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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익산 왕궁리 5층석탑(益山 王宮里 五層石塔) 국보 제289호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3.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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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럭셔리크로우가 자주 방문하는 장소 중 한 곳은 바로 익산 왕궁리 유적지입니다. 사계절 방문에 늘 다른 느낌이 있고, 또 자주 찾는 비비정(飛飛亭)과의 거리도 가까운 편입니다. 2022년에 찍은 사진과 2023.09.03.에 사진기에 담아놓은 사진으로 포스팅해봅니다. 또한 익산 왕궁리 유적지의 주요 내용도 살펴 보겠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왕궁리 5층석탑을 보다_2023.09.03.
가을의 문턱에서 왕궁리 5층석탑을 보다_2023.09.03.

 

왕궁리 5층석탑과 배롱나무 꽃_2023.09.03.
왕궁리 5층석탑과 배롱나무 꽃_2023.09.03.

 
왕궁리유적 Wanggung-ri relics / 사적 제408호
왕궁리유적은 1989년부터 현재까지 22년 동안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대에 왕궁으로 건립되어 경영되다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사찰이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왕궁리유적 동쪽 성벽
왕궁리유적 동쪽 성벽

 

왕궁리유적 서쪽 방향에서_2023.09.03.
왕궁리유적 서쪽 방향에서_2023.09.03.

 
백제 왕궁터는 우리나라 고대 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건물지를 비롯한 14개의 백제 건물지와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 금, 유리, 동 등을 생산하던 공방지,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조사되어 왕궁의 축조 과정과 왕궁에서의 생활 내용이 조사되었다. 왕궁의 축조 과정에는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과 체계적으로 건립된 사실이 확인되어 백제 왕궁의 궁실제도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왕궁리유적 출토 기와
왕궁리유적 출토 기와
왕궁리유적_대형 화장실 유적
왕궁리유적_대형 화장실 유적
건물지와 화장실 유적 너머 푸른 하늘과 구름이 조화를 이룬다.
건물지와 화장실 유적 너머 푸른 하늘과 구름이 조화를 이룬다.

 
사찰 유적은 왕궁의 정전 건물지 등 중요 건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탑, 금당, 강당 등을 건립하였는데, 사찰유적의 중심선이 왕궁의 남측 담장과 연결되는 중문의 중심선과 일치하고 있다.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되는 정확한 계기는 알 수는 없지만 익산쌍릉이 백제왕궁의 서측에 조성됨에 따라 의자왕이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왕궁리 유적지 광장_동쪽방향 / 2022.06.13.
왕궁리 유적지 광장_동쪽방향 / 2022.06.13.
왕궁리유적전시관_왕궁리오층석탑의 모형이 있습니다.
왕궁리유적전시관_왕궁리오층석탑의 모형이 있습니다.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_왕궁리유적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_왕궁리유적
백제왕궁박물관과 광장
백제왕궁박물관과 광장_2023.09.03.

 
왕궁리유적전시관(백제왕궁박물관)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왕궁리5층석탑이 위치한 왕궁리유적 남측에 건립되어 2008년 개관한 전시관으로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출토유물을 전시하여 문화교육장으로 활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전시관 구성은 왕궁리유적의 발굴조사 내용을 영상과 축소 모형으로 제작하고 중요 출토유물을 전시하여 왕궁리유적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백제왕궁박물관
백제왕궁박물관

 
전시관 체험은 관람객이 직접 백제기와를 만져보면서 기와 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중요 출토유물의 이미지를 도장으로 만들어 도장 찍기 체험을 할 수 있고, 백제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했다는 유일한 기록인 「관세음응험기」*를 목판으로 만들어 목판 찍기 체험도 준비되어 있다.
전시유물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중 300여점을 선정 전시하고 있는데, 백제왕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首府)명 인장와, 전달린토기 등과 함께 연화문 수막새, 각종 인장기와, 토기류, 금과 유리 등을 생산하던 도가니가 전시되어 있다.

「관세음응험기」 일본 쇼렌인 소장 [백제 무광왕조]부분
「관세음응험기」 일본 쇼렌인 소장 [백제 무광왕조]부분

 
*관세음응험기: 百濟武廣王 遷都枳慕蜜地 新營精舍 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에 천도하여 정사를 새로 지었다.
 
-관람안내
1. 관람순서: 왕궁리유적전시관을 먼저 관람하신 후 왕궁리5층석탑과 유적을 관람하세요.
2. 관람해설: 해설을 원하시는 분은 전시관 내에서 해설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관람문의: 전화 063)859-4632, FAX 063)859-4639

왕궁리 5층석탑과 배롱나무_2023.09.03.
왕궁리 5층석탑과 배롱나무_2023.09.03.

 
왕궁리 유적, 제석사지 및 무왕과의 관계가 궁금하신분은 지난 포스팅 아래 URL~참고!

 

익산 백제왕궁박물관과 왕궁리 5층석탑

지난 2008년 개관한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약 1년의 공사를 통해 백제왕궁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습니다. 현재는 임시개관 형식으로 운영중입니다. 2022년 06월에 찍은 영상 함께 보시면서 백

jeonjucastelblog.tistory.com

 

 

익산 제석사지(益山 帝釋寺址) 및 폐기장(백제 무왕과의 연결고리)

익산 제석사지를 36도가 넘어가는 7월의 어느 날 다녀오게 되었다. 익산 제석사지(益山 帝釋寺址)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로 1998년 5월 12일 사적 405호로 지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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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2023.09.03.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2023.09.03.

 

익산 왕궁리 5층석탑_국보 제 289호 / 2023.09.03.
익산 왕궁리 5층석탑_국보 제 289호 / 2023.09.03.

 
익산 왕궁리 5층석탑(益山 王宮里 五層石塔)_국보 제 289호
 
정의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해방 이후 1965년에 보수해 1단 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올린 석조 불탑. 석탑. 국보.

익산 왕궁리 5층석탑(益山 王宮里 五層石塔)_국보 제 289호
익산 왕궁리 5층석탑(益山 王宮里 五層石塔)_국보 제289호

 
내용
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8.5m. 석탑은 마한(馬韓)의 도읍지로 알려진 곳에서 남쪽으로 2㎞ 정도 뻗은 산줄기 끝의 낮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말기에 간행된 익산읍지인『금마지(金馬誌)』에는 “왕궁탑은 폐허가 된 궁터 앞에 높이 10장으로 돌을 쌓은 것이다. 속전에는 마한시대에 만들었다고 한다.”고 전한다. 이전에는 흙으로 만든 받침을 둔 희귀한 석탑으로 알려졌지만, 1965년에 해체하여 보수하면서 원래 돌로 만든 받침을 갖추었음이 밝혀져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익산 왕궁리 5층석탑_국보 제 289호
익산 왕궁리 5층석탑_국보 제 289호

 
받침돌은 돌을 쌓은 구조가 아니라, 목탑처럼 네 귀퉁이의 주춧돌 위에 각 변의 길이가 같지 않은 부등변(不等邊)의 8각 돌기둥을 높이 세우고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기 위해서 길게 다듬은 장대석(長臺石)을 창방(昌枋)이나 평방(平枋)처럼 올려 놓은 모습이다. 평방 위에는 1층 몸돌을 놓았고, 아울러 받침돌의 덮개돌을 받치도록 구성하였다.

익산 왕궁리 5층석탑
익산 왕궁리 5층석탑

 
네 기둥의 중심인 가운데 부분에는 기둥 받침돌인 심초석(心礎石)이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에는 목탑의 기둥인 심주(心柱)처럼 여러 단의 네모난 돌을 쌓아 올렸다. 8각 기둥과 네모난 돌 사이에는 막돌과 흙을 다져 메웠는데, 흙 속에서 백제시대에 만든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고, 부서진 덮개돌과 면석의 일부도 발견되었다. 파손된 면석의 각 면에는 2개의 가운데 기둥이 새겨져 있다.

왕궁리 5층석탑 좌측으로 익산 미륵산이 보인다.
왕궁리 5층석탑 좌측으로 익산 미륵산이 보인다.

 
보수 공사를 진행하던 중, 1층 지붕돌 가운데 부분과 심초석에서 각각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확인되었다. 사리장엄구를 장치한 1층 지붕돌의 돌은 백제시대에 주춧돌로 사용하였던 돌을 다시 이용한 듯 보이는데, 좌우에 ‘요(凹)’자형의 네모난 홈을 만들고서 뚜껑이 있는 금동 상자[有蓋金銅函]를 각각 안치한 상태였다.

왕궁리 5층석탑
왕궁리 5층석탑

 
오른쪽 금동함 안에는 금으로 만든 유개방합(有蓋方盒)이 있었고, 그 속에는 금제연화대좌(金製蓮華臺座)와 함께 연꽃 모양의 뚜껑을 갖춘 녹색 유리로 만든 사리병인 장경원저병(長徑圓底甁)도 확인되었다. 왼쪽 금동함 안에는 금제유개장방합(金製有蓋長方盒)이 있었고, 다시 그 안에서는 2줄의 금띠로 묶인 금으로 만든『금강경(金剛經)』이 발견되었는데, 펴고 접을 수 있는 절첩식(折帖式) 금구(金具)로 연결된 상태였다.

서북방향에서 찍은 왕궁리 5층석탑
서북방향에서 찍은 왕궁리 5층석탑

 
심초석에 설치된 사리(舍利) 구멍은 ‘품(品)’자형으로 조성되었는데, 동쪽 구멍에는 배처럼 생긴 광배(光背)를 갖춘 청동여래입상(靑銅如來立像)과 청동방울[靑銅鈴]이 들어 있었고, 북쪽 구멍에서는 향(香) 등이 발견되었지만, 서쪽 구멍의 것은 일찍이 도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익산 왕궁리 5층석탑_국보 제 289호
국보 제 289호_익산 왕궁리 5층석탑

 
탑신부(塔身部)는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1층 몸돌은 모서리 기둥을 조각한 기둥 모양의 돌을 네 귀퉁이에 세우고서, 그 사이에 가운데 기둥을 새긴 면석을 끼워 세운 모습이다. 2층 몸돌은 각 면마다 1장의 돌을 세워 조립하였고, 3층 이상의 몸돌은 2장의 돌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어 있다.

소나무 사이의 왕궁리 5층 석탑
소나무 사이의 왕궁리 5층 석탑

 
1∼3층의 지붕돌은 윗면과 밑면에 각각 4장씩 모두 8장의 돌로 조립되었고, 4∼5층의 지붕돌은 윗면과 밑면에 각각 2장씩 모두 4장의 돌로 구성되었다. 추녀는 얇고 밑면은 대체로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밑면 받침은 모두 3단이다. 네 귀퉁이는 가벼운 반전(反轉)을 보이는데, 전각(轉角) 아래 부분에는 풍령(風鈴)을 달려고 만든 구멍이 뚫려 있다. 지붕돌 윗면은 경사가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도 적은 편이며, 꼭대기에는 윗 몸돌을 받치기 위한 돌이 끼워져 있다.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부서진 보륜(寶輪) 1개 등이 남아 있다.

건물지와 왕궁리 5층 석탑
나무벤치의자와 왕궁리 5층석탑

이 석탑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많은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1965년에 보수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지붕돌의 모습이 백제계 석탑을 따르고 있고, 탑신부의 결구(結構) 수법이나 받침 표현 방식이 신라 석탑을 따르고 있다고 하여,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동쪽 방향으로 찍은 왕궁리 5층 석탑
동쪽 방향으로 찍은 왕궁리 5층 석탑

 
하지만 보수 공사를 진행하면서 받침돌의 구성 방식이나 사리장엄구의 양식 등이 확인한 뒤에는 후대까지 유행하였던 백제계 석탑 양식에 신라 석탑의 양식을 더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최근에는 심초석과 심주의 구조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962년 지정)의 받침돌 구조와 일치하는 점을 들어, 백제시대에 목탑을 석탑으로 번안(飜案)하는 과정에서 건립하였다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글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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