그 안에 16개의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바깥에는 방사선으로 퍼진 특징이 있다. 몸광배도 볼록하게 나와있고 바깥부분에는 불꽃무늬를 배경으로 7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이 석조여래입상은 대좌의 모습과 광배에 새겨진 무늬를 볼 때 장중하면서도 세련된 특징을 보여주는 600년경의 희귀한 백제시대 불상으로 그 의의가 높다. [글출처: 문화재청]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益山 蓮洞里 石造如來坐像)은 7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불신에 광배와 대좌를 갖춘 현존하는 백제 최대 불상으로 높이는 앉아있는 크기가 156cm, 대좌는 폭 225cm, 높이 45cm이다. 또한 광배는 326cm로 백제 불상 중 가장 거대하다.
광배의 중앙에는 세 겹의 동그라미 속에 16개의 연꽃무늬를 조각했고 바깥부분에는 불꽃무늬를 배경으로 7구의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이 불꽃무늬는 백제시대 훼룡문계虺龍文系 무뉘라 한다.
역시 연동리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아쉬운 점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와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제307호)처럼 국보의 품격을 가졌음에도 불두가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두를 찾고자 하는 현재의 노력(복원고증)은 찬란한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에 박수를 아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불신에 광배와 대좌를 갖춘 현존하는 백제 최대 불상이 있는 연동리 석불사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포스팅을 하는 전주 럭셔리크로우 였습니다. 이 포스팅이 도움이 되신분들은 구독과 공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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