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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주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부채문화관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3.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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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2월 05일에 다녀온 전주 한옥마을 부채문화관 이야기 시작합니다. 본문의 글은 전주부채문화관의 사진속에 나오는 글입니다.

전주 럭셔리크로우 사진
전주 한옥마을

 

전주부채문화관 앞
전주부채문화관

 

전주부채문화관 설명
全州扇子文化館

 

전주부채문화관

Jeonju Fan cultural museum  / 全州扇子文化馆 / 全州扇子文化館

전주부채의 역사적 가치를 밝히고 부채 장인들의 예술혼을 재조명한 문화시설로 부채를 테마로 한 기획·상설 전시, 부채만들기 체험, 선면화 그리기 체험, 전통놀이 등을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As a facility that sheds light on fans of Jeonju and shed new light on spirits of art of master fan makers, many activities are performed on this facility such as a special permanent exhibition themed by fans, fan making experience, fan painting experience, traditional game experience, etc.

최명희 문학관 우측
전주부채문화관은 최명희 문학관 옆에 있다.

 

큰 부채 조형물
부채문화관 답게 큰 부채 조형물이 있다.

 

전주부채문화관 마스코트
바람이 시작하는 곳

 

•바람이 시작하는 곳

紙與竹而相婚 生其子日清風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것이 맑은 바람이어라. -전주부채문화관-

전주부채문화관 앞 조형물
부채 조형물 옆에 있는 사람 조형물

 

전주부채문화관 정면
전주부채문화관 정면

 

전주부채문화관 현판
전주부채문화관 현판

 

2023년 계묘년
2023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주부채문화관 실내
전주부채문화관 내부1

 

전주부채문화관 실내1
전주부채문화관 내부2

 

전주부채문화관 실내2
전주부채문화관 내부3

 

입구에 들어서면 다양한 부채가 눈앞에 보입니다. 가격표가 붙은 다양한 부채 상품을 먼저 보겠습니다. 참고로...전주부채문화관의 조명과 유리 전시 진열대에 빛 반사가 심해 내부의 사진 찍기가 정말 힘들었던 곳입니다.

우측: 최수봉 쌍죽선 11,000원(전통 한지부채)
우측: 최수봉 쌍죽선 11,000원(전통 한지부채)

 

부채 스티커 1,000원, 자석 3,000원
부채 스티커 1,000원, 자석 3,000원

 

나린선 그림선 13,000원 / 나린선 단선
나린선 그림선 13,000원 / 나린선 단선

 

방화선 단선 그림선 25,000원 / 나린선 태극선 18,000원
방화선 단선 그림선 25,000원 / 나린선 태극선 18,000원

 

방화선 백단선(옻칠) 50,000원 / 방화선 듸림선 15,000원
방화선 백단선(옻칠) 50,000원 / 방화선 듸림선 15,000원

 

박상기 참죽나무 청매화 143,000원 / 한경치 사군자 120,000원
박상기 참죽나무 청매화 143,000원 / 한경치 사군자 120,000원

 

김동식 고급 그림선 430,000원 / 김동식 30㎝대사십 380,000원
김동식 고급 그림선 430,000원 / 김동식 30㎝대사십 380,000원

 

김동식 우족 백선 660,000원 / 김동식 물소뿔 백선 600,000원
김동식 우족 백선 660,000원 / 김동식 물소뿔 백선 600,000원

 

박계호 백선2 130,000원 / 이신입 백선 13절 110,000원
박계호 백선2 130,000원 / 이신입 백선 13절 110,000원

 

박개호 옻칠채화어피선 1,000,000원 / 박개호 채화어피선 550,000원
박개호 옻칠채화어피선 1,000,000원 / 박개호 채화어피선 550,000원

 

박계호 옻칠채화어피선 100만원
박계호 채화어피선 55만원

 

전주부채문화관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것이 맑은 바람이어라.

紙與竹而相婚 生其子日清風

대나무와 종이가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것이 맑은 바람이어라.
紙與竹而相婚 生其子日清風

 

 

전주는 예로부터 바람의 땅이었다

후백제 견훤이 도읍을 정하고 왕업의 바람을 일으켰던 곳이 전주이며,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가 원대한 꿈을 품고 대풍가를 불렀던 곳도 전주다. 이러한 역사를 관통하는 바람의 기세를 전주는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을 한 가닥씩 가려 뽑아 살을 만들고, 그 살에 전주 사람들의 염원을 견고하게 심어 놓은 것이 전주 부채다.

원대하게 품고 있던 꿈을 활짝 펼쳐내는 접선(接扇) 합죽선과 단단 하고 넓은 가슴으로 넉넉하게 품어주는 단선(團扇) 태극선은 전주가 각양각색의 바람을 다스리는 이치였다. 때로는 거침없고 때로는 느긋한 바람이 전주 장인들의 손끝에서 태어나 전주의 하늘을 울리고 천하를 요동쳤으니, 전주부채는 전주 사람의 혼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람을 다스리는 전주부채 그 청신(淸晨)한 바람

전주에서 부채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곧고 단단한 대나무가 많았고, 질 좋은 한지가 전주에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주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장인 정신이 결합됐으니 전주 사람들의 마음에서 발원 하여 대나무 살과 전주 한지의 날개를 타고 뻗어나가는 바람의 기세가 남달랐다. 이러한 바람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전주에 설치했던 전라감영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부채를 제작하게 했고, 임금에게 진상될 만큼 그 빼어남을 인정받았다.

전주부채의 혼 선자장
전주부채의 혼 선자장

 

 

전주부채의 혼 선자장(왼쪽부터)

이기동 선자장(1930~2009) 1993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합죽선)

방춘근 선자장(1927~1998) 1993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태극선)

엄주원 선자장(1938~2004) 199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합죽선)

옛 자료 속 부채
옛 자료 속 부채

 

책가도
책가도

 

 

책가도 / 冊架圖 / Picture of bookshelf

그림의 소재로 자주 쓰였던 감상(책상). 서책과 과일 필묵과 다양한 사물 가운데 부채가 보인다. -1800년대

합죽선(설경) / 故 라태용 作
합죽선(설경) / 故 라태용 作

 

무속도
무속도

 

무속도 / 巫俗圖 / Picture of shamanism

무당이 부채를 들고 굿을 하는 그림으로 당시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무당에게만 접선사용이 가능했다. -일제강점기

나들이 벗, 합죽선 / 접선(摺扇)
나들이 벗, 합죽선 / 접선(摺扇)

 

 

나들이 벗, 합죽선 접선(摺扇)

부챗살에 종이 또는 깁(비단)을 붙여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를 접선(摺扇) 혹은 접부채라고 하며, 옛 선비들이 외출 시 의관을 갖추고 손에 합죽선을 쥐어야 비로소 외출을 했을 정도로 계절에 상관없이 손에 들고 다녔기 때문에 ‘쥘부채’ 라고도 부른다.

 

접선은 펼쳐서 바람의 숨결을 일으키고, 접어서 바람의 숨결을 잠재우는데 그 모양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고요하면서도 힘차다. 그래서 접선에서 나온 바람은 중심에 곧은 심지를 세운 것처럼 단단하다. 180도로 활짝 펼쳐지는 접선은 우리나라 부채만의 특징인데, 살이 50개면 100번을 접어야 하므로 ‘100접선’ 이라고도 하였다.

 

대나무를 두 겹으로 붙여서 살을 만들고 한지를 접어 만든 합죽선은 인기가 가장 많았으며, 전주의 합죽선은 임금님에 진상될 정도로 으뜸으로 쳤다. 합죽선은 견고하고 모양에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며, 손에 꼭 맞아야 한다. 모양새는 한복을 여미어 입은 단아한 여성의 모습을 띠고, 옆모습을 봤을 때 머리 모양은 크고 둥그스름해야 손에 걸림새가 없다. 또한 목 부분에서 가늘어져서 손에 쏙 들어와야 하며, 목살 부분에서 다시 커지는 형태가 손에 가장 잘 맞는 형태이다.

 

합죽선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00번이 넘는 손길을 거쳐야 하며 육방(초조방, 정련방, 낙죽방, 광방, 도배방, 사북방)으로 분업화된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지와 부챗살 속에 바람을 머금게 된다. 이러한 합죽선은 펼치면 반원형의 조형공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선조들은 그 공간에 시와 그림으로 안부를 전하거나 자기의 마음을 담아내기도 했다. 아울러 산수화를 통해 천지만물을 접선 안에 품기도 하고, 접어서 자신의 마음을 감추기도 했다. 이것이 접선이 가진 펼침과 접힘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다양한 접선
세계의 다양한 접선

 

스페인부채
스페인부채

 

 

스페인부채 / Spanish fan / 현대 / 선면에 투우사의 모습들이 인쇄된 부채

일본부채
일본부채

 

 

일본부채 / Japanese fan / 현대 / 부채살이 적고 천을 이용해 만든 부채

중국부채
중국부채

 

 

중국부채 / Chinese fan of recent era / 근대 / 부채 살 수가 적고 종이를 양면에 붙여 만들었으며 대살은 속살 부분을 이용하여 만든 부채

중국부채
중국부채

 

중국 부채 1980년대 / 기증자 박원조
중국 부채 1980년대 / 기증자 박원조

 

 

故 이기동 선자장
故 이기동 선자장

 

 

1억원을 줘도 안팔제. 팔려고 만든 부채가 아니여. 내 품을 떠나면 그대로 사라지게 되는겨.

전남 장성이 고향인 선자장 이기동(1930~2009) 명인은 열여덟 나이인 1948년에 전주로 옮겨와 당시 솜씨가 좋았다는 배귀남 장인을 사사했다. “기술 배우는 동안 다섯 번을 뛰쳐나갔어. 대나무 밭 댕기기도 힘들고 하루 종일 앉아 있자니 무릎도 에리고. 근디 여섯 번째 들어앉으니 ‘이게 내 일인가’ 싶더라고.” 약관의 나이부터 평생을 부채만 잡아온 손가락 마디마디는 곰 발바닥 같은 공이가 붙어 있다. 엄지 손가락은 뱀의 머리 모양으로 변했으며, 지문이 없다.

 

1991년 명장(名匠)의 칭호를 받음으로써 장인의 자격을 인정받았으며, 1993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이 되었다. 이기동 명장은 공예품이었던 합죽선에 예술적 가치를 불어넣은 첫 번째 선자장이다. 합죽 낙죽선, 합죽 낙죽 황칠선, 합죽 황칠선, 합죽 조각선을 비롯해 합죽 옥 조각 황칠선, 합죽 육등 용 조각선은 공예 기술 가운데 가장 공이 많이 들 어간 작품으로, 변대 변죽(갓대)에 최고급 소재를 사용해 무늬를 입체적으로 조각한 아름다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기동 명인은 1996년 자신의 대표작 47점을 전주시에 기증했으며, 2009년 전주부채문화관 개관을 위해 2점을 추가로 기증했다. ‘죽기 전에 부채 두고 갈 전시관이나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 던 이기동 명인의 소원은 2009년 별세하기 전까지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부채의 고장 전주에 이기동 명인과 무형문화재 선자장들의 숨결을 간직할 수 있는 전주부채 문화관 개관에 큰 힘이 됐다. 현재 장남 이신입(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51호 낙죽장)과 사위 한경치(합죽선 장인)가 대를 물려받아 독립함으로써 집안 모두 합죽선 전승의 길을 걷고 있다.

전주부채문화관 내부4
전주부채문화관 내부4

 

 

故 이기동 선자장 약력

1972년 제 2회 전국관광민예품 경진대회 본선 특선

1979년 제 4회 인간문화재 공예작품전 입선

1980년 제 4회 전북산업디자인전 입선

1983년 제 6회 전북산업디자인전 우수상

1987년 제 10회 전북공예품경진대회 대상

1987년 제 17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 장려상

1990년 제 14회 전북공예품경진대회 금상

1991년 10월 22일 제 91-2호 명장

1991년 전라북도 애향도민의 장 산업장

1991년 대통령 표창

1993년 6월 10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10호 선자장

2007년 진주시 애향예술시민의 장 수상

한지 문양 조각선 / 이기동(1930~2009)선자장
한지 문양 조각선 / 이기동(1930~2009)선자장

 

낙죽 합죽선 / 이기동(1930~2009)선자장
낙죽 합죽선 / 이기동(1930~2009)선자장

 

부채제작도구
부채제작도구

 

 

부채제작도구 / Manufacturing Equipments

(위 사진 왼쪽 부터 시계방향) 살 쪼개는 도구/ 작두 / 쪽 내는 도구 /  살 펴는 도구 / 도련용 가위

조충익(1948~2019)선자장 / 연엽선
조충익(1948~2019)선자장 / 연엽선

 

부채란 무엇인가?
부채란 무엇인가?

 

 

‘부채’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부치다’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를 가리키는 ‘채’가 합해진 글자다.

잠자리 날개 같은 한산세저(韓山細苧)로 조촐히 차린 여인이 옥같이 희고 고른 치열을 태극선으로 살짝 가리고 이야길 주고받는 모습도 우아하려니와, 구절오십시(九節五十矢)의 합죽선을 가끔 폈다 접는 선비의 풍채도 또한 이에 못지않은 풍정이리라. 그 태극선이나 합죽선이 전주산이고 보면 더 이를 데 없으려니와, 선추에는 비취와 호박을 물리면 더 좋을 것이요, 옥각에 십장생을 조각했다면 더할 나위없는 운치가 아니겠는가. -신석정의 산문 「멋」 중에서

 

부채의 한자어인 ‘선(扇)’은 집이나 문을 뜻하는 호(戸) 자에 날개를 뜻하는 우(羽) 자가 결합된 말로 ‘집 안에 있는 날개’를 의미한다.

전주부채의 멋과 여유
전주부채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멋과 여유

전주부채 최초의 기록

전주부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견훤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태조 왕건이 즉위하자, 견훤이 사신을 파견하여 이를 하례하고 공작선(孔雀扇)과 지리산 대화살(竹箭)을 보냈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미 이 무렵 전주에서 부채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에게 진상된 전수부채

조선시대에 이르면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장하던 전라감영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임금에게 진상할 부채를 제작하였다. <정조 17년 8월 기축조>에 “매년 단오날에는 관원들에게 부채를 선물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임금이 전주부채를 신하들에게 하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선자청에서 부채를 만들던 ‘경공장’ 과 납품을 하던 ‘외공장’의 장인들은 선자청을 벗어나 지금의 중앙동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에 부채를 공급하는 송지방(지금의 남문 근처)을 비롯하여 삼화상회, 무궁화공예사 등이 중앙동에 밀집하게 된다.

 

전주부채의 맥

한경필(단선), 방춘근(단선), 문준하(합죽선) 선자장이 명맥을 이어온 전주부채는 광복이 되면서 일본인 자본이 사라지고 중앙동이 발전하게 되자 전주 외곽 지역인 인후동의 가재미와 안골, 아중리의 석수리로 터를 옮겨 공방촌이 형성됐다. 이 후 이기동 선자장, 엄주원 선자장이 터를 잡으면서 부채골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현재 조충익(태극선), 김동식(합죽선), 방화선(단선) 선자장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주부채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주부채 제작 과정 / 1930년경

1930년에 간행된 「일본지리대계-조선편」에 실려있는 사진으로 옆에는 ‘전주단선 제조 상황’ 이라고 주기되어 있다.

전주한지 뜨기/ 1930년경

지금까지 나온 사진중에서는 전주한지를 뜨는 과정이 분명한 유일한 사진으로 장소는 주변 형세로 보아 승암산 자락으로 추정된다.

단오부채
단오부채

 

 

하선동력(夏扇冬曆)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달력)이라

 

어질고 어진 바람을 일깨운 단오부채

우리의 전통풍속(傳統風俗)중 단오절(端午節)과 부채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조선왕조실록」 태종 15년 5월조와 세종 8년 5월조, 「경도 잡지」, 「동국세시기」 등의 문헌을 보면 단오진선, 단오사선 등 단오와 부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단오선물은 부채요. 동지선물은 책력이라”하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단오가 가까워오면, 곧 여름철이 되므로 친지와 웃어른께 부채를 선물로 선사하고, 동지가 가까워 오면 새해책력(달력)으로써 선물하는 풍속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풍속은 조선말기 까지 이어졌는데 해마다 공조(工曹)에서 단오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면 임금은 그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며, 이 부채 중에서도 전주 에서 만든 것을 으뜸으로 쳐주었다.

 

씨름은 주로 단오절에 행하던 남자들의 운동이다. 구경을 하는 선비들의 손에는 대부분 부채가 들려있는 걸 볼 수 있다. 기산(箕山) 김준근 _ 씨름 19c후반

금년에 또 단오절을 만났어라 이날이 바로 좋은 때이라서 하사받은 합죽선은 새롭구나 성상께 강심경을 올리고 싶어라 사가집(四佳集) 제5권 서거정(徐居正)

인류의 부채
인류의 부채

 

인류와 함께

나뭇잎, 깃털부채

자연 바람을 통해 더위를 식혔던 인류는 인위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를 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나뭇잎 또는 새의 깃털처럼 자연적이고 손쉬운 재료를 활용하였다. 이후 직조기술이 발달하고 종이를 활용하게 되면서 섬유와 종이를 발라 만든 부채가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과정은 동서를 막론하고 문명의 전개과정과 함께 했다.

 

투탕카멘 황금 깃털부채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투탕카멘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황금 깃털부채 자루이며,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동양에서의 기원은 중국 요순(堯舜)시대로 거슬러 간다. 진(晉)나라의 학자 최표(崔豹)가 남긴 고금주(古今注)에 의하면 순(舜)임금이 즉위한 뒤 널리 현인을 구하여 문견을 넓히고자 오명선(五明扇)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공작선 선물부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부채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공작(孔雀扇)이다. 유물로는 경남 의창군(현 창원시) 다호리의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기원전 3,4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부채 손잡이가 있으며, 357년에 조성된 황해도 안악군 유설리의 안악3호분 고분벽화에도 깃털부채가 그려져 있어 그 당시에 이미 부채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 견훤조* / 안악3호분 고분벽화

*『삼국사기』 견훤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부채 관련 문헌은 『삼국사기』에서 후백제 견훤이 고려의 왕건에게 공작선을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팔덕선(八徳扇)
팔덕선(八徳扇)

 

부채 한 자루가 지닌 여덟 가지 덕(德)

팔덕선(八徳扇)

하나. 비를 가려 젖지 않게 해주는 덕

둘. 파리나 모기를 쫓아주는 덕

셋. 땅바닥에 앉을 때 깔개가 되어주는 덕

넷. 여름날 땡볕을 가려주는 덕

다섯. 방향을 가리킬 때 지시봉의 구실을 하는 덕

여섯. 사람을 오라고 시킬 때 손짓을 대신하는 덕

일곱. 빚쟁이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얼굴을 가려주는 덕

여덟. 남녀가 내외할 때 서로 얼굴을 가려주는 덕

 

길을 가다 한 가족을 만난 선비가 예의를 지키기 위해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가족의 모습에 웃음을 짓는 작품이다. 단원 김홍도(金弘道)_노상파안(路上破顔) 18c후반

 

왕골이나 갯버들 또는 죽순껍질로 넉넉하게 써서 만든 부채의 다양한 쓰임새를 팔덕선(八徳扇)의 이야기로 풀어놓았다.조선 말 이유원의 임하필기中

방구부채 단선(團扇)
방구부채 단선(團扇)

 

 

방구부채 단선(團扇) :  태극선 / 오엽선 / 발파초선 / 공작선

부채의 종류는 참으로 많고 많지만, 크게 자루가 달린 부채인 단선(團扇),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접선(摺扇), 즉 방구부채접부채 두 종류로 갈린다. 그 가운데에는 새의 깃털로 만든 우선(羽扇), 모양이나 용도가 다른 별선(別扇)도 있다. 단선은 원선(圓扇), 둥근부채, 방구부채라고도 하는데, 그 종류에는 주로 면의 모양이나 용도에 따라 태극선(太極扇), 오엽선(梧葉扇), 연화선(蓮花扇), 연엽선(蓮葉扇), 파초선(芭蕉扇), 선녀선(仙女扇), 듸림선 등이 있다.

단선은 부챗살이 손잡이 중심에서부터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그 모습이 이른 아침 햇살이 천지의 만물을 일깨우는 형상을 지녔다. 단선의 부챗살은 자루 부분에서 모아지는데, 윗부분은 얇고 자루박는 부분은 튼튼해야 바람이 잘 난다. 공기의 저항을 이겨내고 바람을 일으키는 단선의 특성상 손잡이 부분이 튼튼해야 한다.

문양을 그리는 방식은 음양의 기법을 사용해 바람 하나를 일으키는 데에도 조화로움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미의식이 반영되었다. 부채의 멋은 문양뿐만 아니라 형태를 통해서도 실현되는데 주로 부챗살을 구부려 단선의 단조로움을 극복하였는데, 선면 속에 감춰지는 부챗살로도 소소한 멋을 낼 줄 아는 선조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단선(團扇) 부채
단선(團扇) 부채

 

유지소원선
유지소원선

 

 

유지소원선 油紙小圓扇 / 조선시대말기 : 선면에 기름칠을 한 크기가 작은 원형 부채

유지소원선
유지소원선

 

 

유지소원선 油紙小圓扇 / 1832년 : 선면에 기름칠을 한 크기가 작은 원형 부채

모란자수혼선
모란자수혼선

 

 

모란자수혼선 / 조선시대말기 : 모란자수를 놓아 만들었으며 혼례를 올릴 때 신부가 사용한 부채

골제부채자루 / 유지쌍죽선
골제부채자루 / 유지쌍죽선

 

골제부채자루 / 조선시대

유지쌍죽선 / 조선시대말기

나주세미선
나주세미선

 

 

나주세미선 / 1800년대, 조선시대말기

깃털부채
깃털부채

 

 

깃털부채 / 1900년대 :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된 깃털로 만든 부채

유지대원선
유지대원선

 

유지대원선 / 조선시대말기

피나무 부채자루 / 조선시대

유지칠선
유지칠선

 

 

유지칠선 油紙漆扇 / 조선시대말기 : 선면에 옻칠을 한 부채

한지선 광고부채 / 단선 / 외자루선
한지선 광고부채 / 단선 / 외자루선

 

 

한지선 광고부채 / 조선시대말기

단선 / 1960년대

외자루선 / 1960년대

쌍죽선
쌍죽선

 

 

쌍죽선 / 1950년대 : 통대 두쪽을 붙여서 만든 부채

태극소원선
태극소원선

 

 

태극소원선 太極小圓扇 / 1970년대 : 선면에 태극모양을 넣어 만든 중간 크기의 단선

유지쌍죽선
유지쌍죽선

 

 

유지쌍죽선 油紙雙竹扇 / 1981년 : 선면에 기름칠을 한 통대 두쪽을 붙여서 만든 부채

선자청이 있던 전라감영
선자청이 있던 전라감영

 

전주 전라감영에는 선자청이 있었다.
전주 전라감영에는 선자청이 있었다.

 

 

선자청이 있던 전라감영

조선시대 전라도는 현재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를 포함한 지역이다. 전주는 조선시대 호남제일성으로, 전라도를 통괄하는 전라감영이 위치했던 곳이다. 이러한 전라감영에 부채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선자청(扇子廳)이 있었다. 전주 옛지도를 보면 선자청은 4채의 건물로 구성되었으며 매우 큰 규모였다.

 

가운데 선화당의 왼쪽 상단부터 약재를 다루는 심약당(審藥堂)과 법률을 다루는 검율당(檢律堂), 그리고 그 밑으로 진상청(進上廳)이 있다. 이를 둘러싸고 한지(韓紙)를 만들던 지소(紙所)와 한지를 인출하는 인출방(印出房)이 배치되었으며, 그 남쪽방향으로 임금에게 진상할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扇子廳) 4채가 매우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전주부채문화관의 천장
전주부채문화관의 천장

 

 

전라감영에 선자청을 두었던 것은 부채가 전주의 특산물로 단오날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전주는 조선시대 가장 질 좋은 부채를 생산하였던 부채의 고장이었다. 전주 에서 최고의 부채가 생산되었던 것은 질 좋은 한지가 이곳에서 생산된 데에 요인이 있다. 반석리(현 서학동)와 가재미골(현 인후동)은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전주부채의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작고하신 무형 문화재 이기동·방춘근·엄주원 선자장이 그 명맥을 이었으며, 현재는 조충익·김동식·방화선 장인이 무형문화재 선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채 제작 과정
부채 제작 과정

 

듸림선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듸림선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부록_전주부채문화관 카달로그]

[부록_전주부채문화관 카달로그]
전주부채문화관 카달로그1

 

부채는 여러 가지 모양이 있어요. 크게 접선과 단선이 있는데, 접선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부채를 말하고, 단선은 손잡이가 달린 부채를 말해요.

 

접선에는 대나무 살 두 개를 붙여서 만든 합죽선

둥근 모양의 접어지는 윤선

약을 달일 때 사용했던 듸림선

태극 모양을 그린 둥근 태극선 등이 있어요.

 

전주부채가 유명한 이유가 뭘까요?

전주에는 곧고 단단한 대나무가 많았대요. 그리고 질 좋은 전주한지가 있었고요.

거기에 전주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과 장인 정신이 결합되어 빼어난 전주부채가 만들어진 거죠.

 

'선자장'은 무슨 뜻이에요?

부채는 한자로 '선자(扇子)'라고 해요.

이 부채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장인을 '선자장(匠)'이라고 해요. 전주에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선자장(扇子匠)이 가장 많이 계신답니다.

 

'선자청'이 뭐예요?

※전라감영: 조선시대에 전라도(전라북도·전라남도·제주도)를 통괄했던 관아

전주부채는 임금님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어요. 그래서 전라감영 안에 부채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기관을 두었는데 그 기관이 바로 '선자청'이에요.

[부록_전주부채문화관 카달로그]2
전주부채문화관 카달로그2

 

전주의 부채역사에 전라감영의 선자청(扇子廳)이 있었고, 질 좋은 대나무와 최고의 한지(韓紙)가 생산되어 임금에게 진상하는 최고의 부채를 만들었다. 간단해 보이는 부채지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부채의 팔덕선(八徳扇)과 나들이 벗으로 계절에 상관없이 손에 들고 다녔기에 '쥘부채'라는 별칭이 붙었고 우리나라 부채만의 특징인 180도로 활짝 펼쳐지는 접선 등 다양한 이야기 속에 전주부채문화관은 전주 한옥마을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전주부채문화관 / jeonjufan.kr 매주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93(풍남동3가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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