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에 백제 무왕 때 세운 익산 제석사지를 포스팅했었습니다. 오늘은 백제 무왕의 흔적을 따라 무왕이 살았던 생가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백제 무왕이 서동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찾아본다는 느낌으로 포스팅을 할까 합니다.
서동생가터는 익산 무왕로 바로 옆 연동제(마룡지)에 붙어 있습니다.
이 탑은 이리로타리클럽에서 백제 문화의 역사 문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서동생가터 Seodong's BirthPlace / 용의 아들이 태어난 마룡지
백제 무왕의 탄생 설화 배경인 마룡지는 이른 여름부터 홍련이 핀다. 연못에 비친 검붉은 홍련은 용이 붉은 혓바닥을 내민 것처럼 기세등등하고, 버드나무 가지는 잠룡이 승천하듯이 바람 불면 수면 위에서 초록빛으로 출렁인다.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남쪽 연못가에 살았는데, 그곳에 살던 용과 인연을 맺어 서동을 낳았다.’고 전한다. 여기서 남쪽 연못이 이곳 마룡지다. 서동의 어릴 적 이름인 맛동과 용의 연못을 합치면 ‘용이 된 서동의 연못’ 이라는 뜻의 마룡지가 되기 때문이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농경문화권에서 왕을 상징한다.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가 비를 부르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용의 아들로 태어난 서동은 마룡지 주변을 뛰놀며 자랐다.
훗날 「서동요」의 기운을 얻어 신라의 선화공주와 혼인한 이후에도 한동안 마룡지에서 살았을 것이다. 서동은 효성이 지극하여 마를 캐어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훗날 마를 캐던 자리에서 다섯 덩이의 금을 얻었고 사람들의 인심까지 얻었다. 마침내 백제의 30대 왕이 되어 빼앗긴 영토를 되찾으면서 서동은 스스로 용의 아들임을 증명했다.
마룡지 일대에서는 주춧돌과 백제 시대의 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되어 서동의 생가터로 추정되고 있다. 마룡지의 북쪽에는 서동이 물을 길러 마셨던 ‘용샘’과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마를 캤다는 ‘오금산’ 이라는 지명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
<문헌으로 보는 서동생가터>
『삼국유사』 2권 「기이」 무왕,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권33 익산군, 『금마지』 상 고적, 『대동지지』 「팔도지지」 전라도 익산
주차장 앞으로 익산 스템프투어(도장+책자)와 서동생가터 임시 조성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동생가터 정비 사업개요 안내판의 내용을 보면 사업기간이 2017~2022년으로 총 6개년 계획으로 나오며 총사업비도 194억원으로 토지매입 중이라 쓰여있지만 조감도의 모습으로는 사업의 30% 정도 밖에 진행이 안된 것으로 보였다. 지금은 2022년 7월인데... 아마도 계속해서 추가 정비가 있는 모양이다.
서동광장 바로 좌측 나무 데크 길을 따라 마룡지(연동제)쪽으로 자리를 옮겨 본다.
7월이라 마룡지(연동제)의 연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주 덕진공원, 송광사 연꽃 등을 많이 봐왔지만, 이곳의 연꽃은 색이 진한 게 특징입니다.
마룡지의 끝부분까지 찍고 다시 돌아오는 길 안내판의 내용이다.
마룡지와 서동생가터 馬龍池 薯童生家跡
Maryongji Pond and Former Site of Seodong's Birthplace
삼국유사 무왕조에 의하면 「백제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 이고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서울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연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 고 기록되었다. 이 연못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마룡지이며 마룡지 동측에서 초석과 백제시대 기와편이 다량 수습되어 서동의 생가터로 알려져 있다. 용은 왕을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로서 백제 왕족이었던 무왕의 아버지가 익산에 내려와 살면서 장을 낳았고 오금산*에서 마를 케어 생업을 삼던 서동薯童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금을 얻어 백제 제30대 왕위에 오르고 익산으로 천도하였다.
*오금산(五金山): 산에서 마를 캐다가 금 다섯 덩이를 얻은 곳에서 이름을 오금산(五金山)이라 했다는 기록이 금마지(金馬誌)에 써있다. 또한 오금산에는 무왕이 어머니를 위해 세웠다고 하는 오금사지(五金寺址) 흔적이 있다.
다섯 덩어리의 황금이 나온 오금산(五金山) 을 알고 싶다면 아래 URL클릭 시 이동~
아래 지도에서 서동생가터-오금산-익산쌍릉(무왕릉)의 위치는 삼각축을 형성하고 있다.
사랑을 이어주는 서동생가? ㅎㅎ 서동생가터와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이다. 마룡지와 대나무 숲 사이에 서동모와 지룡 조형물도 있다.
서동모(母)와 지룡(地龍)이 무왕이 건립한 백제 왕궁*을 바라보고 있다. / *백제 왕궁: 왕궁리유적
서동(薯童) 탄생 설화
“백제 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고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서울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 못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 아이 때 이름은 서동(薯童)이다. 재기(才器)와 도량(度量)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늘 마를 캐어 팔아서 생업을 삼았으므로 나랏 사람들이 서동이라 했다” 『삼국유사』, 무왕조
솔직히 말해서 서동생가터 정비 사업 조감도 내용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면 괜찮겠지만 조형물 몇 개와 중복되는 내용 및 안내판 등 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곳은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고도리석불입상, 미륵사지, 무왕릉(익산쌍릉)을 볼 때 잠시 들렀다 가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 포스팅을 하고 나서 백제시대 유물이 나오고 있어서 다시 서동생가터의 복원 및 유적지와의 관계성이 좋아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익산 쌍릉_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
다음 편은 서동요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무왕의 마지막 흔적지인 무왕릉(익산 쌍릉)을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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