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5일 남원 실상사를 찾아가는 길목에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남겼던 곳의 포스팅이다. 인월-월평마을-영월사-중군마을-실상사-백장암-황산대첩비, 동편제마을-관음사 등을 돌아보았다.
▪ 교량명: 중군교 ▪ 위치: 인월면 중군마을
▪ 준공연도: 1999년 ▪ 관리청: 전라북도 남원시
중군교 위의 풍경이다. 사진에 보이는 천의 이름은 람천이다. 인월 방향 람천(좌) / 실상사 방향 람천(우)
실상사 방향으로 천왕봉로가 좌측에 있다. 옆으로 산이 보이는데, 골짜기 이름이 재미있다. 홍두깨골이다.
태조(太祖) / 조선전기 제1대(재위: 1392~1398) 왕.
▪ 자: 중결(仲潔), 군진(君晋)
▪ 호: 송헌(松軒), 송헌거사(松軒居士)
▪ 시호: 지인계운성문신무대왕(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
▪ 초명: 이성계(李成桂)
▪ 개명: 이단(李旦)
▪ 출생연도: 1335년(충숙왕 복위 4) 10월 11일
태조는 조선전기 제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392~1398년이다. 이름은 이성계이며 고려말 홍건적·왜구 등의 침략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개경에 돌아와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한 뒤 창왕을 옹립해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했다. 신진사대부들의 적극적인 호응에 힘입어 신흥 정치세력의 대표로서 기반을 닦아 공양왕을 내쫓고 새 왕조의 태조로 즉위했다.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한양으로 천도하여 새 시대를 열었으나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왕자들의 싸움에 실망하여 왕위를 넘기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군(中軍) 마을의 유래와 연혁
1380년(고려 우왕 6년, 삼남지방에서 노략질하던 왜구를 정벌하기 위해 삼도 도원수(三道 都元帥) 이성계(李成桂) 장군은 황산(荒山)에 본진을 두고, 우리 마을에 중군(中軍)을, 상우에 소군, 서무, 동무에 척후복병, 사창, 창물에 군수창을 주둔시켰다. 그는 황산(荒山)에서 영남을 거쳐 북진 중인 왜장 아지발도(阿只技都)를 기다리고 있었다.
7척이 넘는 키의 아지도가 팔랑재를 넘어와 대치했다. 이성계장군은 신궁 소리를 듣는 뛰어난 활솜씨로 그들 무찌를 작전이었다. 그러나 날이 저물고 마침 그믐밤이라 적군과 아군의 분별이 어려워 싸움을 할 수가 없었다. 이성계 장군은 하늘을 우러러 “이 나라 백성을 굽어 살피시어 달을 뜨게 해 주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잠시 후 어디서 솟아올랐는지 보름달이 떠 천지가 개미 기어가는 것까지 분간할 수 있을 만큼 밝았다. 이성계 장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부원수 퉁두란에게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게 했다. 화살이 그의 투구를 맞추자 끈이 벗겨지려 하는지라 입을 벌려 이를 막으려는 찰나에 이성계 장군의 화살이 그의 목구멍을 꿰뚫어 마침내 죽임을 당했다. 그때 흘린 핏자국이 지금도 황산 람천에 있는 피바위에 남아 있다.
이때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올렸다 하여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이 전해졌으며, 우리 마을은 중군(中軍)이 주둔하였다 하여 중군리(中軍里) 또는 중군동(中軍洞)이라 불리어졌다.
1384년*(고려 우왕 10년) 배 씨(裵氏) 일가가 우리 마을에 처음 이주하면서 자손들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그 후 전주 최씨(全州 崔氏) 김해 김씨(金海 金氏), 안동 권씨(安東 權氏), 남원 양씨(南原 梁氏) 등 4개 씨족이 정작 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여기에 이씨, 박씨, 양씨, 시씨, 오씨, 한씨 등 10여 성씨가 모여 대촌을 이루어 살기 좋은 마을, 칭찬받는 마을로 성장 발전하였다. 지리산의 관문 60번 국도변, 지리산 천왕봉 뱀사골 노고단의 입구에 위치한 우리 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제3길의 통로이기도 하다. 토속적인 전래의 영농, 산채 먹거리를 재현하여 지리산을 찾는 탐방객에게 볼거리, 먹거리, 휴식처를 제공하고 남원의 지역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1994년에 중군민속관광마을로 지정되었다. 2016년도에는 지리산 둘레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중군청이 건축되어 방문객들에게 편안한 옛 마을의 정취를 전하고 있다. 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마을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염원하던 마을 어르신들의 뜻과 주민들의 성원을 담아 우리 마을의 유래비를 세운다. 풍요롭고 건강한 장수마을 정감이 있는 고향마을로서 우리 중군마을을 오래 기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6. 6.)
*비석에는 1385년(고려 우왕10년)으로 쓰여있으나, 검증하면 1384년이 고려 우왕 10년이다.
*피바위: 황산대첩 전투에서 왜장 아지발도(阿只技都)와 왜구를 몰살하고 주변 계곡과 천이 왜구의 피로 붉게 물들면서 피가 스며든 곳이 피바위라고 한다. [황산대첩비지와 피바위는 다음 포스팅에서 봐요!~]
주차장 앞에 지리산 에코빌리지 안내도를 살펴봤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남원시-장수군-함양군-산청군-하동군-구례군-곡성군의 마을이 있다. 지리산 에코빌리지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7개 시군, 9개 마을의 특징과 문화를 엮은 옛 마을 조성사업으로 다시 찾고 싶은 마을, 향수를 느끼게 하는 마을로 조성되어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옛 마을의 정겨움과 자연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중군(中軍) 마을의 유래와 연혁과 같은 내용이나 안내도의 중군마을 유래와 특산물도 살펴본다.
중군마을 유래
*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중군리 80-4 일원
중군리는 삼한시대에 부터 지리산을 경계로 진한과 변한의 국경지역에 위치하여 군사상의 요충지였으며, 마한 54개국 중 고랍국(古臘國)이 위치하고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에 속했고 고려시대에는 운봉현에 속하였다. 고려 군대의 기본편성은 중.전.후.좌.우군의 오군이었는데 중군은 그 가운데서 중앙에 위치한 부대이며 고려 오군 중 중군이 주둔한 곳이므로 마을이름을 중리라 하였다 전해진다. 고려말 1380년 삼도순찰사였던 이성계의 황산대첩 이후 1384년경(고려 우왕 10) 배씨(裵氏) 일가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1590년경 배씨족이 쇠퇴하면서 전주최씨, 김해김씨, 안동권씨, 남원양씨 등 4개 씨족이 정착하면서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 중군마을 특산물: 잣, 호두
사실 이곳을 알고 온 것이 아니라, 전주에서 출발~영월사를 보고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정도라 점심을 먹고 갈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마침 남원 지리산 자락에 국수교과서라는 재미있는 국수집이 보여서 머물게 된 것이다.
비빔면과 비비빅-국수교과서: OPEN 11:00~재료소진 시까지
*목요일엔 국수도 결석합니다. 063.635.8717 딱 봐도 스토리텔링이 있는 집이라 보였다.
국수교과서
교과서처럼 정석으로 만들겠습니다. 주인장이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아담하고 재미가 있어 보였다. 따로 간판도 없다.
일단 식당 내부는 열평남짓으로 사람이 가득 찼다. 테이블도 많지 않고, 여주인장이 상당히 바쁘게 움직인다. 주메뉴는 비빔국수였고, 개인적으로 물국수를 좋아해서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하신다. 이때 대가족 단위 손님들이 들어오고... 웨이팅이 길어진다. 사진을 찍기도 힘들다. 그래도 몇 장 남겨보았다.
비빔생면국수를 맛있게 먹는 방법
국수 먹으면서 신세한탄 금지
짝사랑 고백 금지
옛날에 잘살았다는 구라치기 없기
뒷담화 환영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먹기
옆사람이 맛있게 먹더라도 질투하지 않기
첫 입간판의 느낌이 맞았다. 이런 산골짜기에 많은 사람들이 밀려오는 것도 신기 했지만 올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밖으로 나와 우측옆으로 문을 열어보니 넓은 테이블이 있었다. 겨울에 운영했다고 한다. 현재는 먼지가 쌓여있어서 아닌 것 같았다.
방문객 -정현종(시인)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메뉴판
그동안 15개 이상의 국수를 실험해 봤습니다. 동네 분들, 외지(서울, 부산, 파주 등등)에서 온 선후배, 지인들에게 국수 맛에 관해 물어봤습니다. 짜다, 맛있다, 잔치국수랑 다르다, 좀 비싸다, 스파게티 같다. 가격도 8천원, 9천원, 심지어는 만이천원 정도 받으면 좋겠다(고마우신 분 ^^) 하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최종적으로 국수는 거창에서 만드는 ‘거창한 국수’ 맞춤 생면 국수로 결정했습니다. 국수는 무한리필해 드리고, 수육도 좀 더 드리고, 후식으로는 비비빅을 드리기로 하고..., 조심스럽지만 만원 받겠습니다. 일단은 단일 메뉴로 오전 11시부터 선착순 50그릇만 팔려고요.
아...갑자기 국수나무에서 웬 장면전환 이냐고요? ^^:: 너무 사람이 많이 오고 주인장이 바쁜 관계로 사진만 찍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왜 전유성아저씨 사진이 있나 했는데, 진짜 주인장이 전유성 아저씨더라고요. 안에서 바쁘신지 호출을 해서 얼굴을 봤습니다. 시간 관계상 국수를 먹지는 못했으나, 다음에 인월을 지나갈 일이 있다면 그때는 꼭 먹고 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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