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밀려버린 포스팅은 언제 올라갈지 기약할 수 없는 사진폴더에 남아...세상의 빛을 갈망한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때는 2022년 4월 19일로 올라간다. 고창읍성, 병바위 일원, 두암초당을 다녀왔고, 2023년 5월 1일에는 두암초당과 선운사를 다녀왔다. 고창하면 고창읍성, 선운사, 학원농장이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뭐가 바쁜지 디스크 세상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사진들이 천지다.
위 사진 우측 전좌바위(두락암) 아래에 있는 정자가 두암초당斗巖草堂이다.
위 사진 좌측에 높이 35m 병바위가 보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사람얼굴 또는 엎어진 호리병 모양으로 보이는데요.
이곳은 백악기에 분출한 유문암질 용암 등이 굳어 형성된 독특한 경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이며 명승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을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 앞으로 왼쪽 부분은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2022년 4월 19일 최종 목적지는 선운사였지만, 주진천을 따라 구암교부근에서 전좌바위와 병바위를 보고 들렸던 곳이다. 구암교를 건너 영모마을까지 가는 동안 보리밭 길을 지나며 차에서 잠시 내려 사진에 흔적을 남겨보았다.
보리밭 노래가 생각이 나서 잠시 과거를 떠올려 보면, 학창시절에 "사잇길로" 음이 어려워 음악선생님께 교정을 몇 번 받았고, 실기시험에서 A를 받았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고운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뵈지않고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보리밭을 지나 영모마을회관을 지나 맞은편 아산초등학교 우측 뒷 길에 주차를 하면 보이는 푯말이다.
[제2코스] 복분자 풍천장어길을 만나게 된다.
장살비재→할매바위(1.61㎞)→마명마을,반암(0.94㎞)→아산초교(1.32㎞)→병바위(0.70㎞)→호암마을(1.07㎞)→산림경영모델숲, 골든캐슬(2.54㎞)
제2코스 복분자풍천장어길
호남의 8대 명혈에 속하는 곳이 영모마을의 금반옥호(金盤玉壺) 선인취와(仙人醉臥) 형국이다. 금 소반에 옥 술병을 차려놓고 신선이 술에 취해 누워 있다는 뜻이다. 구암(九岩)마을 주변에는 아홉 개의 바위가 있는데, 산신이 말을 타고 내려와 술을 마시기 위해 안장을 얹어두고 탕건을 벗어 두었다는 안장 바위와 탕건바위, 그리고 술에 취해 잠든 신선을 말이 울며 깨웠다는 마명바위와 시끄러워 재갈을 물렸다는 재갈등 바위와 함께 선바위, 형제바위, 병풍바위, 별바위, 병바위까지 다양한 신선설화가 깃든 바위가 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가장 아래에 있는 한옥은 영모정(永慕亭) 이다.
영모정은 변성온이 이곳에 집을 짓고 영모정(永慕亭)이라 편액 했다고 전해진다.
절벽을 따라 쭈욱 내려오면 두암초당이 있습니다. 왜? 이런곳에 정자가 있을까요? 아래 내용에서 확인해 보시죠!~
고창 두암초당 (斗巖草堂) / Duamchodang Pavilion
고창군 향토문화유산_Gochang-gun Local Cultural Heritage
두암초당은 부모가 돌아가시자 시묘살이를 했던 호암 변성온(壺巖 卞成溫 1530~1614)과 인천 변성진(仁川 卞成振 1549~1623) 형제의 지극한 효성을 기억하려고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초당 가까이에 부모 묘소가 있다. 초당은 전좌바위 또는 두락암(곡물을 되는데 쓰는 기구를 덮어씌운 바위) 이라 불리는 바위 밑을 조금 파고 그 안에 구조물을 끼워서 지은 누정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바위굴 누정이다. 창건 이후 훼손되었으나 5대손인 변동빈이 1815년에 중건한 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초당에는 이재 황윤석, 노사 기정진 등 이름난 인물들의 시와 현판, 중건기(보수하거나 고쳐지은 기록) 등이 남아 있다.
건물 지붕은 옆에서 볼 때 팔자八字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평면은 앞면이 3칸, 옆면이 1칸이다. 가운데 작은 온돌방을 들이고 3면에 마루를 깔아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즐기도록 하였다. 이곳은 김소희 명창*이 득음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김소희(金素姬, 1917-1995)는 전북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순옥(順玉)이며, 호는 만정(晩汀)이다. 만정 김소희는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대표적인 여성 명창이다.
Duamchodang Pavilion
Gochang-gun Local Cultural Heritage
Duamchodang, located on the cliff face of Duragam Rock, is a pavilion built by the descendants of the brothers Byeon Seong-on (1530-1614) and Byeon Seong-jin (1549- 1623) in their honor. It is unknown when it was first built. Records state it was reconstructed in 1815 by Byeon Dong-bin, the 5th-generation descendant of the brothers, but it had fallen into disrepair and was replaced with the current building in 1954.
Byeon Seong-on was a Confucian scholar who was taught by the renowned scholar Kim In- hu (1510-1560) and was friends with Yi Hwang (1501-1570), one of the most famous scholar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Byeon Seong-jin was a student of both Kim In- hu and Yi Hwang. Known for his scholarship, he was bestowed with a government post, but he did not pursue an official career and instead lived in retirement in his hometown. The two brothers were known for their filial piety, and it is said that after the death of their parents, they mourned for them at their parents' tombs during the required mourning period.
The pavilion was constructed in an unusual manner, as it is partially situated inside a niche that was dug into the side of the cliff. It consists of a small underfloor-heated room in the center with a wooden-floored porch on each side. The front of the building has no walls, and the windows of the room can be opened so that the beautiful scenery can be enjoyed. In the pavilion, there are several plaques bearing poems written by renowned scholars and calligraphers who had visited this place and records of renovations.
측면부에 斗巖草堂 현판이 보인다. 두암초당은 전좌바위 아래 작은 정자다.
참고로 전북 진안 마이산에 가보면 타포니구조*를 아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 타포니(tafoni): 바위조각이 떨어져 나간 패인 풍화혈(風化穴)
山高水長 : 산은 높고 물은 길다. 정말 유명한 정자에 걸릴 듯한 멋진 말입니다.
위 사진의 우측 현판은 고산경행(高山景行)으로 높은 산과 큰 길이라는 뜻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존경을 받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풀이된다.
정말 사진찍기 어렵네요. 바로 절벽이라... 최대한 안전하게 여러장 남겨봤습니다. 오늘을 위해서~! ^^*
고창 두암초당 (斗巖草堂)은 조선시대 대표적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의 제자 호암 변성온(壺巖 卞成溫 1530~1614), 인천 변성진(仁川 卞成振 1549~1623) 형제의 지극한 효성을 기억하려고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조선 중기 저명한 유학자인 김인후(호남)는 이황(영남)과 친분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호암 변성온, 인천 변성진 형제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과의 교류도 깊었다고 한다.
山高水長~"산은 높고 물은 길다." 라는 의미가 군자君子의 어진 덕德이 후세後世에 길이 전한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니, 아마도 변성온, 변성진 형제의 효성과 더불어 군자의 덕을 기리고자 후손들이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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