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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주 황방산(黃尨山) 천고사(天固寺)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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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산(黃山) Hwangbangsan [異] 홍산(洪山), 서고산(西固山)

https://jeonjucastelblog.tistory.com/57

 

전주(全州) 황방산(黃尨山) 지명 유래

황방산(黃方山) Hwangbangsan [異] 홍산(洪山), 서고산(西固山) 시의 효자동·동산동·팔복동에 걸쳐 서 위치한 산이다(고도:217m). 『여지도서』(전주)에 서고산(西固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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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방산(黃尨山)과 노을 : 삼천천과 전주천이 만나는 곳(추천대)에 황방산이 있다.

 

 

시의 효자동·동산동·팔복동에 걸쳐 서 위치한 산이다(고도:217m). 『여지도서』(전주)에 서고산(西固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전주부)에는 “관아의 서쪽 15리에 있다.” 라는 내용이 수록 되어 있다. 서고산 내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 사 금산사의 말사인 서고사가 있다. 서고사는 908년(후백제 견훤왕 17)에 명덕(明德)이 창건하였다. 후백제를 세 운 견훤은 완산주(完山州:지금의 전주시)에 도읍을 정한 뒤 동서남북에 각각 동고진, 서고진, 남고진, 북고진을 두 고 각 진마다 사찰을 지어 외침을 막고자 하였다. 본래 이 사찰은 서고진에 있었다. 1363년 혜공(惠空)이 중창, 벽송(壁碧)이 지엄하고, 1951년에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나한전, 미륵전, 요사채 2동이 있으며 유물로는 대웅전 안에 소형 석불이 전한다. 효자동 방면에서는 홍산이라고 부르며  홍산리, 홍산교회 등의 이름에 사용되 고 있다. 동산동·팔복동 방향에서는 황방산이라 칭하며 이는 시역이 확대되기 이전에는 완주군 조촌면과 이서면 의 경계를 이룬데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천고사(天寺) 등이 있다. [글 출처 : 국토정보플랫폼>지리지 및 지명유래집]

*자료검증==>천고사(天寺)는 현재 천고사(天寺)로 쓰이고 있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17첩 06면 [그림 출처 : 국토지리정보원_국토정보플랫폼_대동여지도]

 

  
(*참고여도(東輿圖) 발행년도 : 19세기)대동여지도를 필사한 채색지도로 대동여지도보다 내용이 자세함. 작자 미상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제작시기 : 1861년 고산자(古山子)김정호가 편찬·간행 )

[동여도]_18첩 4면 : 황방산(黃方山) 일대

 

 
위 동여도(東輿圖)[그림 출처 : 국토정보플랫폼>지리지 및 지명유래집]에 재미있는 것은 하나의 산그림에 북으로는 황방산(黃山)이라 써있고, 으로는 서고산(西山)이라 써있다!

자료를 종합해보니 황방산(黃山)은 현재(黃山) (방위, 방향)(삽살개 방)으로 변경되었고 , 서고산(西固山)의 경우 고지도에는 西으로 표기되어 있다. 과거에 사용한 의 을 보면 높다, 뽐내다라는 뜻이 있는데, 산이 높다는 말보다는 서쪽이 평야인 전주의 방위 및 지형상 높음을 이야기 한것이 아닐까 싶다! 서고사(西固寺)와 천고사(天固寺)의 는 굳다, 단단하다, 방비, 수비의 을 가지고 있어 서고진(황방산에 서고산성이 있다.)을 두어 진마다 사찰을 지어 외침을 막고자 했다고 하니... 굳을 고 固의 쓰임이 맞는 것 같다!~
홍산(洪山)의 경우 洪 큰물(크다) 홍, 山 뫼 산으로 뜻이 있으니 삼천천과 전주천이 만나는 지점에 큰물이 형성이 되어 큰물을 형상화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경우 사실 효자동 방면이 아닌 팔복동 방면에서 불렸어야 하는데...

모악산(母岳山) 795.2m

 

2023.02.25. 시간이 남는다. 집에서 가까운 근교의 사진을 찍기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전주영화종합촬영소를 갔다가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어서...사진 두어장 찍고 전주패밀리랜드 근처에서 모악산을 사진에 담고 돌아오는 길에...천고사(天固寺)와 서고사(西固寺)를 둘러보았다.

천고사(天固寺) 대한불교조계종

 

 

황방산(黃尨山) 천고사(天固寺)

천고사(天固寺)는 전주시 황방산에 있는 사찰이다. 원광(圓光, 555∼638)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이를 고증할만한 문헌은 없다. 신라의 승려인 원광이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 지역에 사찰을 창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통일신라 하대에는 진감국사 혜소(慧昭, 774∼850)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이 절에 머물렀다고 전하지만 이 역시 문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천고사는 오랫동안 폐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일제강점기인 1919년과 해방 후인 1955년에 각각 중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사찰 건물로는 대웅전, 보살전, 요사채 등이 있다. 이 사찰의 대웅전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은 광배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으며, 얼굴의 눈과 코 부위 등은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몸체보다 얼굴부위가 크게 묘사되어 있으며, 오른쪽 어깨를 완전히 드러낸 모습을 하고 있다. 백호(白毫)가 있고 목은 굵고 짧으며 삼도(三道)가 있다. 불상의 양식 등을 통해 볼 때 고려 말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1999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천고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45호(지정: 1999.07.19.)

천고사에 대해 많은 정보가 불확실하고, 부족하였다. 그래서 더 알아보았다.

입구 좌측에 공양간(供養間), 요사채 등이 있다.

 

 

천고사 天固寺

주소: 전주시 덕진구 만성용흥길 9 (만성동 822) / 전화: 063-222-2980

 

천고사(天固寺)는 전주시 완산구 덕진구 만성동 822번지 황방산에 자리 잡고 있다. 전주대학교에서 이서 방향으로 가다가 만성리 고개를 넘고 만성초등학교를 찾으면 그 옆에 있는 아담한 규모의 천고사를 만나게 된다. 절의 창건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때 우리나라 범패의 개창자인 진감국사(眞鑑國師, 773~850)가 머물렀다고 구전된다. 진감 국사는 익산 금마(金馬)에서 출생하여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기 전에 이 곳 천고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한편 신라 말 고려 초의 어느 시기에 원광(圓光) 국사가 창건하였다는 말도 있다.

 

이후의 사정은 전혀 알 수 없고, 절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은 근래 들어서의 일이다. 1955년 서보운 스님이 주석하면서 비로소 가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미륵전과 초막만이 있었으나, 3년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해서 칠성전ㆍ칠성각 등을 건립했다. 서보운 스님이 주석하기 이전인 1933년과 1934년에는 칠성탱화와 아미타극락회상도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1970년 신중탱화를, 1974년 지장탱화를 각각 조성하였다. [글 출처: 모악산 금산사_말사안내]

극락전(極樂殿)

 

극락전(極樂殿) 현판

 

대웅전(大雄殿)

 

대웅전(大雄殿) 현판

 

아래 독성각(獨聖閣)은 그동안 내가 보았던 사찰에서 없었던 현판이다. 그래서 알아보았다.

독성각(獨聖閣)

 

 

독성각(獨聖閣)

사찰에서 스승없이 홀로 깨친 독각의 성자를 봉안하는 불교건축물.

독성은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자로서, 일반적으로 독성각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봉안하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독성신앙에 특유의 단군신앙을 가미시켜 새롭게 수용하고 전개시켰다. 따라서 이 독성각은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 중의 하나로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인 독성탱화(獨聖幀畫)를 모시게 되는데, 사찰에 따라서는 탱화만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독성각이 토속신앙과의 접합에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불교사의 초기 및 중기의 사찰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널리 건립되어 사찰의 한 당우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불교가 핍박받게 되고 말법시대(末法時代)라는 자각이 강하게 대두됨에 따라, 말법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현재에도 일반 서민층에서는 대웅전 등의 중심 당우에서보다 독성각에서 불공을 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성각 중 유명한 것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운문사(雲門寺)의 부속암자인 사리암(舍利庵)과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의 삼성암 등에 있다. [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_독성각]

천고사 석불좌상 안내판

 

 

天固寺 石佛坐像

 

 

천고사 석불좌상 天固寺 石佛坐像

Stone Seated Buddha of Cheongosa Temple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Jeollabuk-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현재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석불좌상은 돌로 만든, 앉아있는 모양의 불상이다.

천고사 미륵전* 안에 모셔져 있는 석불좌상은 부처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가 남아 있다. 이 불상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불상과 같은 손갖춤手印을 한 불상은 흔히 석가모니불이라 불린다.

 

*현재 대웅전(大雄殿) 현판이 붙어 있고, 전에는 미륵전(彌勒殿)으로 사용했다.

천고사 석불좌상

 

천고사 석불좌상과 유사한 불상은 8세기 이후부터 고려 전기까지 널리 유행했다. 특히 천고사 석불좌상은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크고 입체감이 줄어든 점을 볼 때, 후백제 불상인 완주 봉림사지 석조삼존불의 본존불 모방하여 고려 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불

 

석불좌상의 귀 길이는 약 54㎝로 얼굴의 길이 만큼 길다.

석불좌상 좌측면

 

석불좌상 얼굴부분

 

석불좌상 우측면

 

천고사 석불좌상은 전체 높이 255㎝, 어깨 너비 115㎝, 무릎 너비 180㎝ 이다.

천고사 석불좌상 정면

 

윗부분의 광배가 깨지고, 금이 가며, 얼굴 부위의 마멸이 심한 부분이 오랜 시간 수난을 겪은 우리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으로 생각해 본다. 천고사 석불좌상을 보고 느끼며 다시 천고사의 마당에서 석탑을 바라본다.

천고사의 석탑

 

파란하늘과 천고사 5층 석탑

 

전주 황방산(黃尨山)에는 서고사(西固寺)와 천고사(天固寺)가 있다. 서고사는 산 중턱 위에 있고, 천고사는 거의 평지에 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 접근성이 편한 부분은 천고사에 있으니 전주 혁신도시에 살고 있는 분들은 한 번쯤 가보는 것도 괜찮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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