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정(飛飛亭) | 소재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비비정(飛飛亭)은 전주천과 삼천천이 합류하고 소양천과 고산천이 합류되는 만경강 한내의 삼례읍 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선조6년(1573)에 창주첨사(昌洲僉使) 최영길(崔永吉)에 의해 창건되었고, 그 후 영조 28년(1752)에 전라관찰사(全羅觀察使) 서명구(徐命九)에 의해 중건되었다.. 오랜 세월에 퇴락된 것을 19세기 초기에 철거된 것으로 추정되며, 1998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날에는 비비정(飛飛亭) 가까이 한내 위에 소금배 젓거리배 등 돛단배가 오르내렸으며, 한내의 눈부신 모랫빛이 유명하여 모래찜을 위한 관광객이 찾아들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삼례읍이 호남의 교통 요충지여서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리는 나그네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시(詩)를 지어 주고 받는 정취를 느끼게 하고 있다.
고고한 달빛 아래서 고기비늘처럼 반짝 거리는 물결을 찾아 날아드는 기리기 떼에 시에 대한 흥취를 달래고 고기를 낚는 어화(漁火)를 비비정에서 바라보는 것은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닮아 조선시대 비비낙안(飛飛落雁)이라는 이름으로 완산8경(完山八景)중 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글 출처: 비비정 비각]
현재 비비정(飛飛亭)의 편액은 서예가 강암 송성용이 쓴 것이고, 임실군 성수면 봉강리에 있는 비비정의 편액과 비비정기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
비비정(飛飛亭)의 유래
조선시대 1573년(선조 6년)에 최영길에 의해 창건된 비비정은 지명을 따와 이름을 지었다고도 알려졌지만, 최영길의 손자 최양이 우암 송시열에게 부탁하여 지어졌다는 내용이 송시열이 쓴 송자대전(宋子大全) 중 기문인 비비정기(飛飛亭記)에 정자명의 유래로 나온다.
송시열은 무관을 지낸 최영길과 그의 아들 최완성, 손자 최양을 언급하면서 최양이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데도 정자를 보수한 것은 효성에서 우러난 일이라 칭찬하며, 최양의 장대한 기골을 보고 장비(張飛: 중국 삼국시대 명장)와 악비(岳飛: 남송 명장)를 떠올리며, 장비와 악비가 용맹뿐 아니라 충절과 효로도 알려진 사람이라 날비(飛) 두 자를 써서 귀감으로 삼는다면 정자의 규모는 비록 작아도 뜻은 큰 것이라 하여 비비정(飛飛亭)이라 하였다.
풍요의 강 만경강을 설명한 푯말로 만경강이 보호종의 서식지이며 희귀 철새가 날아드는 생태의 통로임을 설명한다.
만경 8경 중 5경이 비비낙안(飛飛落雁)이다.
아래 사진들은 비비정(飛飛亭)에서 바라본 구 만경강철교와 신 만경강철교의 모습
비비정(飛飛亭)에서 바라본 강과 철교, 멀리 보이는 전주 시가지와 산, 들, 구름은 꽉 막힌 가슴을 뻥 뚫리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예전에는 비비정(飛飛亭) 뒤편에 작은 건물을 사람들은 잘 몰랐으나, 현재는 호산서원 푯말을 만들어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다.
호산서원 | 湖山書院
소재지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137(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길 73-16 / 73-10)
-향사인물 : 정몽주, 송시열, 조선현종 때 문신 김수향, 유학자 김동준, 조선후기의 무신 정숙주를 배향.
언제 건립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창건한 이후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모두 헐렸다. 일제강점기 때 재건하였으나, 6.25전쟁 당시 성원 경내에 있던 신앙재와 강당이 불에 타 없어졌다. 그 뒤 1958년 이 지방유지 한증수와 유림들의 노력에 의해 산앙재와 강당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경내에는 삼문 1동 전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인 사당, 강당1동 등이 있으며, 해마다 음력 2월 말 정(丁)일을 택하여 제사를 지낸다. 서원 편액은 유재(裕齋) 송기면(1882~1956)이썼고, '호산서원 중수 사직기'가 남아있다.
- 호산서원, 삼남대로의 관문인 삼례읍을 들며 나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묵향(墨香)으로 은은하겠지만, 지금은 퇴락한 채로 비비정(飛飛亭) 뒤편에서 만경강을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다. [글 출처: 완주군 문화원]
비비정 뒤에 있는 정문은 항상 잠겨 있지만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길 73-10의 측면에 길이 있어 들어갈 수 있었다. 몇 장의 사진과 더불어 호산서원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았습니다.
호산서원(湖山書院)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조선후기 정몽주 등 3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1805년(순조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몽주(鄭夢周)·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의 절의와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송시열이 거주하였던 비비정(飛飛亭) 곁에 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뒤 유림에 의하여 용호단(龍湖壇)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중건하였으며, 6·25사변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1958년 복원과 동시에 김동준(金東準)과 정숙주(鄭叔周)를 추가 배향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 4칸의 산앙재(山仰齋), 고사(雇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몽주·송시열·김수항·김동준·정숙주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산앙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夾室)로 되어 있는데, 서원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주 근교는 대부분 완주군이 둘러싸고 있어 경관이 멋진 곳이 너무 많다. 조선시대 완산 8경 중 한 곳이었던 비비정(飛飛亭)은 근처의 괜찮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어 가볍게 오고 갈 수 있는 장소이다.
개인적으로도 자주 찾는 곳으로 최애포인트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동쪽으로 신 만경강철교가 생겨 그 경관이 퇴색된 것이 너무 아쉽지만, 여전히 비비정(飛飛亭)은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본문에 충분히 아름다운 낙조(落照)를 담을 수 있지만, 사진으로 말할 수 없는 이곳의 바람과 감정을 직접 보고 느끼길 바란다!~
지금까지 비비낙안(飛飛落雁)이 아름다운 비비정(飛飛亭)에서... '전주 럭셔리크로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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