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5일 어린이날...가족과 함께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전주역사박물관과 국립전주박물관이 생각이 났다. 마침 어린이날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았기에 오늘의 목적지는 박물관이다.
이날 우리 가족은 아들과 함께 바람개비 만들기 체험을 하고 기획전시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전, 전주 개성 만월대 서로를 잇다를 관람했습니다.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전, 전주 개성 만월대 서로를 잇다.
전주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2023.05.02. ~ 07.23.
•주최: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전주역사박물관
•후원: 통일부, 문화재청
이곳 만월대에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열두 해라는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남북이 함께 발굴한 고려궁궐 만월대의 자취를 소개하고 그 성과와 의미를 소개합니니다.
통일왕조 고려高麗 918~1392
신라 말기 각 지방에 호족 세력이 등장하면서 통일신라, 후백제, 후고구려가 대립하는 후삼국 시대가 성립되었다. 왕건은 궁예 밑에 있다가 그를 몰아내고 918년 철원에 고려를 세웠다. 왕건은 이듬해인 919년 수도를 개성으로 옮긴 후, 신라와 후백제를 차례대로 멸망시키고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왕건 좌상 / 138.3cm / 북한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소장
1992년 개성왕건왕릉 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
황제가 사용하는 통천관 通天冠을 쓰고 있으며 관에 금으로 도금한 흔적이 있다.
고려궁궐 개성 만월대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며 개경(개성)을 수도로 정했다. 개경은 왕건 즉위 이듬해인 919년 도읍이 된 후 1392년 멸망할 때까지 강화도 피난기(1232~1270년)를 제외하고 줄곧 고려의 수도였다. 왕건은 개경을 수도로 삼고 궁성을 새롭게 지었다. 하지만 궁성은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그 터만 남게 되었다. 만월대滿月臺는 불에 타 흔적만 남은 고려시대 궁궐터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개성 내성 성벽
촬영: 1918년 / 촬영자: 야쓰이 세이이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건판031252)
918-고려 건국
919(태조 2)-궁궐 창건
961(광종 12)-궁궐중수
1011(현종 2)-거란 침입으로 궁성 파괴(이후 중수)
1126(인종 4)-이자겸의 난으로 소실(이후 중수)
1171(명종 1)-궁궐 화재로 소실(이후 중수)
1232(고종 19)-몽골의 침입, 강화천도(궁궐 소실)
1270(원종 11)-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궁궐 중수)
1361(공민왕 10)-홍건적의 침입으로 완전 소실
1392-조선 건국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2년에 걸쳐 8차례 진행되었다.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왕실에서 쓰던 청자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등 17,9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왕이 제사를 지내던 곳인 경령전 추정지가 발굴되었다.
1차 시굴(2007.05-2007.07)
서부건축군 시굴조사
서부건축군 33,000㎡ 조사
건물지 40여 동, 축대 및 배수로 확인
2차 시굴(2007.09-2007.11)
제1건물지군 발굴조사
건물지 5동 발굴
3차 시굴(2008.11-2008.12)
제2·3건물지군 발굴조사
건물지 10동 발굴
4차 시굴(2010.03-2010.05)
건덕전 추정 구역(제9건물지군) 발굴조사
건물지 5동 발굴, 제1·2·3건물지군 보충조사
5차 시굴(2011.11-2011.12)
제 4건물지군, 서부건축군과 중심건축군 일원
6차 시굴(2014.07-2014.08)
제5건물지군
중심건축군·서부건축군 연결 대형계단 발굴조사
대형계단, 배수로, 문(門) 시설 등 발굴
7차 시굴(2015.06-2015.11)
제6·7·8건물지군 발굴조사
건물지 20여 동 발굴
8차 시굴(2018.10-2018.12)
중심건축군·서부건축군 연결 대형계단 발굴조사
대형계단, 배수로, 문(門) 시설 등 발굴
후백제, 전주에 오다
견훤은 900년 후백제의 수도를 전주로 옮겼다. 전주는 남동쪽에 승암산, 남쪽에 완산과 곤지산, 서쪽에 다가산과 화산, 동쪽에 기린봉과 도솔봉, 북쪽에 건지산과 가련산이 위치해 있다. 전주는 낮은 산세가 분지를 에워싸고 있고 전주천이 흐르고 있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 견훤은 승암산 자락에 동고산성을 세워 방비에 힘쓰고, 비보사찰인 봉림사를 세워 왕경으로 들어올 수 있는 관문으로 기능하게 했다.
후백제는 930년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견훤은 932년 신하였던 공직龔直이 왕건에 항복하자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 와중에 맏아들 신검이 반란을 일으키자 왕건에 의탁하여 후백제의 멸망을 지켜보게 되었다.
(1872년 전주지도_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전주성'이 새겨진 수막새 全州城銘圓瓦當
•지름 15.1cm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후백제(통일신라 말~고려 초)
•전주동고산성 출토
‘전주성’이 새겨진 암막새 / 全州城銘平瓦當
•너비 19.3cm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후백제(통일신라 말-고려초)
•전주동고산성 출토
‘관官’이 새겨진 수막새
•길이30.7cm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후백제(통일신라 말-고려초)
•전주동고산성 출토
청자 조각 青磁片
•높이2.7cm(위) / 3.2cm(아래)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후백제(통일신라말~고려초)
• 전주 동고산성 출토(위) / 완주 봉림사지 출토(아래)
후백제後百濟,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다
후백제는 전주 동고산성과 완주 봉림사지 등 전북지역에 많은 유적을 남겼다. 동고산성에서는 초대형 건물지(잔존 길이 84.2m)와 전주성(全州城)이라고 새겨진 막새가 발굴되었다. 또한 동고산성과 봉림사지에서는 9~10세기 청자인 ‘중국식 해무리굽’이 발견되어 두 유적지 모두 후백제 시기에 운영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개성 만월대 열두 해의 발굴展, 전주_개성 만월대 서로를 잇다
Gaesung Manwoldae Twelve Years of Excavation
숫자로 보는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19,770㎡ 발굴 서부건축군조사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
2007년~2018년
남과북이 함께한 시간
12년_538일_8차례
발굴조사에 함께한 남북조사단원
368명_17,900여 점의 유물발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발굴
남북이 함께 한 만월대滿月臺 현장
“우여곡절 끝에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가 모두 끝나고 남측 단원들이 두 달간 함께 땀을 흘린 만월대 현장과 북측 단원들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북측 단원들은 떠나가는 버스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고, 남측조사단도 연신 뒤돌아보며 안녕의 인사를 건넸다. 서먹함과 경계심을 갖고 시작한 발굴조사였지만, 두 달 만에 그들은 분단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정을 나눈 동료가 되어 있었다.” -예대열, “만월대 발굴의 시작” 中 -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살다가 함께 일하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열두 해의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신뢰가 많이 쌓였다. 더울 때는 뜨거운 태양 아래 함께 땀을 흘리고 추울 때는 시린 손 녹여가며 서로의 온기를 나눴다. 남과 북의 조사단원들은 하나 된 역사를 준비하는 작은 ‘통일’을 개성 만월대에서 만들어 왔다.
만월대에서 발굴된 유물 와전
기와는 목조 건물 지붕을 덮는 건축 재료이다. 기와는 보통 수키와와 암키와로 구분되고, 처마 끝 마감을 위한 막새도 수막새와 암막새로 나뉘어진다. 지붕에는 치미, 용두, 잡상과 같은 장식물도 있다. 전돌은 건물 바닥이나 벽을 덮는 건축 재료이다. 기와와 전돌을 합쳐 와전瓦塼 이라고 부른다. 만월대에서 가장 많이 발굴된 유물이 와전이다.
2015년 제7차 5건물지군 발굴 현장_용두출토 모습
일휘문 암막새 日暉文 平瓦當 | 복제 유물
제7차 2015년, 5-1호 건물지 서쪽 마당 계단 주변 출토
막새 높이 14.7cm | 막새 너비 32.1cm | 막새 길이 32.8cm
조류형 잡상 鳥類形 雜像 | 복제 유물
제7차 2015년 8-5호 건물지 북쪽 마당 비좌 주변 출토
높이 22.4cm | 너비 17.8cm
용두 龍頭 | 복제 유물
제7차 2015년 5-1호 건물지 서쪽 마당 계단 주변 출토
높이 36.8cm | 너비 34.9cm
위 사진의 전시된 수막새는 일휘문 수막새로 전시회 측에서 설명문을 혼돈한듯합니다.
일휘문 수막새 日暉文 圖瓦當 | 복제 유물
제7차 2015년 8-1호 건물지 북쪽 마당 출토
막새 높이 15.0cm | 길이 31.5cm
연화문 수막새 蓮花文 圓瓦當 | 복재유물
제7차 2015년 6-7호 건물지 출토
막새 높이 12.7cm | 막새 길이 38cm
2007년 1차 발굴당시 높이 65cm, 위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는 대형 원통형 청자가 발굴되었습니다. 정확한 용도를 알수 없고 학자마다 의견도 분분한데요. 대형 청자의 용도가 무엇이었을지 상상해 보세요.
청자
개성 만월대에서는 다양한 종류와 문양을 가진 고려청자가 출토되었다. 궁궐 내에 다양한 계층이 거주하고 있던 만큼 왕실에 사용된 청자를 비롯하여 일상생활에 사용된 도기와 백자 등 다양한 도자기가 발굴되었다. -2015년 제7차 6건물지군 발굴 현장
청자 음각 파어문 발 青磁 陰刻 波魚文鉢 | 복제 유물
제7차 2015년, 8-1호 축대 출토
높이 5.0cm | 입지름 14.0cm | 굽지름 3.5cm
청자 양각 연판문잔 青磁 陽刻 蓮辦文盏 | 복제 유물
제7차 2015년, 8-1호 축대 출토
높이 7.1cm | 입지름 8.0cm | 밑지름 5.6cm
청자 압출양각 모란절지문 화형 접시 青磁 壓出陽刻 牡丹折枝文 花形 楪匙 | 복제 유물
제7차 2015년, 8-5호 건물지 출토
높이 1.8cm | 입지름 9.0cm | 굽지름 3.0cm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만월대에서 발굴된 금속활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보다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된 금속활자는 궁궐인 만월대에서 발견된 만큼 국가가 주도한 최고最高 수준의 활자이자 최고最古의 활자이다. 만월대에서는 총 6점의 금속활자가 발굴되었고, 앞으로 남북공동발굴조사가 재개되면 더 많은 금속활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이 함께 개성만월대 발굴현장에서 찾은 유물을 실물크기로 재현하였습니다. 복제 유물을 직접 만져보고 관찰해보세요!~
금속활자 제작 방법
금속으로 활자를 만들면 목판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든다. 그러나 활자를 하나씩 주물로 만들어 놓으면 필요한 글자를 뽑아 쓸 수 있어 수많은 종류의 책을 찍어낼 수 있다. 또한 금속은 재료의 특성상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책의 제작 기간을 단축시키고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밀랍 주조법
보기 좋은 글자본 선정-밀랍에 글자새기기-밀랍가지 만들기(100-150자)-거푸집에 진흙을 채워넣고 말린 후 밀랍 녹여내기-거푸집에 쇳물붓기-글자 떼어내어 다듬기-책의 내용에 맞는 활자를 골라 판에 끼우기-인쇄하기
주물사 주조법
보기 좋은 글자본 선정-나무에 글자 새기기-해감 모래에 글자를 박아넣기-글자를 파내고 쇳물 들어올 통로를 만들어 거푸집 완성하기-거푸집에 쇳물 붓기-글자 떼어내어 다듬기-책의 내용에 맞는 활자를 골라 판에 끼우기-인쇄하기
아래 우측 사진 그림: 아리비아 상인 / Maqamat al-Hariri
경제의 도시 개성
개성은 한반도와 중국의 무역 통로이자 상품의 집산지였다. 개성이 경제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벽란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벽란도碧瀾渡는 개성에서 서해로 흘러가는 예성강 끝에 있는 포구였다. 이곳을 중국인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와 유럽의 상인들이 교역을 위해 드나들었다.
개성상인(송상)은 조선후기 청나라와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국제 무역을 주도 하는 집단으로 성장하였다. 개성상인은 개항 전 외국자본과 경쟁할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 상인집단이 되었고, 서양의 복식부기보다 200년이나 앞선 ‘송도 사개치부법’을 창안해 냈다.
이규보는 벽란도 누각 위에서 동남아(남만)로 향하는 배들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읊었다. 그 길을 따라 중국과 일본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에서 상인들이 찾아왔다. ‘코레아’는 이들 파란 눈의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널리 바깥세상으로 알려졌다.
조수가 들고 나매 오고 가는 배는 꼬리가 잇대었구나 아침에 이 다락 밑을 떠나면 한낮이 채 못되어 돛대는 남만(南蠻) 하늘에 들어가누나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평화의 도시 개성
개성은 한국전쟁 당시 휴전협상이 열리면서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가 되었다. 휴전 예비회담이 내봉장에서 열리면서 개성은 전쟁 발발 이후 최초의 중립지대가 되었다.
휴전회담은 1951년 10월 7일 널문리로 자리를 옮겨서 진행되었다. 판문점(板門店)은 널문리 가게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누렇게 익은 조밭 가운데 네 개의 기둥에 의지한 천막 한 채가 서 있다. 아직 전기는 가설되지 않았다. 세 채의 촌가 뒤뜰에는 포탄에 상처 입은 흙담이 무너져 있고, 그 옆 농부들은 누렇게 익은 벼를 거두기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판문점 북쪽 능선에서는 이따금씩 구름 같은 연기를 품으며 요란스럽게 울리는 포탄이 적진을 향하여 간단없이 날아가고 있다.“ -휴전회담 장소인 판문점 풍경 소개 『서울신문』 1951.10.26.
전시를 마치며
개성은 475년을 이어온 고려의 수도이자 조선이 개국을 선포한 곳입니다. 개성에는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뿐만 아니라 조선의 유산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이제 개성은 남북교류협력의 상징적인 도시가 되어 또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개성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만월대, 개성 첨성대, 개성성, 개성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 표충비, 왕건왕릉, 7릉군, 명릉군, 공민왕릉 12개의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남북의 학자들이 열두 해를 함께하며 신뢰를 쌓고 미래를 열어가는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고려의 역사가 시작된 개성. 조선의 역사가 시작된 전주. 전주 시민들이 만월대 터를 밟아보고 선죽교 답사하는 날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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