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럭셔리크로우의 전주 기행
  • 럭셔리크로우의 전주 기행
  • 럭셔리크로우의 전주 기행
전주

전주 흑석골(한지골)과 전주천년한지관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3. 9. 22.
반응형

2023년 5월 31일은 흑석골의 전주천년한지관 개관 1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소식을 듣고 방문했던 날은 2023년 6월 2일이다. 본 포스팅의 시작은 흑석골 만남의 광장에서부터 시작한다. *photo by : 전주 럭셔리크로우

전주천년한지관_2023.06.02.
전주천년한지관_2023.06.02.

 

오늘의 목적지는 전주천년한지관이고, 주차는 바로 아래 흑석골 만남의 광장에 하거나, 전주천년한지관 주차장에 하면 된다.

흑석골 만남의 광장_주차장
흑석골 만남의 광장_주차장

 

만남의 광장 옆 정자
만남의 광장 옆 정자

 

흑석골 만남의 광장 앞으로 노거수와 흑석골 이야기가 써 있는 비석이 있다.

흑석골_노거수(老巨樹)
흑석골_노거수(老巨樹)

 

노거수(老巨樹) : 전주시 노거수 관리번호: 39

▪수종: 느티나무 ▪수령: 250년

▪나무둘레: 3.5m ▪수고: 18m

▪관리자: 전주시장 ▪소재지: 전주시 완산구 서서학동 987-1번지

그리운 흔적 잊지 못할 사연(흑석골 이야기)
그리운 흔적 잊지 못할 사연(흑석골 이야기)

 

그리운 흔적 잊지 못 할 사연

천년전주 남문 밖 여기 흑석골바위 반, 흑이 반 반석리라고 하였더니 이 바위 조차 검은 빛을 띠고 있어 속칭 흑석골* 이랍니다. 견(絹:명주) 오백년. 지(紙:종이)천년이라는 유명한 한지 공장이 있었기에 한지 골짜기라고도 한답니다. 바로 이곳이 하늘 땅 자연 신 사람 조상이 아름다운 추억 안고 서로를 섬기며 살아온 고장입니다. 보광재** 걸어 넘는 길손에게 횃불을 쥐어 주었고 당산나무 그늘 아래 앉으면 칠흑 같은 고생 벗어 나자며 너 나없이 다독이던 인정 넘친 자리입니다. 빈 손 돈 없어도 오로지 정성 바쳐 평안과 풍요를 비신 어른들 비록 떠났을지라도 당산제궐 사야 있을 수 없다는 위대한 심성들이 좁은 땅 밤 길고 낮 짧아도 하나 되니 주민들은 우연이 필연으로 피어오르도록 마음 풀어 놓아 모두의 사랑이 포용과 화합의 보화가 되었기에 언제나 허리 낮춰 바리라보고자 이 돌을 여기 놓습니다. [이천구년 사월 십오일 황용순 삼가지음]

 

*흑석골(동서학동현재 서서학동)

속칭 한지(韓紙) 골짜기라고도 불리는 이 계곡은 전주교에서 완주군 구이면을 향해 가다보면 공수내 다리가 나오는데 이 공수내 다리에서 동쪽으로 뻗은 계곡을 올라가면 흑석골이 나온다.

흑석골은 바위가 반절 흙이 반절이라고 해서 반석리(半石里)라고도 했는데 이 바위조차 모두 검은빛을 띄고 있어 속칭 흑석골(黑石谷)이라고도 했다.

검은색을 띈 바윗덩이인 흑석(黑石)은 일명 흑연(黑鉛)의 성질을 띈 돌덩이로 한때는 이곳의 돌을 캐어다가 감마제(減磨劑)나 차량의 도말용(塗抹用)의 원료인 흑연, 흑석이라고 하여 인기가 높기도 했다.

이 흑석골의 계곡물은 일 년 내내 마르지 않아 전주 특산물인 한지 생산공장이 들어서 한지골이라고도 했다.

 

*보광재(동서학동 현재 서서학동)

공수내 못미처 장승백이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꺾으면 옛날 도수장으로 가는 길이 나선다. 보광재는 전주천과 세내의 양 쪽 물줄기를 보내는 분수령의 하나로 백제 무왕(武王)때 보광사(普光寺)란 절이 있었다고 하여 보광재라고 한다.

지사(地士)들의 설에 의하면 호랑이 목의 혈이라 하여 복호항지맥(伏虎項之脈)이라고 하여 보광재라고도 하는데 완산부성 변두리 치고는 깊은 계곡으로 유명하였다. [글 출처: 전주시청_흑석골, 보광재]

학산 안내도
학산 안내도

 

고덕산이 있는 동쪽방향의 길(흑석2길)로 좌회전을 하는 구간에 나오는 학산 안내도를 보고 전주천년한지관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우측으로 전주천년한지관이 보입니다.

전주천년한지관
전주천년한지관

흑석2길
전주천년한지관 주차장
주차장에서 전주천년한지관 입구
주차장에서 전주천년한지관 입구

 

전주천년한지관
전주천년한지관

 

전주천년한지관

 

JEONJU MILLENNIUM HANJI MUSEUM

전주천년한지관 켜켜이 쌓인 한지에서 천년의 시간을 마주합니다. / 대표번호 063-281-1630

전주천년한지관_1,2층 안내도
전주천년한지관_1,2층 안내도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호접란과 수국도 사진에 담아봅니다.

전주천년한지관 입구

호접란
호접란
수국
수국
 

천장의 푯말
천장의 푯말

 

바로 좌측에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2층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전시관 입구 앞 조형물
전시관 입구 앞 조형물
2층 모습
2층 모습
한지를 말리고 있습니다.
한지골 답습니다.
나무벤치가 있고 우측건물이 더숲요양병원
나무벤치가 있고 우측건물이 더숲요양병원

1층 건조방, 초지방
2층 회의실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과 2층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과 2층

 

전주천년한지관 내의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니 한지로 붙인 포스트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전시관 입구
전시관 입구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1950~90년대 ‘한지골’이라 불렸던 ‘흑석골’을 중심으로 전주 일대 한지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그 흔적을 되짚어 한지에 담긴 이야기를 펼쳐봅니다.

지천년견오백 紙千年絹五百
지천년견오백 紙千年絹五百

 

지천년견오백 紙千年絹五百

아버지는 한지를 만드셨다.
아버지는 한지를 만드셨다.

 

아버지는 한지를 만드셨다. 할아버지 대부터 해온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돕다가 혹은 형을 돕다가 그렇게 숙명처럼 한지를 만들었다. 한지를 만드는 일이 특별할 것도 없이 일상적이었던 곳, 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한지골’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도 뒷집도 건너집도 모두 한지를 만들었다. 우리 마을은 사시사철 맑은 계곡 물이 졸졸 흐르던 ‘흑석골’이었다.

전시관의 내부
전시관의 내부

 

한지. 목숨을 지키는 갑옷이 되다.
한지. 목숨을 지키는 갑옷이 되다.

 

예로부터 전주는 최고의 한지를 생산하는 종이 명산지였다. 전주에서 생산된 종이는 외교문서, 교지, 과거지 등에 귀하게 쓰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격변하는 근현대기를 거치면서 한지는 운명의 부침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굴곡진 시간 속에서도 묵묵히 한지의 명맥을 이어온 이들이 있었다. 바로 한지골로 불렸던 이곳, 흑석골에서 가업을 잇거나 운명처럼 한지를 만들어온 이들이다.

 

이곳에 힘겨운 순간 속에서도 한지 속으로 스며들었던 흑석골 사람들의 시간, 추억, 사람에 대한 기억을 담았다. 한지의 영광의 순간과 나락의 순간, 그리고 새롭게 비상하는 순간.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해 온 흑석골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한지 갑옷
한지 갑옷

 

한지. 목숨을 지키는 갑옷이 되다. (Hanji, becoming the armor to protect life)

한지는 유연성흡수성, 통기성 및 계절에 따른 방한성 보온성 등이 탁월해 우리 삶 곳곳에서 그 역사 만큼의 명품을 만들어 냈다. 특히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의 껍질은 섬유의 길이가 길고 강인하여 내구성이 뛰어나다. 종이라는 소재의 한계를 넘어 부드럽지만 강한 한지가 마침내 목숨을 지키는 갑옷이 되었다.

한지 모빌
한지 모빌

 

한지 뜨는 어느 날
한지 뜨는 어느 날

 

한지 뜨는 어느 날

어김없이 흑석골에는 고구마를 삶는 듯한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닥을 삶는 냄새이다. 뻣뻣하던 닥나무는 불을 때면 팍 가라앉으면서 익었다. 삶아낸 닥은 껍질을 벗겨 하얗게 다듬었다. 벗긴 가죽은 잘 말렸다가 종이를 뜰 때 삶아서 건져뒀다가 두들겼다. 흑석골 곳곳에 차닥차닥 경쾌한 방망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들겨 놓은 것들을 쟁여놨다가 물을 하나 잡아서 풀대를 쳐서 풀었다. 덩어리만 깨지게 빼서 지통 옆으로 가져다 놓고 한 통씩 떴다. 찰랑찰랑 물질소리가 일상적으로 들리는 정겨운 풍경이었다.

 

보름달 뜰 때 한 달에 열흘 정도 태를 건져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깨끗하고 맑은 옹달샘에 파랗게 낀 이끼는 보름에 살이 차올랐다 곧 이지러지는 달처럼 열흘이면 녹듯이 사라졌다. 단 열흘만 허락된 시간에 귀하게 건져낸 태로 청태지를 만들었다.

흑석골의 한지 이야기
흑석골의 한지 이야기

흑석골에 대한 기억
흑석골에 대한 기억
한지 그리고 가족
한지 그리고 가족
흑석골의 종이들
흑석골의 종이들

 

흑석골의 자취
흑석골의 자취

 

한지 장인들
한지 장인들

 

한지 뜨는 어느 날
한지 뜨는 어느 날

 

한지 뜨는 어느 날

초지공이 많은 곳도 있고 적은 곳도 있었다. 지통을 빌려서 만드는 이도 있고 30-40개씩 두고 만드는 이도 있었다. 무얼 얼마만큼 가지고 있든 제 몫대로 바지런히 종이를 만들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이 종이의 맛도 달랐고, 만드는 이들 각자의 고민과 노력들로 종이들이 만들어 지던 시절이었다. 귀퉁배기 맞아가면서 배운 풀 잡는 기술로 지압이 좋은 종이가 만들어졌다.

 

20세기 어드메 쯤 흑석골에서 한지 뜨는 날, 그날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아이들 대학도 보내고 생활도 했다. 그리고 시간을 돌고 돌아 흑석골에서 다시 ‘한지 뜨는 어느 날’이 이어지고 있다.

흑석골 사람들
흑석골 사람들 (한지 만드는 모습)
흑석골 사람들
한지 체험 사진
흑석골 사람들
흑석골 사람들

 

흑석골 사람들

공수내 다리 위쪽으로 벌어지는 삼거리, 동구나무 우물 개천다리. 지금과는 사뭇 다른 흑석골 풍경. 불과 반세기 전 이곳에는 물길을 따라 줄지어 한지공장이 있었다.

 

아버지나 형님에게 일을 배워 한지를 뜨기 시작했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종이를 만들고, 종이에 진심이었던 흑석골 사람들 이곳에서 만들어진 종이는 전부 내구성이 좋고 아름다웠다. 이 종이들은 전국에 있는 필방에 팔려나가고 일본에 수출되기도 했다.

 

번영의 시간에서 굴곡진 시간을 관통하며 한지가 저물던 시절에도 한지가 전부였던 흑석골 사람들. 반세기 전 ‘한지골’이었던 흑석골은 그 안에서 한지를 만들었던 이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다시, 한지골
다시, 한지골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전주천년한지관
전주천년한지관

 

전주한지 왜 흑석골인가?
전주한지 왜 흑석골인가?

전주한지 왜 흑석골인가?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전시물
전시물
한지 本 본_최성일
한지 本 본_최성일
한지 本본
한지 本본

 

한지 本 본

전주한지를 소개하는 ‘한지본’은 장인들이 제작한 우수한 한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모아놓은 모음집입니다.

위에서 부터 전주전통한지원_강갑석 / 용인한지_김인수 / 천일한지_김천종 / 성일한지_최성일

전시물
전시물
다시, 한지골
다시, 한지골

 

다시, 한지골

紙千年絹五百(지천년견오백) 종이(한지)는 천년이요 비단은 오백이라

 

삭지도 썩지도 않고 천년 세월을 견뎌온 한지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온 저력이다.

아흔아홉번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번째 만진다 하여 ‘百紙(백지)’라 불렸던 한지.

그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온 이들이 있었기에 한지는 이곳 ‘흑석골’에서 다시 한번 천년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다시, 한지골. 한지로 이어온 천년, 한지로 이어갈 천년 그 중심에 흑석골이 있다.

한지를 이용한 상품_향 주머니
한지를 이용한 상품_향 주머니
한지를 이용한 상품
한지를 이용한 상품
한지를 이용한 상품
한지를 이용한 상품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한지의 시간을 펼칠지도

1950~90년대 ‘한지골’이라 불릴 만큼 전주한지의 명성과 가치를 이어 온 흑석골을 중심으로 전주 일대 한지 공장의 시간을 펼쳐봅니다. 전주한지의 흔적을 되짚어 보며 전주가 한지의 본고장이자 한지 유통산업의 중심이었음을 다시금 돌이켜봅니다. 

 

조선 시대에는 전국 한지의 약 40%를 전라북도에서 생산했습니다. 특히, 전주는 전라감영의 소재지로 전라도 지역에서 만든 한지가 다량으로 유통·판매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명실공히 ‘한지골’이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친 곳이 바로 ‘흑석골’입니다. 한국 전쟁으로 인근 지역의 한지공들이 흑석골로 피난 왔고, 이후에는 국가적 재건과 수출 호황으로 흑석골에 한지 생산 단지가 형성되었습니다. 이후 80년대까지 수많은 한지 공장이 있었지만, 폐수와 악취 등 환경오염이 국가적 고민으로 떠오르며 한지골은 쇠퇴해 갔습니다.

오늘날 흑석골의 모습은 전과 달라졌지만, 당시 기억과 삶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펼쳐진 흑석골의 시간 속에서 전주한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시금 마주합니다.

...펼쳐진 흑석골의 시간 속에 전주한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흐르고 있습니다.

 

위 내용은 2022년 12월 기준이며, 신문·논문·인터뷰집·마을 조사서 등을 참고했습니다. 한지 공장 위치 및 외관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자료는 지속적으로 보완 및 수정할 계획입니다.

전시관의 입구방향
전시관의 입구방향

 

전주한지 왜 흑석골인가?
전주한지 왜 흑석골인가?

 

전주한지 왜 흑석골인가?

전주천년한지관 돋움집 기록 : IN 한지골

1층 계단에서 2층을 보며
1층 계단에서 2층을 보며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에는 전통 한지를 만드는 장소들이 있습니다.  중앙에 넓은 곳이 한지마당으로 이름을 잘 지었습니다.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 구조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 구조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
전주천년한지관의 1층

 

전주천년한지관의 2층 회의실
전주천년한지관의 2층 회의실

 

초지방 입구 우측에 한지를 만드는 방법이 보입니다.
초지방 입구 우측에 한지를 만드는 방법이 보입니다.

 

백 번의 손길
백 번의 손길

 

백 번의 손길로 펼쳐진 ‘백지(百紙)’는 천년의 가치를 담아 냅니다.

한지 만드는 과정

닥나무채취-닥무지(닥나무 찌기)-닥피(닥나무 껍질) 벗기기-흑피(겉껍질)제거-중해(잿물에 닥피 속껍질을 넣고 삶기)-세척·표백-고해(닥돌 위에 닥피를 올려 방망이로 두드리며 짓이겨)-지료제조-초지(대나무 발로 종이 뜨기)-압착(물 빼기)-건조(말리기)-도침(덜 마른 종이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두드리기)

비단의 쓰임엔 한계가 있을지언정, 한지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원료처리장

원료처리장

한지의 재료 닥나무(위 사진은 껍질을 벗긴 것)

 

자재저장고
자재저장고

 

닥돌이 보입니다.
도침

 

자재저장고 / 건조장 / 한지방
자재저장고 / 건조장 / 한지방

 

건조장
건조장
닥나무피 건조
닥나무피 건조
닥나무피 건조
닥나무피 건조

 

전통 한지를 만드는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생각되는 초지방을 살펴보겠습니다.

초지방
초지방
박신태, 곽교만, 오성근_전주천년한지관 초지장
박신태, 곽교만, 오성근_전주천년한지관 초지장
세척통
세척통
한지를 만드는 공간과 장비를 설명
한지를 만드는 공간과 장비를 설명
초지방 안 창고
초지방 안 창고
초지통과 닥나무피
초지통과 닥나무피
초지통_한지를 뜨기 위해 원료를 물에 풀어 담는 통
초지통_한지를 뜨기 위해 원료를 물에 풀어 담는 통
압착기_뜬 수초지를 압착하여 탈수시키는 장치
압착기_뜬 수초지를 압착하여 탈수시키는 장치
압착한 초지
압착한 초지

 

한지방
한지방

 

한지 저장고
한지 저장고
한지 저장고
한지 저장고

 

건조방
건조방
건조방
한지 건조방
건조중인 한지
온돌방에서 건조중인 한지

 

백 번의 손길로 펼쳐진 ‘백지(百紙)’는 천년의 가치를 담아 내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전주천년한지관은 전통한지 계승 프로그램(전통한지 전문 인력 양성, 제조 교육, 전통한지 원료 보급 사업) 및 한지 워크숍, 전시, 공간연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문의:063-281-1630

흑석골 전주천년한지관
흑석골 전주천년한지관

 

조선 최고의 종이 전주한지 / Jeonju Hanji, the best paper in Joseon

전주는 한지의 본가이다. 우리 종이, 한지는 기록용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용품을 만드는 재료로 넓게 활용되었다. 한지의 주 생산지가 전라도이고 그 중심이 전주이다. 조선 초의 「경국대전」에 실린 지장 수를 보면, 전주와 남원이 각각 23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1900년에 발행한 러시아 측의 보고서 「한국지」에 의하면 종이가 한국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다방면에 걸쳐 널리 쓰이고 있고, 제지술만큼은 한국이 중국보다 앞섰으며, 가장 양질의 종이와 절대다수의 종이가 전라도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 중심이 전주이다. [글 출처: 전주역사박물관_전주 문화예술실]

온고을 전주에 한지의 너울이 일렁입니다.
한지에 켜켜이 쌓인 천년의 시간을 마주합니다.
한지에 담긴 세월, 그 세월을 헤아립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