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주 럭셔리크로우입니다. 오늘 저와 함께 떠날 곳은 전북 완주군에 있는 구억리산성(九德里山城)입니다.
구억리산성(九億里山城)
구억리산성은 현재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829-2 일원에 위치한 백제시대 토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완주군 용진읍 원구억마을 북쪽의 해발 60m의 구릉입니다. 『조선보물고적자료』*에 의하면 ‘龍進面一里, 土城址 周圍 約 五百間, 高六尺 乃至 十尺 거의 完全함’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포곡식 산성**으로 둘레는 약 980m 토성입니다. 전체적으로 북쪽이 열려 있는 ‘U’자형이며, 인접하게는 소양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산성 일대에는 삼국 시대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을 지표면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현재 북서방향 구릉에는 조선 8명창 중 한 분이신 권삼득(權三得-1771-1841) 선생***의 묘와 소리의 명당이라 불리우는 소리굴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도 확인 가능한 산성 내 남쪽에 작양사(태고종)가 있습니다. [전주 럭셔리크로우]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고적‧유물 목록]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고적과 유물을 조사하여 등록한 「고적 및 유물 대장」과 「고적대장」 등 고적과 유물에 대한 각종 목록을 묶은 문서철이다.
「고적 및 유물 대장」은 1916년부터 1933년 보존령 시행 전까지 보존 가치가 있는 조선의 고적과 유물을 조사하여 등록한 대장이다. 여기에는 대장에 등록하기 위한 원고 및 교정본으로 추정되는 ‘고적 및 유물 등록대장’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문서철은 조선총독부박물관 양식과 항목의 순서만 다르게 작성되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는 고적조사위원회의 결의로 등록‧수정된 원고를 「고적 및 유물 대장」에 기입한 뒤 그 등본謄本을 해당지역 경찰서장에게 송부하였고, 지속적으로 등록물건의 추가와 정정이 이루어졌다. 지역별로 193건이 정리된 「고적 및 유물 대장」은 『고적급유물등록대장초록古蹟及遺物登錄臺帳抄錄』으로 1924년에 출간되었다. ‘고적 및 유물 등록대장’ 문서철에는 1929년 4월에 등록된 198호 공주읍내 당간지주幢竿支柱가 기재되어 있고, 안양사지安養寺址 오층석탑이 186호로 등록되었다가 취소되었음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들이 담겨 있다.
「고적대장」은 1916~1917년경 식산국 산림과에서 제작한 ‘고적대장’의 사본이다.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임야에 있는 고적 관련 내용을 참고하기 위해 보관했던 문서철로 보인다. 잘 알려진 고적이나 읍성은 많이 생략되어 있으며, 13도의 자료가 모두 수록되어 1942년에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로 출간되었다. [글출처: 국립중앙박물관_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포곡식 산성: 성곽 안에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것으로 규모가 크다.
성내에 계곡을 포함하는 형식으로 계곡과 주변의 산세 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둘렀기 때문에 성내에 수원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으며 외부 노출을 방지해 주며, 성곽의 대부분은 산성으로 이뤄어져 있다. 대표적으로 행주산성(행주산성은 해발 124.9m의 덕양산 정상을 동쪽 끝으로 하여 해발 70~100m에 걸치는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테뫼식(山頂式)산성, 남한산성 등 이 있고, 완주군에 있는 위봉산성도 포곡식 산성이다.
***권삼득(權三得-1771-1841): 1771(영조 47)∼1841(헌종 7). 본명 사인(士仁). 본관은 안동(安東). 조선 정조·순조 때 활약한 판소리 8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에서 내언(來彦)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후기 「판소리 설렁제」라는 소리제를 낸 것으로 유명한 판소리의 명창. 권삼득 생가, 묘, 소리굴 등은 다음 포스팅에 따로 하겠습니다.
위 지도를 보면서 구억리산성(九億里山城)의 주변 환경에 대해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살펴 보겠습니다.
잠시 구억리산성(九億里山城)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작양사(태고종)도 사진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완주 태고종 작양사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 위치한 구억리산성 내에 있는 태고종 소속의 사찰입니다.
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어, 백제시대 이전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하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작양사도 봤으니 실제 구억리산성의 모습도 살펴보겠습니다.
구억리산성(九億里山城)의 주변 환경을 둘러보며, 작양사 및 밭으로 만든 토성 안에서부터 주변을 돌며 수기의 토기류 또는 기와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아래는 직접 봤던 조각들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완주 구억리산성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자 문화재청에서 발굴조사 보고서를 찾아 보았다. 아래 내용은 "전북 동부지역 삼국시대 관방유적 분포현황조사 보고서"의 내용이다.
완주 구억리산성
원구억마을 북쪽 해발 60m 내외의 야트막한 구릉에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산 성의 한가운데는 움푹 들어간 형태로 현재는 작양사가 자리하고 있다. 구억리산성이 위치한 완주군 용진읍의 서쪽과 북쪽은 만경강 본류와 그 지류인 고산천, 소양천 등이 합류하는 곳으로 과거 수로를 통한 문물교류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추정된 다. 또한 인근에 수계리유적, 상운리유적, 배매산성 등 유적이 밀집해 있는데, 이를 고려할 때 이 지역은 5세기 후반 백제 중앙세력이 전북지역을 통할하던 방어시설 및 거점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억리산성은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조선보물고적자료』에서 처음으로 보고된 이후 전영래가 『전북 고대산성조사보고서』를 통해 현황을 보고하였다. 그 후로는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2016년 군산대학교 박물관에서 구억리산성 내 동쪽 대지와 성벽에 대한 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성곽은 인위적으로 흙을 다져 축조 한 토성으로 확인되었고, 토기류는 개배, 고배, 삼족토기, 기대, 장란형토기, 심발형 토기 등 백제계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2018년에는 조선문화유산연구원에서 산성의 잔존상태와 형태 및 구조 등을 파 악함과 동시에 그 축조 시기 등의 성격을 규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구억리산성의 서편 정상부와 사면부 일부지점의 시·발굴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결과, 체성부를 비롯해 집수시설 1기, 지상건물지 2기, 주거지 1기, 수혈, 구상유구, 주공군 등이 확인되었다.
성의 평면형태는 북쪽으로 트여있는 ‘U’자형이다. 현재 육안상 성벽의 흔적이 야트막하게 확인된다. 추정 성벽 상면에 할석(깬돌)이 산재하는 구간도 있다. 현재 남측 구릉사면과 상면은 민묘와 경작지가 조성되면서 훼손된 것으로 판단된다. 성벽의 안쪽 대지 역시 개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동벽 안쪽은 이미 경작지로 사용되면서 심하게 삭평된 것으로 보인다. [글 출처: 전북 동부지역 삼국시대 관방유적 분포현황조사 보고서]
위 내용을 알고 2016년, 2018년 조사에 나온 유물을 확인해 봤지만, 몇몇 기사에 사진 두어 장이 전부였다. 아래는 유적지에 관심이 많은 전주 럭셔리크로우가 나중에 완주군청 담당자에게 문의를 한 내용이다.
문) 완주 구억리산성의 조사는 최근 2016, 2018년에 두 번 진행이 된 거로 보인다. 내가 직접 돌아 보니 표층에서도 많은 토기류 및 기와 들이 보이는데, 기사에 나온 유물 사진을 보면 몇 점 보이지 않는다.
답) 실제 중요 유물들 중 일부만 사진으로 나온 것이며, 박물관 등에서 모두 보관하고 있다.
문) 완주 구억리산성의 정밀 발굴에 대한 계획이 있나? 주변의 문화재(원구억마을의 권삼득 생가, 용진서원, 권삼득 묘, 소리굴, 상운리 유적 등)와 연계하여 역사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보인다.
답) 우리 고장에 역사 문화재 등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업비는 한정되어 있으며, 완주군의 유수한 많은 문화재 등에도 예산을 분배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여러 가지 통화 내용에서 담당자의 전문성과 진정성이 느껴지는 통화였습니다. 위 내용은 요점만 간략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상담해 주신 완주군 담당자님께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 사진은 2023년 3월 19일 국립익산박물관_전북의 고대성곽 특별전을 갔다와서 구억리산성 부분을 찍은 사진입니다.
완주 구억리산성은 소양천의 동쪽 해발 60m의 나지막한 구릉의 능선과 북쪽의 평지를 아우르는 둘레 980m의 포곡식산성이다. 구억리산성에 대한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 서성벽과 동성벽에 대하여 이루어졌다. 성벽은 흙으로 벽을 쌓은 토성으로 정연한 판축기법은 확인되지 않지만, 흙을 20cm 단위로 교대로 다지면서 쌓아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전북지역 최대의 분구묘 유적으로 알려진 완주 상운리 유적과 인접해 있으며, 백제 중앙의 이 지역 거점시설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 군산대학교가야문화연구소1,2 / 백제 | 국립전주박물관3
오늘 답사를 통해 산성에 대한 이해도가 좀 더 올라갔고, 관심도 또한 많아졌다. 앞으로 가까운 지역의 산성 포스팅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오늘 전주 럭셔리크로우는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산도 알고보니 산성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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