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지난 2022년 8월 14일, 15일 이틀간 가족과 함께 다녀온 전주국립박물관에 자리 잡은 어린이박물관(이집트 특별전)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유물에 대한 설명은 전시실에 있는 내용을 옮겨왔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사진 찍기도 무리였으나 두 번을 가서 많은 양의 정보를 얻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포스팅이 전시회를 놓친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집트 / EGYPT 삶, 죽음, 부활의 이야기 / 2부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집트 문명은 기원전 3천 년경 나일강 하구에서 시작되었다. 나일강은 매년 범람하여 이집트 사람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선물하였고, 홍수를 극복하려는 노력 에서 천문학과 수학, 달력이 생겨났다. 또 상형문자를 이용한 기록 문화가 발달하여 이집트 역사는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몸이 썩지 않도록 미라로 만들었다. 탄생에서 죽음 뒤 세상까지 신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믿어 여러 신을 숭배 하기도 했다.
이집트 문명 초기인 고왕국 시대(기원전 2675-2170년경)에는 신의 아들로 불린 파라오가 웅장한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중왕국 시대 (기원전 2008~1630년경)를 거쳐 신왕국 시대(기원전 1539-1075년경)가 되면 람세스 2세를 비롯한 강력한 파라오들이 등장하여 영토를 넓히고 주변 국가와 활발히 교역하였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 로스대왕(기원전 356-323년)의 정복으로 이집트 문화는 그리스 문화와 융합하였다.
이번 전시는 이집트 유물 소장품으로 가장 잘 알려진 브루클린 박물관 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대여 받아 진행했던 상설전의 순회전이다. 이 전시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2022년 8월 17일까지 선보인다. 이 전시실은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및 브루클린박물관이 공동 기획하였습니다.
자연환경
이집트는 아프리카 북동쪽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 수단, 동쪽으로 이스라엘, 그리고 북쪽으로 지중해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이웃하는 아프리카, 서아시아, 남유럽의 고대 국가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주변 지역과 교류하며 이집트 문명은 더욱 활짝 꽃을 피웠다. 이집트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 때문에 나일강을 따라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크게 하이집트와 상이집트로 나뉘는데, 하이집트는 북쪽의 나일강 하류 일대로 지금의 카이로가 있는 삼각주 지역이고 상이집트는 그 남쪽의 나일강 상류 주변 이다. 이집트인들이 일찍이 그들의 나라를 ‘타위(Tawy, 두 개의 땅)’라 불렀을 만큼 이 두 지역은 중요한 공간이었다.
나일강의 동서 양 옆으로 넓은 사막이 있다. 이 거대한 사막은 외부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장벽 역할을 했다. 수도 카이로의 연평균 강수량이 2~5mm이고 몇 년간 비가 전혀 내리지 않을 때도 있어 이집트인들에게 나일강은 귀중한 젖줄 이다. 나일강의 지류는 적도 인근의 빅토리아 호수와 에티오피아의 높은 산으로 부터 시작되는데, 우기 때 이 지역에 비가 내리면 7~8월에는 항상 강이 범람 하였다. 홍수는 이집트인에게 주기적으로 비옥한 토양을 선물하였고, 이는 찬란한 문명을 일구는 바탕이 되었다.
일상생활
고고학자들은 이집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을 바탕으로 이집트인의 일상생활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먼저 출산 과정에서 주술적인 의미를 가진 조각상과 부적이 사용되었다. 탄생은 미지의 세상에서 현실 세계로 넘어오는 위험한 순간이므로 이와 같은 상징물로써 어머니와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려 했던 것이다. 남성과 여성 모두 아름다움을 위해, 그리고 작렬하는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 하려고 화장품을 발랐다. 화장품 종류는 피부를 부드럽고 탄력 있게 만드는 연고와 눈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태양 빛을 흡수하는 아이라이너 콜(Kohl)이 대표적이다. 거울은 화장을 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장신구는 여성의 머리, 목, 팔목, 손가락 등을 장식하는 데 쓰였다. 여성과 남성 모두 장신구와 부적을 사용했다. 신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갖는다고 믿었다.
청동과 돌로 만든 도구와 무기는 무덤에 부장되기도 했고 일상생활에서도 사용 되었다.
1. 늪지대 풍경 Swamp Scene
기자, 제5~6조, 기원전 약 2500~2170년 / 석회석, 안료
나일강 주변의 늪지대는 이집트인들에게 중요한 식량원이었다. 이 부조처럼 무덤 돌에 그려진 늪지대는 이집트의 비옥함을 상징하며, 사후세계에서도 풍족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준다. 작품에는 파피루스로 만든 작은 배 안에서 다양한 종의 물고기를 잡고 있는 남성들이 묘사되었다. 왼쪽 아랫부분의 새끼를 낳고 있는 하마는 다산을 상징한다.
2. 동물이 그려진 꽃병 Vase with Painted Animals
아우라드 야햐
선왕조 시대, 나카다 3기, 기원전 약 3300~3100년 / 토기에 채색
이 항아리에는 악어 또는 이집트몽구스로 추정되는 세 마리의 동물과 뱀이 그려져 있다. 악어는 나일강에서 발견되는 가장 위험한 동물 중 하나이고 뱀 역시 사막에 사는 위험한 동물이 다. 이 위험한 두 동물을 하나의 병에 그려 넣은 것은 이들을 주술로 위험을 통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막은 언제나 위험한 장소였던 반면, 강은 커다란 위험을 품고 있는 동시에 생명을 살리는 물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3. 주걱모양 인형 Paddle Doll
중왕국, 기원전 약 2008~1630년 / 나무에 채색
한때 이런 주걱모양 인형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라고만 여겨졌다. 여성의 신체를 추상적인 형태로 단순화하였고 앞면에는 헤링본 패턴(V자형)의 드레스를 그린 것이 많았다. 하지만 뒷면에 임신한 여성들의 수호자인 하마 형상의 타웨레트(Taweret)가 그려져 있고 앞면 에 삼각형 모양의 음부가 표현되어 다산과 순산을 기원 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4. 우유 용기 Milk Vase
사와마
신왕국, 제18왕조 초기, 기원전 약 1539~1478년 토기에 채색
표면에 여성의 허리, 팔, 가슴 모양의 점토를 붙여 장식한 항아리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치료약과 처방전을 적어 놓은 <에버스 의학 파피루스(Ebers Medical Papyrus)>에 는 “아픈 사람은 이 모유를 크림이 뜰 때까지 병에 담아 보관했다가 아픈 부위에 바르면 좋다.”고 적혀있다. 이 우유 용기는 이와 같은 ‘마법의 액체’를 담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5. 목걸이 Necklace
메칼리
선왕조시대, 나카다 1기, 기원전 약 3850~3500년 / 석영, 홍옥수, 마노, 동석, 사문석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는 매우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 된다. 이 목걸이는 232개의 구슬과 펜던트로 만들었다. 가장 큰 펜던트는 불투명한 황갈색 석영이고, 그 외에 옥수(chalcedony)로 만든 펜던트 여섯 개와 마노로 만든 펜던트 한 개가 달려 있다. 여기에 오렌지 빛깔의 불투명 한 큰 석영 고리와 동그란 모양의 갈색 동석(steatite) 구슬을 덧붙였다.
6. 스카라브가 달린 팔찌 Bracelet with Uninscribed Scarab
아비도스
중왕국, 제12왕조, 기원전 약 1938~1875년 / 자수정, 장석
이 보호 팔찌는 원형 또는 계란형의 자수정구슬을 꿰어 만들었고, 끝으로 갈수록 점점 구슬 크기가 작아진다. 중앙에는 녹색 장석으로 만든 풍뎅이 모양의 스카리브가 달렸는데, 이것은 태양을 상징한다. 반대쪽 끝에는 색이 연한 알 모양의 자수정이 딸려 있다.
7. 베스와 타웨레트가 달린 목걸이 Necklace with Bes and Taweret Pendants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1539~1292년 / 금, 파이앙스, 홍옥수
이집트인들은 베스와 타웨레트의 이미지가 달린 이런 목걸이가 임신한 여성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난쟁이 사자 모양의 베스는 아이들의 수호신이고 임신한 하마 모양인 타웨레트는 출산하는 여성들의 수호신이었다.
8. 신의 흉상이 달린 반지 Finger Ring with Busts of Deities
사카라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후기~로마 시대, 기원전 100~기원후 100년 / 금
이 반지는 두꺼운 금재 봉을 두 번 반 감아서 만들었다. 양 끝에는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부터 로마 시대 초기에 오시리스의 현신으로 여겼던 소 형상의 세라피스(Serapis) 흉상과 오시리스 신의 부인인 이시스 신의 흉상이 표현 돼 있다. 이 반지를 끼는 자는 두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었다.
9. 귀걸이 Two Earrings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약 1539~1292년 / 금
10. 헤어링 Hair Ring
신왕국, 제18~20왕조, 기원전 약 1539~1075년/ 설화석고(방해석)
11. 카우리 모양의 금반지 Cowrie Shaped Amulet in Gold Ring
제2중간기, 힉소스 시대, 제13~17왕조
기원전 약 1630~1539년 / 유약을 칠한 동석과 금
이집트인들은 여성의 성기와 비슷하게 생긴 카우리 조개에 다산을 부르는 주술적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유한 이집트인들은 카우리 조개 모양의 부적이 달린 금반지를 자주 착용했다. 이 부적의 밑면에 표현된 꼬인 고리 모양 패턴은 힉소스 시내 스카라브에서 자주 발견된다.
12. 조세르 왕의 병 Vase of King Djoser
시가리, 조세로 계단식 피라미드 복합체, 남쪽 무덤, L실
고양국 초기, 제3왕조, 기원전 약 2675~2625년 / 설화석고
사카라에 있는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안에서 출토된 수천 개의 석제 용기 중 하나이다. 이 시기의 돌 용기는 대부분 방해석의 일종인 이집트산 설화석고를 조각하여 만든 것이다. 바깥 면은 끌 모양의 도구와 석제 절구 공이로 다듬었고 안쪽 면은 쪼아서 만들었다.
13. 계란형 항아리 Oval-shaped Vase
엘 마마리야
선왕조 시대, 나카다 1기, 기원전 약 3850~3500년 / 토기
몸통은 매끄러운 붉은색이고 입부분이 검정색인 이 항아리는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토기 형태 중 하나다. 나일강이 범람할 때 강둑 근처에 퇴적되는 진흙으로 만들었다. 항아리 몸통은 테쌓기 방법을 사용하여 얇게 만들었다. 도공들은 점토를 자갈로 문지르면 구웠을 때 붉은색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테두리의 검정색 부분은 굽기 전에 검댕을 묻힌 것이다.
14. 접시 Saucer
에드푸
초기왕조 시대, 제1왕조, 기원전 약 3100~2800년 / 석회암
15. 큰칼 Large Knife
엘아다이마에서 출토
선왕조 시대, 나카다 2기, 후기~3기, 기원전 약 3400~3200년 / 처트
16. 재칼 손잡이 숟가락 Spoon with Jackal Handle
사카라
신왕국, 제18왕조 기원전 약 1539~1292년 / 나무
고대 이집트인들이 햇빛과 건조함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연고를 바를 때 사용하던 숟가락으로 추정된다. 이 숟가락의 손잡이는 재칼 모양이다. 보통 이런 물건의 동물 표현에서 재칼의 머리는 위에서 내려다볼 때의 형상인 반면 앞다리와 몸통, 꼬리는 옆모습이다.
17. 콜을 바르는 도구 Kohl Applicator
중왕국, 제12~13왕조, 기원전 약 1980~1630년 / 적철석, 금, 파이앙스
콜(kohl)은 남녀 모두 아이라이너로 사용했던 화장품 종류이다. 이 막대기는 콜을 찍어 바르는 도구이다. 아이라인을 칠하면 눈에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큰 눈을 연출할 수 있었다. 또 햇빛을 흡수하여 눈부심을 줄여 주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선글라스와 같은 역할도 했다. 콜은 납의 일종인 연방석을 가루로 내어 동물 지방과 섞어 만들었다.
18. 페피 2세의 병 Vase of Pepy II
고왕국, 제6왕조, 페피 2세 치하, 기원전 약 2288~2224/2194년 / 설화석고
왕실에서 사용한 이 뚜껑이 있는 병은 페피 2세에게 헌정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식물 기름과 동물 지방을 사용해 피부 보습제와 클렌저를 만들었고, 머리 모양을 잡기 위해 머리에 바르기도 했다. 이집트 문자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름, 연고를 일컫는 단어가 최소 일곱 개 이 상 있다. 그러나 이 병에 어떤 것이 담겨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양한 신
이집트인들은 세상에 초자연적인 힘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힘 중 하나를 ‘네체르(Netjer)’라고 불렀는데, ‘신’이란 뜻이다. 한 마을 만을 보호하는 지역신도 있었고 매일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신도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둘 이상의 신을 합해 새로운 신을 만들기도 했다. 그 예로 상이집트 신들의 왕인 ‘아문(Amun)’이 하이집트의 태양신인 ‘레(Re)’와 결합해 국가와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새로운 신 ‘아문-레(Amun-Re)’가 탄생했다.
이집트인들은 처음에 동물 이미지로 신을 표현했다. 신을 표현한 동물 조각상들은 기원전 3100년 이전의 선왕조 시대부터 만들어졌다. 기원전 3100년 이후 제1왕조 즈음이 되자 신은 남성이나 여성의 인간 형태로 재현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2675년 이후 제2왕조 후기에 이르러 신은 남성 혹은 여성의 몸에 동물의 머리를 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신은 제2왕조부터 이집트의 다신교가 기독교로 대체되는 기원후 4세기까지 계속 숭배되었다.
1. 아피스 황소 Apis Bull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약 664~30년 / 청동
고대 도시 멤피스의 아피스 황소 숭배는 이집트에서 가장 유서가 깊다. 아피스 황소는 프타(Ptah)신의 현신이었다. 일반인들은 이런 조각상 같은 봉헌물을 바치면서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빌었다.
2. 소베크 Sobek
후기왕조 시대~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제26왕조 이후, 기원전 664~30년 / 청동
3. 네이트 Neith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석판
네이트는 처음에는 나일강 하구 삼각주의 도시 사이스(Sais)를 관장하는 신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그녀를 우주의 창조자로 생각했다. 이후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네이트는 지혜, 길쌈, 어머니, 강, 물, 출산, 사냥, 전쟁, 운명의 여신이 되었다. 이 상에서 네이트는 자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쓰고 있다. 하이집트를 통치했던 이집트 왕들도 이 왕관을 착용했다.
4. 셰솅크왕의 스핑크스 Sphinx of King Sheshenq
제3중간기, 제22~23왕조, 기원전 약 945~718년 / 청동
5. 뱀 관 Snake Coffin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청동, 납
6. 개코원숭이 Cynocephalus Baboon
후기왕조시대, 제26왕조 이후, 기원전 664~332년 / 청동
7. 류트를 연주하는 베스 Bes with Lute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664-342년 / 청동
8. 고양이 Cat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42년 / 청동, 속이 빈 주형
9. 숫양 머리 기둥 장식 Ram-Headed Lotus Column
덴데라
후기왕조 시대, 제22~25왕조, 기원전 약 945~656년 / 검은색 화강암, 붉은색 물감 흔적
세티 1세의 경계비 Boundary Stela of Sety I
콤 알루피
신왕국, 제19왕조, 세티 1세 1년, 기원전 약 1294년 / 석회암
비석에 쓰인 글에 따르면 세티 1세는 즉위 첫 해에 토지 두 구역의 측량을 명령했다. 이 석비는 두 영역이 나누어지는 경계에 세워졌다. 왕은 관청을 운영하고 백성이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토지를 분배하고 관장했다. 세금 징수원과 농부는 들판에 세워진 석비를 통해 토지에 대한 왕의 규정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일반 백성이 왕의 힘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례이다. 비석에 새겨진 왕은 투구 모양의 왕관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왕이 직접 나서서 바쁘게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큰 칼 Large Knife
텔 엘아마르나 군사지구 출토
신왕국, 제18왕조, 아마르나 시기, 기원전 약 1352~1336년 / 청동
고대 이집트인들은 돌과 청동으로 도구와 무기를 만들었다. 최초의 도구는 석회암층에서 발견되는 규암으로 만들었다. 선왕조시대에 이집트인들은 구리와 비소를 섞어 청동을 만들었다. 두 재료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계속 사용되었다.
여왕 또는 여신이 새겨진 장식판 Plaque of a Queen or Goddess
나일 델타 지역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프톨레마이오스 9세 치하 추정, 기원전 116~107년 / 금 도금한 은판에 돋음새김
여왕과 여신의 이미지는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명문이 없다면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 여성은 독수리 날개모양의 관이 귀 뒤쪽까지 이어지는 독수리 왕관을 쓰고 있고 드레스에도 깃털 표현의 흔적이 있다. 독수리는 ‘왕의 어머니’라 불리는 네크베트 여신을 상징하며 이집트 상형문자에서는 ‘어머니’를 상징한다. 여인의 의상에도 독수리의 상징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이 장식판은 정교한 상자에 부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의 아들, 파라오
파라오는 이집트를 통치하는 왕으로 신의 아들이자 대리자인 절대적 존재였다. 왕은 호루스 신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고귀한 신분이며, 동시에 오시리스의 아들이자 태양신 ‘레(Re)’의 아들이기도 했다. 또한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모두의 왕이었는데, 각각의 정부는 독립적이었 으나 한 사람이 통치하는 구조였다. 왕은 신들과의 관계를 통해 현세와 내세에서 이집트를 보호해야 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여왕도 존재 했는데, 이시스·하토르 여신의 현신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집트는 대단히 견고한 계층 사회였다. 왕족과 귀족 외에도 관료, 군인, 성직자, 장인(匠人), 농부들이 있었다. 계층 사다리 맨 밑에 노예가 있는 시대도 있었다. 사회의 모든 계층은 무덤이나 묘에서 출토되는 여러 종류의 부장품에 반영되었다. 특히 고고학 기록에 가장 자주 보이는 계층은 교육받은 엘리트인 관료와 사제, 장인이었다.
왕의 머리(프톨레마이오스 12세로 추정) Head of a King (perhaps Ptolemy XII)
테베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약 80~58, 55~51년 / 석회석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두 왕관을 함께 쓴 머리 조각상이다.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붉은색 왕관 위에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길쭉한 흰색 원형 왕관이 결합된 모양이다. 이중 왕관을 쓰고 있는 왕의 모습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모두 통치 하는 왕임을 상징한다.
프톨레마이오스왕(프톨레마이오스 6세로 추정) Ptolemaic King (perhaps Ptolemy VI)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약 186~145년 / 석회석, 안료
머리만 남아 있는 이 상은 이집트인들이 네메스(nemes)라고 부르는 줄무늬 두 건을 쓰고 있다. 지금은 분실되었지만, 머리 꼭대기에 보이는 손잡이 모양은 타조깃털 형태의 금속 장식의 아랫부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 성각 문자에서 ‘정의’를 뜻하는 단어가 타조 깃털 모양이며, 이와 같은 부착물은 왕과 정의[正義이집트어로 마트(maat)]의 관계를 보여 주는 일반적인 상징 이었다. 왕은 모든 이집트인들에게 정의를 보장할 책임이 있었다.
람세스 2세 Ramses Ⅱ
아비도스 람세스 2세 신전
신왕국, 제19왕조, 람세스 2세 치하, 기원전 약 1279~1213년 / 석회암, 안료
이집트의 가장 유명한 파라오였던 람세스 2세의 아비도스 신전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부조는 팔을 들고 있는 람세스 2세를 표현한 것으로 그가 신들에게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라오는 이집트를 관장하는 많은 신과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왕이 신에게 바치는 선물의 대가로 신이 이집트를 보호한다고 믿었다.
부적 Amulets
이집트인들은 산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해 부적을 썼다. 조각상 형태로 많이 만들어 졌으며 신의 형상이나 심장, 눈, 척추, 새, 곤충 모양 등 다양했다.
부적은 형태와 종류에 따라 각각 특별한 보호기능을 했다. 종류에 따라 위치가 정해져 있었는데, 시신을 싼 아마천 안쪽에 놓였다. ‘바(Ba)’ 부적은 가슴 부위에 놓여 혹시나 ‘바’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도록 했고, 심장을 상징하는 쇠똥구리 모양 부적 ‘스카라브(Scarab)’는 오시리스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죄를 자백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또 각 부적의 모양, 재료, 색상도 신화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미라 부적의 겉면을 장식한 푸른색과 녹색의 파이앙스는 식물과 물을 떠오르게 하여 재생을 상징했다. 미라의 목 아래쪽에 놓이는 기둥 모양 부적은 오시리스의 척추를 의미하며 안전을 상징했다.
1. 바 부적 Ba Amulet
사카라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금
바(ba)는 이집트인들이 초자연적 인격을 구성한다고 믿은 영혼 중 하나이다. 사람이 죽으면 인간의 머리를 한 새, 바가 무덤 밖 을 돌아다니며 죽은 이가 먹을 음식을 모아 무덤으로 가져온다. 바 부적은 바가 무덤으로 되돌아오지 못했을 때 바를 대체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2. 와제트 눈 부적 Wadjet-Eye Amulet
데이르 엘바하리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금
고대 이집트어로와제트라고 불리는 눈 부적은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 신의 눈을 표현한 것이다. <호루스와 세트의 신화>에서 세트는 호루스의 왼쪽 눈을 도려냈고 그것을 하토르와 토트 신이 치료한다. 호루스는 이후 죽은 자들의 땅에 있는 아버지 오시리스를 치유, 즉 ‘와지’하기 위해 이 눈(와트제)을 바쳤다. 따라서 미라에 달린 와제트는 치유, 복원, 보호를 의미한다.
3. 바 부적 Ba Amulet
사카라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약305~30년 / 금, 청금석, 터키석, 동석
4. 와제트 눈 부적 Wadjet-Eye Amulet
사카라
후기왕조 시대, 페르시아 시대, 제27왕조, 기원전 약 525~404년 / 금
5. 와제트 눈을 가진 토트 Thoth with Wadjet-Eye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05년 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305~30년 / 파이앙스
이 부적은 세트 신이 호루스 신의 왼쪽 눈을 뽑았고 그것을 토트신이 치유했다는 신화를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서 토트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동물인 개코원숭이가 치유된 눈을 들고 있다.
6. 베스 부적 Amulet
데이르 엘바하리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0년 / 금
7. 아누비스 부적 Anubis Amulet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0년 / 금
8. 타웨레트 부적 Taweret Amulet
신왕국, 람세스 시대, 제19~20왕조 기원전 약 1292~1075년 / 파이앙스
9. 와제트 눈 부적 Wadjet-eye Amulet
자가지그(부바스티스)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0년 / 파이앙스
10. 기둥 부적(와지) Column Amulet(Wadj)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0년 / 파이앙스
11. 쭉 편 오른손 부적 Open Right Hand Amulet
신앙국, 제18~19왕조, 기원전 약 1539~1075년 / 파이앙스
12. 호루스의 네 아들 부적 Four Sons of Horus Amulets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0년 / 파이망스
13. 폐와 기도 모양의 부적 Lungs and Windpipe Amulet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흑요석
브루클린박물관 소장
14. 삼각자 부적 Set Square Amulet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적철석
15. 심장 부적 Heart Amulet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홍옥수
16. 두 개의 손가락 부적 Two Fingers Amulet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약 332~30년 / 흑요석
17. 인간 다리 부적 Human Leg Amulet
고왕국, 제5~6왕조, 기원전 약 2500~2130년 / 홍옥수
1. 티예트 부적 (이시스의 매듭) Tyet Amulet (Knot of Isis)
신왕국, 제18~19왕조, 기원전 약1539~1075년 / 벽옥
티에트(Tyet)는 이시스 여신이 찬 벨트의 매듭을 뜻한다. 이것은 <사자의 서>의 제156 주문에서 언급되는 부적 중의 하나다. <사자의 서>에 따르면 이 부적은 이시스에게 육체를 보호 해줄 것을 기원하는 부적이다. 벽옥으로 만들어 미라의 목에 놓아야 한다. 형태는 앙크(ankh) 와 비슷해 보이지만 팔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앙크와 마찬가지로 이 부적 또한 ‘생명’과 ‘삶’을 의미한다. 이 부적이 주로 자주색이나 붉은색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시스의 피’ 를 의미하기도 한다.
2. 제드 기둥 부적(오시리스의 척추) Djed-pillar Amulet(Backbone of Osiris)
후기왕조 시대, 제26~30조, 기원전 약 664~332년 / 파이앙스
제드(djed)는 원래 나무 기둥을 뜻했으나 후기 시대에 이르러 오시리스의 척추를 상징하게 되었다. <사자의 서>제155 주문에서는 이 부적을 장례식 당일 날 시신의 목에 올려놓는다고 하였다. 장례를 주관하는 사제는 부적을 올리놓으며 “오시리스어, 다시 일어서십시오! 다시 한 번 척추가 생겼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3. 심장 스카라브 Heart Scarab
사카라
후기왕조 시대, 제26왕조, 기원전 664~525년 / 동석, 금박
이집트인들은 심장이 사람이 살면서 했던 모든 생각과 행동을 다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생전의 나쁜 짓까지도 알고 있어 망자가 영생을 얻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심장 스카라브라 불리는 특별한 부적을 죽은 자의 심장에 올려두었다. 스카라브는 쇠똥구리 또는 풍뎅이 모양의 부적이다. 이 심장 스카라브에는 <사자의 서> 제30장의 내용이 새겨져 있다. 심장 무게 다는 심판에서 주인을 배반하지 말도록 심장에게 부탁하는 글이다.
4. 이시스, 어린 호루스, 네프티스 Triad of Isis, Horus-the-Child, and Nephthys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기원전 305~30년 / 파이앙스에 유약
세트에게 살해된 오시리스를 다시 살려 호루스를 낳은 이시스는 오시리스가 사후세계로 간 뒤 여동생인 네프티스와 함께 호루스를 키운다. 이시스는 오시리스를 죽이고 이집트의 왕좌를 빼앗은 질투심 많은 세트의 눈을 피해 아들을 숨겼다. 미라의 몸통 아래쪽에 놓는 부적으로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호루스를 보호했던 것처럼 죽은 이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봉헌한 것이다.
5. 파타이코스 부적 Amulet of Pataikos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0년 / 파이앙스
난쟁이 신 파타이코스(Pataikos)는 악어 두 마리 위에 서서 양손에 뱀의 목을 쥐고 있다. 머리 위에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스카라브가 놓여 있고 양 옆에는 오시리스의 부인과 여동생인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서 있다. 뒤면에는 죽은 이의 영혼 중 하나인 바(bar) 새가 있다. 이 부적은 사후세계에서 뱀과 악어로부터 죽은 이를 보호하도록 끈을 연결하여 죽은 이의 목에 걸었다. 파타이코스는 난쟁이 신 베스나 악어 위에 서 있는 어린 호루스 신(하포크라테스)과 연관이 있다.
6. 센카마니스켄왕의 샤브티 Shabti of King Senkamanisken
수단, 누리, 피라미드Ⅲ
후기왕조 시대, 제25왕조, 기원전 약643~623년 / 동석
7. 피누잼 1세의 장례 조각상 Funerary Figurine of King Pinudjem I
데이르 엘바하리
제3중간기, 제21왕조, 기원전 1025~1007년 / 파이앙스
샤브티(shabti)와 장례 조각상은 신이 죽은 이에게 저승에서 하도록 요구하는 각종 일을 대신하는 하인이다. 여기서는 괭이를 들고 있어 농사를 대신하는 의미를 가진다. 샌카마니스켄왕의 샤브티에 새겨진 성각문자 주문은 <사자의 서> 제6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누비아의 왕 샌카마니스켄을 대신해 내세에서 일할 것을 샤브티에게 부탁하고 있다. 훨씬 간략하게 이름과 직위만을 적은 문구도 장례 조각상에서 볼 수 있다.
8. 목걸이 Necklace
후기왕조 시대, 제26~30왕조, 기원전 약 664~332년 / 파이앙스
후기왕조 시대가 되면 그물처럼 생긴 목걸이가 미라 싸개의 일부로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목걸이는 일종의 갑옷처럼 주술적 보호막을 형성하여 죽은 이의 육체를 해로운 힘으로부터 막아줄 거라고 믿었다. 후기왕조 시대 말에는 목걸이가 미라 전신을 감쌀 수 있을 만큼 커져서 그전까지 미라 겉싸개 역할을 했던 커다란 아마천 수의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사자의 서>제30장
내 어머니의 심장이여!
내 어머니의 심장이여!
내 변신의 심장이여!
나에 반하는 증인이 되지 말아다오.
법정에서 나에게 반대하지 말 것이며,
저울 관리자 앞에서 나를 적대하지 말아다오.
그대는 내 몸에 깃든 나의 카이며
육신을 건강하게 하는 보호자라.
어서 행복한 곳으로 가자.
인간을 창조하신 아홉 주신들 앞에
내 이름에서 악취가 나게하지 말아다오.
신 앞에서 나에 대한 거짓을 알리지 말아다오.
진실로 내 말을 들어다오.
신화의 세계
고대 이집트인의 세계관은 오시리스와 이시스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들의 부모는 창조신인 아툼의 자녀 게브와 누트이다. 이들은 네 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바로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였다. 이들은 서로 결혼하여 짝이 되었다. 왕과 왕비가 된 오시리스와 부인 이시스는 백성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런 오시리스를 질투한 남동생 세트가 왕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세트는 왕의 몸 치수를 잰 뒤, 그의 몸에 맞게 특별 제작한 인간 모양의 상자를 주문했다. 이것이 이집트 관의 시초가 되었다. 준비가 끝나자 왕을 연회에 초대한 뒤 유인해 가두고 상자를 나일강에 던져 익사시켰다. 세트는 왕위에 올랐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시신을 찾아 그를 마법으로 잠시 살려 낸 뒤 아들인 호루스를 잉태했다. 이시스는 여동생 네프티스의 도움을 받아 호루스를 이승에서 몰래 키웠다. 이후 호루스는 삼촌인 세트를 무찌르고 왕이 된다.
이시스는 오시리스가 죽어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신전을 지었는데, 이것이 무덤의 효시다. 이후 오시리스는 지하 세계의 왕이 되어 죽은 자들의 삶을 심판하게 되었다. 이집트인은 죽은 뒤에도 편안하게 살기 위해 오시리스를 숭배하였다.
죽음 뒤의 세계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음을 끝이 아닌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여겼다. 미라와 많은 부장품들은 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무덤에서 진행되는 모든 의례도 내세에 필요한 모든 필수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열렸다.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몇 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카(Ka)'는 육체와 동시에 태어나는데, 무덤 속 조각상은 사후에 이 '카'가 머무는 장소이다. '바(Ba)'는 개인의 고유한 인격을 나타내며 몸을 떠나 자유롭게 이동 할 수 있어 무덤 밖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육체와 영혼의 모든 요소가 하나의 '아크 (Akh)', 즉 실제적인 영혼으로 통합되어야 했다.
이집트인들에게 저승으로 가는 입구는 해가 지는 서쪽에 있고, 사후 세계는 땅 아래에 있었다. 죽은 뒤 망자는 오시리스 앞에서 이승에서 진실한 삶을 살았는지 심판받았다. 이집트인들은 '마트(Maat)' 즉 '정의'에 따라 살지 않았다면 영원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죽은 자는 자신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반대편에는 정의를 상징하는 깃털을 놓아 저울질하였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심판을 통과하여 무사히 저승으로 갈 수 있었다.
1. 뚜껑 달린 카노푸스 단지 Canopic Jars with Lids
후기왕조 시대, 제26왕조(혹은 그 이후), 기원전 664~525년(혹은 그 이후) / 석회암
카노푸스 단지는 신체를 미라로 만들 때 제거된 장기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왕족들만이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상류층과 중산층에서도 카노푸스 단지를 사용하였다. 물론 왕족들이 사용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고, 신분이나 부유함에 따라 재료가 달랐다. 카노푸스 단지 중에는 뚜껑이 열리지 않는 것들도 있어, 단순한 봉헌용으로 용도가 바뀌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보통 한 세트가 네 개로 이루어져 있는 카노푸스 단지의 뚜껑은 각각 호루스의 네 아들을 상징한다. 자칼인 두아트무테프(Duatmuter)는 위를, 매인 퀘베흐세 네베프(Qebehsenebef)는 장을, 인간인 임세티(imsety)는 간을, 개코원숭이인 하피(Hapi)는 폐를 보호한다고 한다.
2. 미라 마스크 Mummy Mask
로마 시대, 약 150~200년 / 석고에 채색
이집트의 예술은 점점 진화했다. 한 남성의 관에서 나온 이 마스크는 그리스와 로마의 초상화 양식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이집트의 예술가는 새로운 사상을 접하면 이를 받아들여 창작물에 녹여 내곤 하였다. 따라서 이와 같은 로마 양식의 가면은 이집트의 전통을 이은 마지막 단계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가면은 전통적인 이집트 가면과 마찬가지로 미라의 얼굴을 덮을 때 사용한 것이다. 머리모양은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모습이었다.
3. 미라 발 덮개 Foot Case of a Mummy
로마 시대, 약10~99년 / 회반죽, 안료, 금박
발 덮개는 부유한 상류층만이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가면이나 미라 덮개는 꼭 갖춰야 할 필수품이었지만, 발 덮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 덮개 바닥면에는 적들이 묘사되어 있다. 두 명의 이방인은 손과 발이 묶인 채로 그려졌고 결국 왕의 발아래 짓밟히게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방인을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제압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토티르데스의 관
테베/후기 시대, 제26왕조 / 기원전 약 664~525 / 나무, 채색한 회반죽
관은 미라를 보호할 뿐 아니라 여기에 망자와 오시리스를 연결하는 그림을 그려 죽은 이가 사후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미라의 주인공인 토티르데스(Thothirdes)는 관의 형태로 보아 제26왕조에 살았던 사람으로 추정된다. 이 관에는 토티르데스가 사후세계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그려져 있다. 뚜껑 중앙 부분에 미라가 된 토티르데스가 누워있고 오시리스의 부인과 여동생인 이시스와 네프티스(Nephthys) 여신이 토티르데스를 애도하고 있다. 인간의 머리를 한 새 모습의 바(ba)가 토티르데스 위를 맴돌며 그의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존재할 것임을 알린다. 바로 위 화면에는 토티르데스의 심장과 ‘진실’이 저울에 올려져 있고, 두 명의 신이 무게를 재는 심판으로부터 토티르데스를 데려가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진실하게 살았음을 마침내 증명한 토티르데스는 이제 사후세계에서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토티르데스의 관에서 나온 미라
테베 / 후기 시대, 제26왕조 / 기원전 약 8세기 / 아마천, 유기물질
이 미라를 대상으로 방사선탄소연대측정을 실시했다. 또한 유물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내부를 볼 수 있는 CT 촬영도 시행했다. 방사선탄소연대측정 결과 이 미라의 주인공은 기원전 768년과 545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CT 촬영 결과 목 피부 아래가 아마천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기법은 기원전 712년에 끝난 제22왕조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 조사를 통해 미라는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 증거와 CT 촬영 분석 결과가 서로 겹치는 기원전 8세기에 사망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미라는 앞의 토티르데스 관보다 40년 이상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미라와 관은 원래 따로 출토 되었던 것이 19세기에 고대 유물 중개인에 의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후네페르(Hunefer)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
이집트, 제19왕조(기원전 1300년경), 파피루스, 길이 87.5cm / 영국박물관 소장
사자의 서
죽은 자가 오시리스의 심판을 통과해 저승으로 무사히 들어가 영원한 삶을 얻는 여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문을 담은 책이다. 초기에는 피라미드의 무덤방 벽이나 관에 새겨져 ‘피라미드 문서’라고 하였고, 신왕국 시대에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로 불리게 되었다. 파피루스에 적힌 것들이 많이 알려졌으며,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것처럼 미라를 감싼 아마천 붕대에 쓴 경우도 있다. 사자의 서에는 적어도 190여 개의 주문이 있다. 부자들은 문자와 함께 그림을 넣기도 하였다. 죽은 사람은 여러 위험과 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름을 암송 하여 위기를 넘기도록 괴물 이름을 적어 놓은 경우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25번 주문으로, 최후의 심판에서 사는 동안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을 심판관들에게 고백하는 내용이다.
1. 미라 붕대 Mummy Bandage.
표톨레마이오스 시대 혹은 그 이후, 기원전 332~서기 100년 / 아마천, 잉크
이 미라 붕대에는 죽은 자들의 영역에 있는 영혼에게 음식을 바치고, 그들에게 그 음식이 무사히 도달하기를 기원하는<사자의 서>제148주문이 인용되어 있다. 죽은이는 제드 기둥 앞에 서서 여신이 받치고 있는 오시리스레하라크티(Osiris-Reharakhty) 형상에 향을 피우고 있다.
2. 미라 붕대 Mummy Bandage.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혹은 그 이후, 기원전 332~서기 100년 / 아마천, 잉크
이 붕대에 기록된 것은 <사자의 서> 제18장으로 죽은 이가 맞이할 여러 평의회의 신들 앞에서 죽은 이를 변호해 달라고 신에게 요청 하는 내용이다. 이 붕대의 오른쪽 글귀 부분과 떨어져 있는 곳에 ‘세 번째’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데, 이것은 전체 미라 붕대 중 이 띠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알려 주는 표시이다.
3. 미라 붕대 Mummy Bandage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혹은 그 이후, 기원전 332~서기 100년 / 아마천, 잉크
<사자의 서>에는 심장을 다루는 주문이 많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마음이 있는 곳이 심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붕대에는 오시리스의 법정에서 죽은 이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아 달라고 심장에게 간청하는 주문이 쓰여 있다. 이런 주문은 미라의 심장 위에 놓이는 스카라브에 흔히 새겨지는 문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스카라브는 풍뎅이 모양으로 표현된다.
4. 사자의 서 Book of the Dead
제3중간기, 제22왕조, 기원전 약 945~712년 / 파피루스, 잉크
이것은 아문(Amun) 신을 모시는 상당히 높은 지위의 신관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제15장과 제17장의 내용이 담겨있다. 제15장은 태양신에게 바치는 찬가이고, 제17장 은 사후세계에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난관을 극복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테베의 사제인 제드콘수이우에판크(Djedkhonsuiuefankh)로, 태양신 레호르아크티(Re-Hor-akhty)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세로로 쓰여진 글에는 죽은 이를 환영 하는 신의 인사말을 비롯해 죽은 이의 이름 및 가계도가 적혀 있다.
5. 저승의 서 Papyrus of the Amduat
제3중간기, 제22왕조, 기원전 945~712년 / 파피루스, 잉크
<저승의 서>에는 태양이 내세에서 12시간 동안 지나가는 길이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태양이 배를 타고 저승세계를 통과하여 아침에 다시 산자들의 세계로 돌아가는 여정과 그 과정에서 이를 방해하는 적들을 물리치는 것을 보여준다. 이 파피루스는 태양이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 다시 떠오르기 직전인 12번째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자신을 태양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사후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제3중간기 이전에는 왕만이 이 문서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이후 시기에는 고위 관료들도 사후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보조 도구로 이 문서를 이용했다.
CT로 본 미라
CT를 이용해 토티르데스 미라의 내부를 조사한 결과, 토티르데스라는 인물에 대한 몇 가지 숨겨진 사실이 밝혀졌다. 먼저 성기를 확인하여 남성임을 알 수 있었다. 나이는 뼈의 성장 상태로 보아 19세 이상의 성인으로 추정되며, 건장한 골격의 소유자였다.
또한 미라에 대한 유일한 기록인 헤로도토스의 설명을 검증해 볼 수도 있었다. 그는 코를 통해 쇠고리를 두개골에 넣어 뇌를 제거했다고 했는데, 토티르데스의 뇌는 완전히 제거된 상태였고 코와 두개골 사이의 뼈가 뚫려 있어 헤로도토스의 설명과 일치하였다. 뱃속의 장기는 왼쪽 옆구리를 절개하고 제거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이 역시 그의 설명과 일치한다. 심장도 남아 있었다. 한편 장기를 카노프스 단지에 넣지 않고 다시 몸속에 넣은 것은 헤로도토스의 설명과 차이가 있다.
이집트 특별 전시회를 다녀와서 느낀 점은 인간의 삶이 끝나고 죽는 것이 아니라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게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된다는 것과 한없이 나약한 인간이 종교 또는 신을 섬기는 존재라는 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도 불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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