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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순교의 땅 전주 초록바위[성지순례]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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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그리고 전주를 중심으로 천주교의 성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습니다. 오늘 올리는 초록바위는 전주 럭셔리크로우의 성지순례의 두 번째 장소입니다. 2023년 01월 21일에 전주 전동성당, 초록바위, 진북사, 숲정이성지를 다녀왔던 사진으로 기록해 봅니다. 

곤지산 초록바위(2023.01.21)
곤지산 초록바위(2023.01.21) 싸전다리 위에서

 

 

 

 
위 지도에 나오는 공영주차장에 차를 놓고 조금만 걸어가면 곤지산 초록바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주차장 규모는 약 20여대인데, 완산칠봉 꽃동산,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초록바위, 서학동예술마을, 남부시장 등을 이용할 때 유용한 주차장입니다. 

초록바위에서

 

곤지산 끝자락
곤지산 끝자락

 

주차장 위로는 이팝나무 군락지가 있습니다. 겨울이라 주변 모습만 사진에 담아봅니다.

 
 
이팝나무 군락지
위치: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1-2번지
수령: 약200년 / 수량: 24주

이곳에 자생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이팝나무는 희귀식물로서 5월경 개화기에는 하얀 꽃구름을 연상할 정도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귀중한 나무입니다. 우리시민 모두가 정성어린 마음으로 보호하고 가꾸어 후손에게 소중한 자연자원을 물려줍시다.

이팝나무 군락지

 

초록바위로 올라가는 나무데크 계단
초록바위로 올라가는 나무데크 계단

 

곤지산 숲길 산책로 시작점입니다.

 

.주변의 푯말과 조형물의 정보를 살펴봅니다.

곤지산 숲길 산책로
곤지산 숲길 산책로
천년전주 마실길
천년전주 마실길

 
곤지산 [坤止山, Gonjisan]

곤지산은 고덕산의 산세가 전주의 남동방향으로 뻗어나 멈춘 봉우리이다. 전주부성을 에워 싼 산세가운데 건지산과 대응되는 산이다
곤지산은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이 산에는 전주천에 깊숙하게 내리 뻗은 지형으로 깍아지른 절벽과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있었고, 빛깔이 푸르스름하여 이름 붙여진 초록바위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죄인을 효수하던 곳으로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던 순교지였으며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 김개남 장군이 참형당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곤지산은 희귀종인 이팝나무 군락지로 해마다 5월이면 이팝나무의 하얀 꽃이 피어 오른다.

곤지산(坤止山, Gonjisan)
곤지산(坤止山, Gonjisan)

 
곤지산 초록바위
곤지산 끝자락이 전주천과 만나는 곳, 싸전다리 남서쪽 남부시장 건너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의 무성함 속에 초록바위가 숨어 있다. 1936년 홍수로 제방공사를 하면서 상당부분 깍여서 현재로서는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초록바위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그 산세가 갈마음수격(渴馬飮水格)으로 '말이 풀밭을 찾는다' 는 의미에서 초록바위라 명명했다고 한다.
5월마다 200살이 넘은 이팝나무 24그루의 하얀 꽃구름에 덮이는 이 바위는 조선시대 죄인들의 형을 집행하던 형장이었다.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이기도 하다.
전주천 왼쪽으로 도로가 나기전 초록바위는 전주천변에 솟은 높은 낭떠러지였다.

곤지산 초록바위
곤지산 초록바위
전주미래유산 16. 곤지산 초록바위
전주미래유산 16. 곤지산 초록바위

 

높지 않은 곤지산 정상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니 숨이 찬다. 운동 좀 해야겠군...

계단의 중간에서
계단의 중간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싸전다리와 청연루, 오목교가 보인다.

사진하단 싸전다리
사진하단 싸전다리

 

계단을 다 올라와서
계단을 다 올라와서

 

잠시 남부시장에서~서학동예술마을 방향까지 모습을 사진에 담아봅니다.

남부시장, 천변 유료주차장, 풍남문, 전동성당이 보인다.
남부시장, 천변 유료주차장, 풍남문, 전동성당이 보인다.

 

초록바위에서 본 풍경
초록바위에서 본 풍경
초록바위에서 본 풍경
초록바위에서 본 풍경

 

곤지산 숲길 주변관광안내도
곤지산 숲길 주변관광안내도

 

전주 전동성당

 

청연루와 오목교

 

청연루, 오목교, 한벽교

 

청연루
청연루

 

승암산 동고사

 

뒤 쪽으로 나무벤치의자가 있습니다.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습니다. 

완산도서관도 보인다.

 

사발통문: 1893년 동학간부들이 작성한 통신문으로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관계자의 이름을 사발모양으로 썼다.

사발통문

 

이렇게 끝날듯한 초록바위편?이 아니다. 초록바위 순교터를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곳은 바로 천변 인도에 있다.

순교터 모자이크타일 (인도 앞)
순교터 모자이크타일 (인도 앞)

 

순교터 모자이크타일(천변방향)
순교터 모자이크타일(천변방향)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순교 당시의 모습과 장소를 모자이크타일로 만들어 놓았다.

천주교 신자인 15세 두 소년
천주교 신자인 15세 두 소년

 

 

 

천주교 순교터 초록바위

이곳은 1867년 가을, 천주교 신자인 15세 두 소년, 남명희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홍봉주의 아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흥선대원군은 집권하여 쇄국정책을 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프랑스 세력과 내통 한다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종교박해인 병인박해를 일으켜 신도 만 여명이 처형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승지(承旨)남종삼(요한) 성인진사(進士) 홍봉주(토마스)를 천주교 괴수로 꼽아 1866년* 3월 7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또한 나라 법대로 남종삼과 홍봉주의 가족을 처벌하였는데, 돈령 부동지사(敦寧 府同知事)를 지낸 남종삼의 아버지 남상교(아우구스티노)는 그해 4월 17일 공주 옥에서 순교하고, 14세된 남명희(명숙)와 홍봉주의 아들은 처형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5세가 될 때까지 전주 옥에 갇혔다. 전라감사는 남명희를 살려주고자 배교하라고 타일렀으나 “믿음의 근본은 오로지 뜻을 정성스럽게 하는데 있습니다. 천주님은 천지의 대군대부(大君大父)이 신데 어찌 배교할 수 있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전라감사는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나이가 차자 1867년 가을 쯤 차마 목을 베어 죽일 수 없어 초록바위에서 전주천 물속으로 떠밀어 죽였다. 순교자 홍(洪)소년은 1801년 서울에서 순교한 진사 홍낙민(루가), 1839년 전주에서 순교한 홍재영 아버지 홍봉주에 이어 4대째 순교자였고, 남명희의 가문은 3대가 순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 장자인 남명희(南明熙)는 전주 진영으로 끌려가 전주천의 초록바위에서 순교하였다.

천주교 순교터 초록바위
천주교 순교터 초록바위

 

전주천과 초록바위
전주천과 초록바위
초록바위터
초록바위터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전주천 인근 초록바위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 장소인 만큼 주변 조형물에서 느낌이 다가왔다.

 

조선시대 죄인을 효수하던 곳이었으며 조선후기에는 천주교 신자 및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들을 참수한 장소이기도 하다.

 

예산 가야사지伽倻寺址와 남연군묘南延君墓를 포스팅하면서 알았던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파헤쳤지만 관은 건드리지 못한 채 돌아간 사건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다.’ 부분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천주교 탄압의 흔적은 이 곳 순교의 땅 전주에도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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