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산(黃方山) Hwangbangsan [異] 홍산(洪山), 서고산(西固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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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효자동·동산동·팔복동에 걸쳐 서 위치한 산이다(고도:217m). 『여지도서』(전주)에 서고산(西固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전주부)에는 “관아의 서쪽 15리에 있다.” 라는 내용이 수록 되어 있다. 서고산 내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 사 금산사의 말사인 서고사가 있다. 서고사는 908년(후백제 견훤왕 17)에 명덕(明德)이 창건하였다. 후백제를 세 운 견훤은 완산주(完山州:지금의 전주시)에 도읍을 정한 뒤 동서남북에 각각 동고진, 서고진, 남고진, 북고진을 두 고 각 진마다 사찰을 지어 외침을 막고자 하였다. 본래 이 사찰은 서고진에 있었다. 1363년 혜공(惠空)이 중창, 벽송(壁碧)이 지엄하고, 1951년에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 미륵전, 요사채 2동이 있으며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소형 석불이 전한다. 효자동 방면에서는 홍산이라고 부르며 홍산리, 홍산교회 등의 이름에 사용되 고 있다. 동산동·팔복동 방향에서는 황방산이라 칭하며 이는 시역이 확대되기 이전에는 완주군 조촌면과 이서면 의 경계를 이룬데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천고사(天高寺) 등이 있다. [글 출처 : 국토정보플랫폼>지리지 및 지명유래집]
*자료검증==>천고사(天高寺)는 현재 천고사(天固寺)로 쓰이고 있다.
(*참고: 동여도(東輿圖) 발행년도 : 19세기)대동여지도를 필사한 채색지도로 대동여지도보다 내용이 자세함. 작자 미상 /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제작시기 : 1861년 고산자(古山子)김정호가 편찬·간행 )
위 동여도(東輿圖)[그림 출처 : 국토정보플랫폼>지리지 및 지명유래집]에 재미있는 것은 하나의 산그림에 북으로는 황방산(黃方山)이라 써있고, 남으로는 서고산(西高山)이라 써있다!
자료를 종합해보니 황방산(黃方山)은 현재(黃尨山) 方(방위, 방향)→尨(삽살개 방)으로 변경되었고 , 서고산(西固山)의 경우 고지도에는 西高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과거에 사용한 高의 뜻을 보면 높다, 뽐내다라는 뜻이 있는데, 산이 높다는 말보다는 서쪽이 평야인 전주의 방위 및 지형상 높음을 이야기 한것이 아닐까 싶다! 서고사(西固寺)와 천고사(天固寺)의 固는 굳다, 단단하다, 방비, 수비의 뜻을 가지고 있어 서고진(황방산에 서고산성이 있다.)을 두어 진마다 사찰을 지어 외침을 막고자 했다고 하니... 굳을 고 固의 쓰임이 맞는 것 같다!~
홍산(洪山)의 경우 洪 큰물(크다) 홍, 山 뫼 산으로 뜻이 있으니 삼천천과 전주천이 만나는 지점에 큰물이 형성이 되어 큰물을 형상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경우 사실 효자동 방면이 아닌 팔복동 방면에서 불렸어야 하는데...
서고사(西固寺)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황방산(黃尨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명으로 승려 명덕이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908년후백제의 견훤이 완산주(完山州)에 도읍을 정하고 국운의 회복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명덕(明德)에게 창건하도록 하였으며, 1353년(공민왕 2) 혜공대사가 중건하였다.
조선에서는 전주의 사방을 방비하는 사고(四固)사찰의 하나로 중요시 되었는데, 1624년(인조 2)지엄대사가, 그리고 1763년(영조 39)벽송대사가 중창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가람이 완전히 소실되었다가 이후 소규모로 중창되었다.
1987년 의성이 요사와 나한전을 중수하였고, 1997년 도상(道尙)이 극락전과 나한전을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과 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서고사]
*추가 당우: 2022.12.24.에 세계평화명상센터, 교육관 및 체험관(2019.01~2022.12.)이 준공 되었다. 또한 극락보전에는 조성시기 조선 후기로 보이는 석조여래좌상(높이 약 40㎝)이 있다. 아래는 기존 법보신문의 내용을 발취한 글로 나한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주 럭셔리크로우]
“서고사의 나한상 8구와 복장물이 2004년 7월경 도난 되었다가 2014, 2020년에 되돌아왔다. 가장 최근에 회수된 나한상 8구 중 4구는 제자리로 돌아가 서고사의 본사(本寺)인 김제 금산사성보박물관에 봉안되었다. 회수된 서고사 나한상은 대좌 안쪽에 묵서로 숫자가 적혀 있어 5구의 존명이 확인되었다. 십육나한 중 제3존자 가낙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惰闍), 제5존자 낙거라(諾距羅), 제7존자 가리가(迦理迦), 제14존자 벌나파사(伐那婆斯), 제16존자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에 해당된다. 8구의 나한상 중 4구에서 복장 발원문이 발견되었는데 거의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1695년 5월23일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사는 문만영이 시주하고 수화승 성심(性沈)을 비롯하여 체원, 민성, 성인, 진열 등 8명의 조각승이 가섭·아난존자와 십육나한상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전라북도 부안면 선운리 백련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하였다고 하나 어떤 연유로 서고사 나한전(羅漢殿)에 모시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위 내용에 관련해서 지난해 금산사 성보박물관에서 담아온 사진(제3존자, 제16존자)으로 살펴보겠습니다.
* 금산사 성보박물관: 말사에서 보관이 어렵거나 도난 · 훼손 등의 위험이 있는 성보문화재를 위탁받아 보존 · 관리하고 있다.
서고사 십육나한상 西固寺 十六羅漢像
조선 1695년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 3존자(좌)
2. 제3 발원문
3. 제3 후령통
4. 16존자(우)
5. 제16 발원문
6. 제16 후령통
서고사 나한상은 2004년 7월경에 도난당했다가 2014년에 되찾았다. 훔친 후 다시 색을 칠해 교묘하게 다른 나한상처럼 보이게 했다. 이 나한상은 서고사 십육나한상 가운데 제3, 16존자로, 함께 발견된 발원문을 통해 숙종 21년(1695) 5월 23일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사는 문만영이 시주하고 수화승 성심(性沈)이 조성하였음이 밝혀졌다. 본래는 전라북도 부안면 선운리 백련사에 봉안한 것이다. 두 구의 나한상은 모두 바위 대좌에 앉아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비례 또한 안정적이다.
*포스팅을 하면서 도난당해 돌아온 4구의 나한상이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었다는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전화문의를 하였다. 결론적으로 4구의 성물이 들어온 것은 맞다고 한다. 전시된 것이 제3, 16존자라는 내용을 확인하였다. [전주 럭셔리크로우]
주차장에 차를 놓고 드론을 올려 주변 사진을 찍고 다시 서고사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매화꽃이다.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梅花)에게 인사 정도는 해주는 나다.
혁신도시 주민들로 보이는 시민분들이 꽤 많이 보인다. 높은 산도 아니고, 뷰가 좋아 황방산을 찾는 분들이 정말 많은듯하다. 이 정도 왔을 때 저게 뭔가 싶을 것이다!~ 여기가 서고사가 맞나? 갑자기 현대식 건물이 나온다.
사실 이미 전주의 사고사찰(四固寺刹)*을 공부하며 알고 있던 사찰인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 하니...2019년~2022년은 늘 공사 중이었다. 현재 세계평화명상센터(2019.01~2022.12.)가 조성되었다.
*사고사찰(四固寺刹): 四넉사로 사방(四方:동서남북)의 의미가 있고, 固굳을 고를 써서 의미는 굳다, 단단하다, 방비, 수비 의미가 있어서 전주를 지키는 성과 의미가 깊다. 남고산성(남고산)에 남고사, 동고산성(승암산)에 동고사, 서고산성 또는 황방산성(황방산)에 서고사, 호암산에 진북사(鎭北寺)가 있다._[럭셔리크로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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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무런 현판이 붙지 않았다. 앞에 보이는 나무는 인조 벚꽃나무다. 하늘이 맑아 사진에 담아본다.
건물의 측면으로 가면 보이는 길이 있다. 또 하나의 등산로인가 싶다.
건물 뒤로 보이는 황방산의 비탈에 큼직한 바위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이곳에 올라와야 한국의 사찰 형식의 건물이 어디 있는지 보인다. 물론 이미 주차장에서 드론을 띄워 보았기에 알았지만...
서고사를 처음 찾는 분들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올라온 언덕을 내려가 세계평화명상센터의 우측으로 돌아 건물 사잇길로 가면 된다. 이정표가 보인다.
건물 사이의 좁은 통로 길에 만나는 효자천(孝子泉)이 보인다. 잠시 효자천 이야기도 읽어본다.
서고사 효자천 西固寺 孝子泉
황방산 기슭에 백모라는 가난한 선비 내외가 아들 삼 형제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씨가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망연자실한 아내가 통곡만 하고 있는데 한 노승(老僧)이 찾아서 ‘이렇게 울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 시신을 염습(斂襲)해 나를 따라 오라’ 고 재촉했다.
백씨 아내는 눈물을 거두고 산길을 따라 오르니 노승이 한 곳을 가리키면서 ‘이곳은 와우혈(臥牛穴)로 묘를 쓰면 머지않아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니 여기에 남편의 장사(葬事)를 지내도록 하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묘장(墓葬)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셋째 아들이 울기만 하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씨 아내가 두 아들과 함께 달래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찌할 수 없이 셋째를 두고 집으로 돌아 와서 매일 음식을 날랐다.
이 소문이 퍼지자 인근 마을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늘이 내린 효자’ 라 칭찬했다. 그리고 뜻을 모아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지어 주고 시묘(侍墓)를 하게 했다. 마침 그 여막 아래에서 맑은 물이 비쳐, 그 자리에 옹달샘까지 파주었다. 그 샘이 오늘에까지 이르러 효자천(孝子泉)이라 부르고 있다.
작은 석상 1기를 끝으로 좌측으로 극락보전과 석탑이 보인다.
사실 극락보전과 나한전도 좋지만, 앞에 보이는 나무와 서쪽의 뷰가 너무 일품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나한전(羅漢殿)이라 쓴다. 서고사의 나한전(拏漢殿)은 '나=拏' 로 써있다.
계단을 올라 나한전의 현판을 찍고 내려오니 다시 보이는 것이 있었다.
극락보전 계단에 놓인 기와에 그려놓은 그림도 눈에 들어온다.
드론을 올려서 보는 황방산 시점의 뷰도 잠시 감상해 본다. 사진의 순서는 혁신도시 방향에서 봤을 때 왼쪽부터다.
전주의 사고사찰을 모두 돌아 보았다. 그리고 완주의 사찰도 돌아 보며 느낀 점이다. 이곳 서고사는 현대화된 절이라 보인다. 한국적 요소가 많이 없어진 부분은 안타깝다!~ 그러나 지나온 역사에서 폐사된 절은 사람이 찾지 않은 절이라 생각하면... 사람이 찾는 절이 서고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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