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부처님 오신 날에는 워낙 사람이 많고, 연등탑이 커서 원하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같은 날 다녀온 산속등대 사진도 많았고, 불교는 전혀 문외한이라 공부와 정리가 필요했다. 또한 글을 수정하는 오늘 추가 사진을 찍고 와서 보완 업데이트를 해주고 있다.
완주 송광사(松廣寺) 1, 2편을 건너 뛰고 오셨다면 아래 URL을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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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천왕전_4)과 정문 좌우의 불화
이젠 뭐 이 정도 해설이야 그냥 자동으로 쓴다. *^^* 아래 글의 출처는 위 해설이다.
완주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 (完州 松廣寺 塑造 四天王像)
Clay Four Guardian Kings of Songgwangsa Temple, Wanju | 보물 제1255호
완주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은 조각승 여인과 금산 등이 인조 14년 1636부터 13년에 걸쳐 만들었다. 조선 후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나라가 위험에 빠지자 전국 여러 사찰에서는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사천왕 신앙의 가피를 널리 구하였다. 사천왕은 지혜의 보검을 든 지국천왕이 동방세계를, 불탑과 정법의 깃발을 든 광목천왕이 서방세계를, 용과 여의주를 든 증장천왕이 남방세계를, 비파를 든 다문천왕이 북방세계를 관장하면서 그곳 중생들의 선악업보를 면밀하게 살펴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을 정해준다.
사천왕상의 크기는 425cm이며, 무인 같은 체형에 자비로운 보살의 용모와 형상을 하고 있다. 완주 송광사 소조 사천왕상은 검, 창, 용과 보주, 깃발과 불탑을 손에 쥐고, 악귀를 발로 짓누르는 사천왕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담아내고 있다. 송광사의 소조 사천왕상은 소조상의 제작 기법과 사천왕상의 신체적인 특징, 균형감, 조형성 등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사천왕상으로 평가된다.
1994년 송광사 사천왕상을 조사할 때 사리 보석 약재 등을 넣어두는 후령통과 사천왕상 조상에 참여한 시주자 명단, 다수의 고려 시대 목판본 경전, 충지 등이 복장유물로 발견되었다.
송광사 천왕문을 들어갔을 때에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있고, 왼쪽에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엄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의 사천국(四天國)을 다스리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왼쪽에는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위치하고 있다.
송광사의 동방 지국천왕상은 오른쪽 팔꿈치를 높이 쳐들어 칼을 잡고, 왼손은 엄지와 검지를 길게 펴서 칼끝을 잡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왼쪽 다리 옆의 악귀는 상의를 벗고 오른쪽 어깨로부터 굵은 끈을 왼쪽 옆구리에 걸쳤으며 바지를 입고 있다.
북방 다문천왕상은 양손으로 비파를 들고 있으며 지상에서 약간 들어 올린 왼쪽 다리를 악귀가 오른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악귀는 상투 장식에 눈이 심하게 튀어나오고 주먹코에 광대뼈가 튀어나와 입체감을 나타낸다.
남방 증장천왕상은 왼손에는 보주를 잡고 오른손으로 용을 움켜쥐고 있는데, 용은 입을 벌리고 천왕상의 얼굴을 향해 치솟고 있으며 꼬리는 팔뚝을 한번 휘감으며 올라가고 있다. 악귀는 꽃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데, 발등의 근육과 발톱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상은 오른손을 들어 깃발을 잡고 있는데 깃발은 뒤로 휘어졌다. 왼팔은 거의 어깨까지 올려 손바닥 위에 보탑을 올려놓았다. 다리 아래의 악귀는 측면을 향하고 있는 다른 악귀에 비해 정면을 향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서방 광목천왕상 왼쪽 머리끝 뒷면에는 조선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 글이 있으며, 왼손에 얹어 놓은 보탑 밑면에는 정조 10년(1786)에 새로이 보탑을 만들어 안치하였음을 알려 주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이 사천왕상은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병자호란 이후 국난극복의 강한 의지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천왕상이 지녀야 할 분노상, 용맹상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글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천왕문을 넘어선 주변의 모습이다.
포대화상_18
포대(布袋, 생년 미상-917년)는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 십국 시대까지 명주(현재의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실재했다는 전설적인 불승이다. 흔히 수묵화의 좋은 소재로 여겨지며 큰 포대를 멘 배불뚝이 승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일본에서도 칠복신 중 하나로서 추앙받고 있다. [글 출처: 위키백과]
지장전_16
지장전에는 소조지장보살삼존상 및 권속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8호)이 있다.
아래 사진은 지장전의 단청 모습이며 현판 양쪽에 특별히 귀면도가 눈에 띈다. 안에는 소조지장보살 삼존상과 그 권속상이 있다.
범종루_6
범종루(보물 제1244호)에는 동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등 사물(범종, 운판, 목어, 법고)이 있는 곳으로 송광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범종루 지붕의 공포 및 단청, 현판 모습
완주 송광사 종루(完州 松廣寺 鐘樓) | Bell Pavilion of Songgwangsa Temple, Wanju | 보물 제1244호
완주 송광사 종루는 십자형 평면 위에 다포 팔작지붕을 교차시켜 십자형으로 올린 2층 누각으로, 이러한 구조는 국내에서 유일한 예이다. 송광사 종루가 언제 건축되었는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법당초창상층화주덕림」 1725에 송광사의 건축물로 '종각'이 언급되어 있고 이옥의 「사관」에도 '고루*'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임진왜란 이후 송광사를 중창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종루의 아래층은 모든 면이 지면에 닿아 있고 위층은 마룻바닥에 난간을 두르고 있다. 누각 중앙에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범종을 달았고, 사방으로 돌출된 공간에는 수중 생명을 위한 목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위한 운판, 땅 위에 살고 있는 중생을 위한 법고 등을 달았다. 이 네 가지 법구를 가리켜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고 하는데,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하루에 세 번, 새벽, 정오, 저녁에 울린다.
완주 송광사 종루는 전체적으로 부재가 작고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어 한국 전통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힌다.
* 고루 : 큰북을 달아 놓은 누각
법구사물(法具四物) 범종, 법고, 목어, 운판
현재 송광사 종루에 달려 있는 범종은 현대에 제작된 것 같고, 백화도량종남산 송광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송광사 범종의 사진은 아래와 같다.
송광사 동종 (松廣寺 銅鍾) | Bronze Bell in Songgwang Temple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이 범종은 조선 숙종 42년(1716)에 만든 것으로 높이는 107cm, 밑 너비는 72cm이다. 종 어깨 위 가장자리에는 작은 꽃잎무늬 장식을 줄지어 세우고, 그 아래에 방패 모양 꽃무늬를 두었다. 그 밑에는 종의 둘레를 따라 구슬형 돌기 60개와 위아래를 구분하는 띠를 둘렀다. 아랫부분에는 작은 원 8개를 조각하고 원 안에 범(梵) 자를 새겼으며, 그 아래에 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종의 밑자락에는 높이 6cm 정도의 덩굴 문양을 둘렀다. 범종에 새긴 글로 보아, 이 종은 무등산 증심사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며 영조(1724~1776) 때 고친 적이 있다.
세심정(洗心亭): 마음을 깨끗이 씻는 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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