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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국립전주박물관 이집트 특별전_1부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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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지난 2022년 8월 14일, 15일 이틀간 가족과 함께 다녀온 전주국립박물관에 자리 잡은 어린이박물관(이집트 특별전)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유물에 대한 설명은 전시실에 있는 내용을 옮겨왔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사진 찍기도 무리였으나 두 번을 가서 많은 양의 정보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포스팅이 전시회를 놓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집트 특별전
이집트 특별전

 

2022 국립전주박물관 순회 특별전 [어린이박물관]

이집트 / EGYPT_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 1부

어린이박물관 앞
어린이박물관 앞

 

어린이박물관 입구
어린이박물관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이집트 / EGYPT_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천 년경 나일강 하구에서 시작되었다. 나일강은 매년 범람하여 이집트 사람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선물하였고, 홍수를 극복하려는 노력 에서 천문학과 수학, 달력이 생겨났다. 또 상형문자를 이용한 기록 문화가 발달하여 이집트 역사는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이 썩지 않도록 미라로 만들었다. 탄생에서 죽음 뒤 세상까지 신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믿어 여러 신을 숭배 하기도 했다.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이집트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이집트 문명 초기인 고왕국 시대(기원전 2675-2170년경)에는 신의 아들로 불린 파라오가 웅장한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중왕국 시대 (기원전 2008~1630년경)를 거쳐 신왕국 시대(기원전 1539-1075년경)가 되면 람세스 2세를 비롯한 강력한 파라오들이 등장하여 영토를 넓히고 주변 국가와 활발히 교역하였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 로스대왕(기원전 356-323년)의 정복으로 이집트 문화는 그리스 문화와 융합하였다.

헤로도토스, 역사 2권 35장
헤로도토스, 역사 2권 35장

 

이번 전시는 이집트 유물 소장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브루클린 박물관 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대여 받아 진행했던 상설전의 순회전이다. 이 전시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2022년 8월 17일까지 선보인다. 이 전시실은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및 브루클린박물관이 공동 기획하였습니다.

고양이 머리부분
고양이 머리부분

 

고양이 Cat

프롤레마이오스 시대-로마시대 / 기원전 305~기원후 100년 / 나무, 금박을 입힌 석고, 청동, 수정, 유리

고양이는 여신 바스테트를 상징한다. 바스테트는 태양신 레의 딸이며 하이집트를 수호하는 신이다. 속이 꽉 찬 이 나무 조각상은 바스테트 신전에 바치던 공물이었다. 고양이 양쪽 귀사이에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 스카라브가 박혀 있는데, 이것은 고양이 털의 줄무늬를 예술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고양이 Cat
나무, 금박을 입힌 석고, 청동, 수정, 유리

피라미드 모양의 새김돌 / 석회암
피라미드 모양의 새김돌 / 석회암

 

피라미드 모양의 새김돌 / Small Pyramid Shaped Stone

신왕국~제3중간기, 제30~22왕조 / 기원전 약 1185~718년 / 석회암

여성의 무덤에서 출토된 작은 피라미드이다. 네 면에 장식된 부조에는 이집트인의 세계관이 담겨 있다. 앞면인 감실과 뒷면에는 사후세계와 연관된 주요 신들인 오시리스와 레 신에게 죽은 이가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면에는 무덤 주위를 날아다니는 인간의 머리를 한새(바ba)가 부활의 상징인 제드 기둥에 앉아 있다. 왼쪽 면에는 호루스와 토트가 죽은 이의 미라를 앞에 두고 정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피라미드 모양의 새김돌 확대
피라미드 모양의 새김돌 확대

 

이집트의 역사
이집트의 역사

 

문자와 예술 / 이집트의 역사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시작된 이집트 역사에는 31개의 왕조와 무수히 많은 왕들이 존재했는데, 왕의 재위 기간이나 사건이 구체적인 연도와 함께 알려져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고대 이집트 문화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자세히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집트인이 사용했던 문자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기원전 3천 년경 이미 여러 가지 사물을 본뜬 문자를 무덤의 벽이나 비석, 조각상, 돌로 만든 그릇 등에 새겨 넣었다. 이집트 문자는 그림문자인 성각문자와 이를 빠르게 흘려 쓴 흘림체가 있었다. 당시에 문자를 사용하려면 특별한 훈련을 받아야 했으므로, 기록을 담당한 서기는 높은 지위를 누렸다.

 

한편 문자는 예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글자를 다루는 이가 곧 예술가이기도 했다. 문자와 예술 두 분야에서 모두 눈에 잘 띄는 굵은 윤곽선으로 사물을 묘사했다. 사람의 머리와 다리는 측면으로,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정면으로 그렸다. 왕이나 죽은 사람의 얼굴 조각은 주인공과 똑같이 만들지 않고 전형적인 모습을 따랐다. 때문에 무덤에 새겨진 인물의 모습은 신의 형상이거나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앉아 있는 와제트 / 청동
앉아 있는 와제트 / 청동

 

앉아 있는 와제트 / Seated Wadjet

후기왕조 시대, 제26-31왕조 / 기원전 약 664~332년 / 청동

와제트(Wadjet)는 코브라의 모습으로 표현되다가 후기 시대에 와서 사자 머리를 한 여성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태양신 레(Re)의 딸 중 한 명을 재현한 이 커다란 청동상은 이집트 몽구스의 미라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 뱀을 죽일 수 있는 몽구스는 뱀의 공격에 매일 분투하는 태양신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와제트와 마찬가지로 몽구스 역시 태양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앉아 있는 와제트(Seated Wadjet)
앉아 있는 와제트(Seated Wadjet)

 

하토르가 있는 거울(좌) /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우)
하토르가 있는 거울(좌) /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우)

 

하토르가 있는 거울(브루클린박물관)

아스완

신왕국, 제18왕조 초기 / 기원전 약 1539~1478년 / 청동

원형의 거울판이 건물 기둥을 닮은 손잡이에 달려 있다. 이 손잡이는 '회춘하다'라는 뜻의 상형문자인 파피루스 식물 모양이다. 손잡이 일부에는 미의 여신인 하토르의 얼굴이 표현되어 있다. 당시에는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한 장식으로 하토르 여신을 선호하였다.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 측면 사진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 측면 사진

 

호루스를 안고 있는 이시스 / Isis Holding Horus

후기왕조 시대, 제26조 / 기원전 664-525년 / 돌

이시스는 죽은 남편인 오시리스를 부활시켜 아들인 호루스를 얻고, 세트 몰래 호루스를 키웠다. 호루스는 결국 세트를 죽여 아버지인 오시리스의 복수를 하였다. 이시스는 헌신적인 아내와 어머니를 상징하는데 이 상도 아들 호루스를 사랑스럽게 안고 보호하는 모습이다.

오시리스 Osiris
오시리스 Osiris

 

오시리스 Osiris

아비도스

후기왕조 시대, 제26왕조 / 기원전 약 664-525년 혹은 그 이후 / 청동, 금박

이 조각상은 죽은 자들의 땅을 다스리는 오시리스이다. 오시리스는 왕의 표식인 굽은 지팡이와 도리깨를 쥐고 있는 미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상은 신에게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바친 것이다.

오시리스 Osiris 측면 사진
오시리스 Osiris 측면 사진

 

따오기 관 Ibis Coffin
따오기 관 Ibis Coffin

 

따오기 관 Ibis Coffin

투나 엘게벨 추정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 기원전 305~30년, 이후 일부 추가 제작

나무, 은, 금, 수정 / H 38.2 W 55.8 D 20.2 / 브루클린박물관

따오기 관 / 나무, 은, 금, 수정
따오기 관 / 나무, 은, 금, 수정

 

피라미드 / Pyramid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으로, 대부분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인 고왕국 시대에 세워졌다. 석관 안에 미라가 없는 경우가 많아, 무덤이 아닌 장례신전 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기자를 중심으로 100여 기 이상이 발견되었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제4왕조의 두 번째 파라오였던 쿠푸왕의 피라미드로 ‘대피라미드’라고 한다. 기원전 약 2500년에 지어졌고 헬레니즘 시대부터 7대 불가사의로 불렸다. 높이가 146.6m에 이르며 지어진 뒤 약 3,80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한 변이 230m인데 각 변의 길이 차는 최대 4.4c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정밀하다. 벽돌처럼 다듬은 돌 230만 개를 사용했는데 돌 하나의 무게가 평균 2.5톤이고 50~80톤에 달하는 것도 있다. 대피라미드 안에서는 세 개의 방이 발견되었다. 지하에 미완성의 방이 하나 있고 중앙 방과 석관이 있는 매장 방이 있다. 최근까지도 과학적 방법으로 조사 중이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내부구조는 알 수 없다. 어떻게 지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바퀴 달린 차량과 크레인이 없던 때라 긴 경사로를 이용해 돌을 밀어 올렸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3만여 명의 인부가 10년 이상 참여했으며 전쟁 포로, 노예,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으로 농지가 침수되는 기간에는 농부들도 동원되었을 것이다.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Outer Sarcophagus of the Royal Prince, Pa-seba-khai-en-ipet

데이르 엘바하리

제3중간기, 제21왕조 / 기원전 약 1075~945년

나무(삼나무와 아카시아), 젯소, 안료 / Brooklyn Museum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 기원전 약 1075~945년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 기원전 약 1075~945년

 

제21왕조에 이르러 이집트의 귀족들은 무덤을 정교하게 만드는것을 중단하였다. 대신 무덤 벽에 그리던 그림을 관에 그렸다.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에는 여러 신들을 비롯해 그들을 숭배하는 죽은 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죽은 이가 오시리스로 표현되어 있다. 관 왼쪽이 일부 손상되었는데 당시 목수들이 작은 나무 조각들을 나무못으로 고정해 관을 만들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 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또한 겉면을 석고를 바른 뒤에 채색하여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 나무, 젯소, 안료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 나무, 젯소, 안료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 Brooklyn Museum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 Brooklyn Museum

관의 하부 그림
관의 하부 그림
파세바카이엔이페트의 관 / 나무(삼나무와 아카시아), 젯소, 안료

 

미라 만드는 일
피라미드 만들기

파디마헤스 Padimahes
파디마헤스 Padimahes

 

파디마헤스 Padimahes

타레모우(레온토폴리스)

후기왕조 시대, 제25왕조 후기~제26왕조 초기 / 기원전 약 680-650년

장석 반정이 있는 화강섬록암

 

이 조각상의 주인공은 ‘파디마헤스’이며,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들어 앞을 보고 있다. 이 조각상은 신전의 바닥에 놓아 파디마헤스가 신들을 위한 의례에 영원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물 조각상을 신전에 모시는 이유는 자신의 혼이 무덤에서 나와 조각상에 깃들어 신에게 바쳐진 공헌을 나누어 가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내용은 고대 도시 타레모우(Taremou)의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싶다는 소원을 담은 기도문이다.

머리 조각 일부(석관 뚜껑)
머리 조각 일부(석관 뚜껑)

 

머리 조각 일부(석관 뚜껑) / Face from a Sarcophagus Cover

신왕국, 제18왕조 후기~제19왕조 초기, 아마르나 시대~람세스 시대

기원전 약 1336~1250년 / 사암

이 조각상은 두툼한 눈두덩, 육감적이고 두툼한 입술이 미소 짓듯 살짝 올라가 있는 형태로 제18왕조 후기와 제19왕조 초기의 특징을 담고 있다.

머리 조각 일부 / Fragmentary Head
머리 조각 일부 / Fragmentary Head

 

머리 조각 일부 / Fragmentary Head

중왕국, 제13왕조 초기 / 기원전 약 1759~1675년 / 검은색 화강암

이집트 유물 중에는 이 조각들처럼 부분적으로 파괴된 것들이 많다. 조각의 제작 연도는 비록 명문은 없지만 각각의 특징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이 조각은 갸름한 얼굴에 솟아 오른 광대뼈, 뾰족한 턱으로 보아 중왕국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입술 선이 또렷하고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얼굴 조각 일부(석관 뚜껑)
얼굴 조각 일부(석관 뚜껑)

 

얼굴 조각 일부(석관 뚜껑) / Face from a Sarcophagus Cover

룩소르

신왕국, 제18왕조 초기, 기원전 약 1539~1400년 / 화강암

이 조각상은 전형적인 아치 모양 눈썹에 눈의 앞꼬리가 뒤꼬리보다 낮고, 화장으로 표현한 눈썹 라인이 귀까지 길게 빠져 있다. 이것은 제18왕조 초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인물상 Sennefer
인물상 Sennefer

 

인물상 Sennefer

중왕국, 제12왕조, 아무넴하트 1세~센워스레트 2세 치하

기원전 약 1938~1837년 / 석회암, 채색

이집트에서 서기는 문자를 기록하는 역할을 했고, 상류층에 속할 정도로 신분이 높았다. 서기는 주로 글을 읽거나 쓰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무릎에 손을 올려놓은 이 조각상의 포즈는 수천 년 전인 고왕국의 제5왕조 때 처음 등장 했다. 하지만 넓은 가발과 땅딸막한 얼굴은 제12왕조 초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의 앞치마에 쓰인 명문은 죽은 이의 영혼에 공물을 바칠 것을 주문하는 기도문이다.

긴 가발을 쓴 여성 / 석회암, 채색
긴 가발을 쓴 여성 / 석회암, 채색

 

긴 가발을 쓴 여성 Woman with a Long Wig

신왕국, 제18왕조 후기~제19왕조 초기

기원전 약 1336~1279년 / 석회암, 채색

고대 이집트인들은 조상의 조각상을 집에 모셔 놓고 사후세계에서의 편안한 삶을 기원 하였다. 머리의 푸른 염료, 얼굴의 노란색 염료 흔적은 죽은 여성이 내세에 도달해 여신의 푸른색 청금석 머리카락과 노란색 황금빛 피부를 갖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제피와 안케네스이테스의 석비
제피와 안케네스이테스의 석비

 

제피와 안케네스이테스의 석비 Stela of Djefi and Ankhenes-ites

기르가

제1중간기, 기원전 약 2170~2008년 / 석회암, 안료

이 석비는 무덤 내에서 행하는 제사의식을 보여 준다. 제피와 그의 부인 안케네스이테스는 공물 테이블 앞에 서 있는데, 이 테이블에는 음식이 나서 자라는 ‘들판’을 뜻하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석비 오른쪽의 상형문자는 저승에 있는 두 사람에게 빵과 맥주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기도문이다.

네헤메스라타위의 석비 / 석회암, 채색
네헤메스라타위의 석비 / 석회암, 채색

 

네헤메스라타위의 석비 Grave Stela of Nehemes-Ra-tawy

테베

후기왕조 시대, 제25~26왕조, 기원전 약 760~656년 / 석회암, 채색

부분적으로 채색이 된 이 석비에는 석비의 주인인 네헤메스라타위가 오시리스와 레호라크티(Re-Horakhty)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 태양 원판이 달린 매로 표현된 태양신 레-호라크티는 저승의 신인 오시리스의 도움으로 매일 부활한다. 이 두 신이 함께 네헤메스라타위의 부활을 돕고 있다. 그림 아래에 적힌 공물 기도문은 내세에서 그녀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모든 물건이 끊이지 않도록 적은 것이다.

네페르카우의 석비 / 석회암
네페르카우의 석비 / 석회암

 

네페르카우의 석비 Stela of Nefer-khau

테베

신왕국, 제19~20왕조

기원전 약 1292~1075년 / 석회암

이 석비는 저승세계의 구조를 보여 준다. 맨 위쪽에는 태양이 배를 타고 내세를 이동하는 장면이 표현되었다. 그 아래에는 네페르카우가 내세를 다스리는 여섯 명의 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긴 비문은 장례 공물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하단 왼쪽 구석에서 네페르카우는 두 손을 든 채 위쪽에 적힌 기도문을 암송하고 있다.

아문호테프 1세의 석비
아문호테프 1세의 석비

 

아문호테프 1세의 석Amunhotep I and Ahmose-Nofretary before Osiris

테베

신왕국, 제18왕조, 아문호테프 3세 치하

기원전 약 1390~1353년 / 석회암

이 석비는 아문호테프 1세로부터 7대가 지난 아문호테프 3세 때 만들어졌다. 여기서 아문호테프 1세는 죽은 자들의 땅을 다스리는 왕인 오시리스 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 옆에 왕의 어머니인 아흐모세-노프레타리가 있다. 왕은 현세와 내세 사이에서 신과 연결된 존재로서 적절한 관계를 유지할 책임이 있었다.

우세르페크티니수와 파네체르의 석비
우세르페크티니수와 파네체르의 석비

 

우세르페크티니수와 파네체르의 석비 Stela of User-pekhty-nisu and His Wife, Pa-netjer

사카라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1539~1425년 / 석회암, 안료 흔적

이 석비에는 앉아 있거나 서 있는 네 사람이 등장한다. 네 명 모두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나 비문을 통해 각기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석비 왼쪽은 부부를 표현한 것이고 그 위에 적힌 글에 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집트의 모든 인물 표현에서 머리와 다리는 측면으로, 어깨에서 허리까지는 앞면으로 그려진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자세지만 이렇게 하면 인간의 전체 윤곽을 표현할 수 있다.

민호테프의 석비 / 서기가 표현된 석비
민호테프의 석비 / 서기가 표현된 석비

 

민호테프의 석비 Stela of Minhotep (위)

나카다

신왕국, 제18~19왕조, 기원전 1539~1075년 / 석회암

이 석비에는 출납 책임자인 민호테프의 장례 공물을 요청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상형문자는 그림을 사용해 소리를 표현한다. 이 문자는 하나, 두개, 혹은 세 개의 자음은 표현할 수 있으나 모음은 표현할 수 없다. 중간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그룹에 있는 공물 테이블처럼 생긴 기호가 물건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도 많다. 또는 그려진 물건과 발음이 같은 개념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마지막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그룹에 있는 앙크(ankh) 상징(♀)은 ‘생명’ 또는 ‘살다’를 뜻하는 글자이지만 기호는 샌들 끈 모양이다. 이집트어로 샌들 끈이라는 단어의 발음과 ‘생명’을 뜻하는 단어와 소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서기가 표현된 석비 Scribe and Official (아래)

테베(엘아사시프), 몬투엠하트의 무덤

후기왕조 시대, 제25왕조 후기~제26왕조 초기

기원전 약 670~650년 / 석회암, 안료

이 석비에는 무덤 주인인 몬투엠하트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왼쪽에 일부만 남아 있는 인물은 나일강 하구의 감시자이며, 오른쪽의 인물은 서기이다. 두 사람의 실제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고 직위만 적혀 있다. 서기의 몸은 정면 이고 머리는 전형적인 옆모습을 하였다. 서기는 파피루스 두루 마리를 들고 흔히 글을 쓸 때 취하는 자세인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이집트 / EGYPT
이집트 / EGYPT

 

2022 국립전주박물관 순회 특별전 이집트 / EGYPT /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2부에서 다시 만나요!~ 지금까지 전주 럭셔리크로우 였습니다. 이 포스팅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 댓글, 구독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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