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개관한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약 1년의 공사를 통해 백제왕궁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습니다. 현재는 임시개관 형식으로 운영중입니다.
2022년 06월에 찍은 영상 함께 보시면서 백제왕궁박물관으로 GO GO ~!
백제왕궁 및 정원, 대형 화장실, 왕궁리 5층석탑 등 유적지는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입니다. 왕궁리 유적은 사진을 수시로 찍으로 갔기 때문에 방대한 양으로 인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새롭게 단장한 백제왕궁박물관을 소개합니다.
그럼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 볼까요!~ 아래 사진은 출입구 앞 1층 내부입니다. 깔끔하죠!~^^
각 전시관의 설명 등은 백제왕궁박물관 홈페이지가 원문입니다.
열린수장고 Open storage
열린수장고는 관람객이 유리창을 통해 소장품의 수장, 보존 상태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수장고는 소장품을 안전하게 보존·관리할 수 있도록 특별히 조성한 공간으로 온도와 습도를 엄격하게 관리합니다. 열린수장고는 관람객이 평소에 접근하기 어려운 수장고와 유물관리 환경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조성한 공간입니다. 백제왕궁박물관 열린수장고에는 익산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제적사 폐기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왕궁의 서가 옆으로... 관람객들의 쉼터가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뷰도 예술이다!~
3D 영상관 : 무왕의 꿈 익산 : 소요시간 6분 내외
상설전시장
1부. 백제왕도 익산
1부에서는 백제 무왕 관련 유적과 기록을 통해 백제왕도 익산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익산은 고대 국가에서 수도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요인인 왕궁(왕궁리유적), 왕릉(쌍릉), 사찰(제석사지.미륵사지), 관방유적(익산토성) 이 자리하고 있어 ‘백제왕도 익산’을 알려줍니다.
한 바퀴 돌아보면 알겠지만, 박물관의 핵심이 처음이자 마지막!~ 문구!~
왕궁에 담긴 역사의 시간_Time in history tracing back to the Royal Palace
‘수부首府’ 도장을 찍은 기와
Roof Tile with Stamped Letters ‘Subu(首府)’ This word means 'the capital city' in those days.
‘수부首府’ 도장을 찍은 기와는 익산 왕궁리유적과 익산토성,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등 익산과 부여지역의 사비기 백제 도성 관련 유적에서만 발견되고 있습니다. ‘수부首府’는 왕실과 중앙 관청을 나타내는 글자로, 익산에 왕궁과 중앙행정기구가 존재했음을 보여 주는 유물입니다.
「관세음응험기」 일본 쇼렌인 소장 [백제 무광왕조]부분
百濟武廣王 遷都枳慕蜜地 新營精舍_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에 천도하여 정사를 새로 지었다.
"...무왕은 이름이 장이고 법왕의 아들이다. 풍채가 빼어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였다..."
「삼국사기 권27, 백제본기 제5, 무왕 1년」
무왕과 익산 / King Mu and Iksan
무왕(600~641)의 집권기는 백제가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시대였습니다. 554년 성왕이 관산성에서 전사한 후 백제는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후 위덕왕·혜왕·법왕이 50여 년간 여러 방면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무왕 대에 이르러 실추된 백제의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무왕은 이곳 익산에서 새로운 백제 중흥의 꿈을 펼쳤습니다.
2부. 왕궁의 건축
2부에서는 백제왕궁의 조성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익산 백제 왕궁을 이해하기 위해서 건축의 기초가 되는 대지조성방법과 공간 구획 방법을 알아야합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만든 왕궁리유적은 백제의 뛰어난 건축〮토목 기술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백제왕궁, 왕궁리유적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는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지설 등 과거부터 왕궁터로 전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익산 왕궁리유적이다. 이곳은 왕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방은 외부와 구분하기 위한 궁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유적의 규모가 동서 240m, 남북 490m로 축구장의 약 16.5배 크기를 가지고 있다.
왕궁리유적의 최초 발굴조사는 석탑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조사가 진행될수록 백제의 흔적과 유물들이 다수 발견되면서 백제 왕궁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유적의 대지는 백제 풍납토성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높은 수준의 대지조성 기술이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인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정원 유적을 비롯한 수많은 증거들은 이곳이 백제의 또 하나의 숨겨져있던 왕궁터임을 말해주고 있다.
백제왕궁, 왕궁리유적 Backje Royal Palace, Wanggung-ri Archaeological Site
왕궁리유적은 1989년부터 진행된 발굴조사 결과 백제 무왕 때 왕궁을 건립하여 운영하다가 후대에 왕궁의 중요 건물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찰을 건립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왕궁 터에서는 궁장(왕궁의 담장),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 건물지, 공방, 정원과 후원, 화장실, 부엌 등이 확인되었으며, ‘수부首府’ 도장을 찍은 기와, 토기, 중국 청자 조각, 금과 유리제품, 조경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왕궁의 와적기단 瓦積基壇 Platform of the Royal Palace stacked with roof tiles
왕궁에서는 기와 조각을 쌓아서 만든 와적기단 건물지가 확인되었습니다. 와적기단은 지붕에 올렸던 기와를 재활용해서 만든 것으로, 삼국시대의 독특한 건물축조 방식입니다. 이 기단은 돌로 만든 석축기단에 비해 견고하지는 않으나 쉽게 만들 수 있고 장식성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와적기단은 부여·익산의 백제 도성 관련 유적과 정림사지·군수리사지 등 사찰유적, 경주와 7~8세기 일본 사찰유적에서도 확인되고 있어 백제와 신라,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궁의 수막새 Roof-end tiles of the Royal Palace
삼국시대에 기와는 왕궁이나 관청, 제사 시설, 사찰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설에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수막새는 목조건축 지붕의 기왓등 끝에 사용하는 기와로 목조건물을 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하고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왕궁에서는 연꽃무늬 수막새, 무늬 없는 수막새, 바람개비무늬 수막새 등이 출토 되었는데, 이 중 잎의 형태가 하트 모양인 8엽의 연꽃무늬 수막새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합니다. 왕궁을 지을 때 사비(부여) 도성에서 기와를 만들어 가져왔거나, 장인들이 기와를 만드는 도구를 가져와서 현지에서 제작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있습니다.
왕궁의 축대 Embankment of the Royal Palace
무왕이 익산에 새로운 왕궁을 짓기 위해 선택한 곳은 용화산 남쪽 끝자락, 북에서 남으로 완만하게 경사져 있는 구릉지였습니다. 구룡이라는 지형상의 제약을 극복 하고 왕궁 안에 건물을 짓기 위해 동서 방향과 남북 방향으로 높이차를 두어 축대를 쌓았습니다. 축대는 궁 내부 공간을 일정한 비율로 구획하는 역할도 합니다. 동서로 쌓은 4개의 '축대 폭은 남쪽에서부터 2:1:2:1의 비율을 보이며, 잘 다듬어진 석재를 질서 정연하게 쌓고 점토와 잡석을 이용해 뒤를 채웠습니다. '왕궁을 건립하면서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공간을 분할하고 건물을 배치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궁의 담장 宮牆 Wall of the Royal Palace
궁장(宮牆)은 도성 내부의 궁궐을 보호하는 시설로, 왕궁은 동서 길이가 약 240m, 남북 길이가 약 490m인 장방형의 궁장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중국 위진남북조시대(220~589) 왕궁의 비례를 충실하게 재현한 것으로 고대 동아시아 국가들이 도성 건설의 원리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궁장은 대부분 무너져 사라지고 현재 2단의 석재만 남아 있습니다. 고대 중국의 건축 관련 서적인 『영조법식』에 의하면 ‘담장 아래쪽의 폭은 높이의 1/2이고, 담장 위쪽의 폭은 높이의 1/4이다’라고 하는데 이 규격을 왕궁의 궁장에 적용하면 궁장의 높이는 6m, 담장 위쪽의 폭은 1.5m가 됩니다. 궁장은 판축 담장(흙다지기)이었다는 설과 석축 담장(돌쌓기)이었다는 설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판축설에 따라 궁장의 일부를 1/4로 재현했습니다. 지붕은 주변에서 기와 조각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기와 지붕으로 짐작됩니다.
"··· 왕궁평 ··· 세상에서 전하기를 마한 때 지은 궁궐 터라고 하는데 성터가 뚜렷하다. 흙을 쌓아서 토루를 만들고 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 『금마지金馬志』상권 [고적古蹟] 금마군수 남태보(1756, 영조32)편찬
3부. 왕궁의 구조
3부에서는 왕궁리유적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3단계로 구성된 영상물은 왕궁리유적이 사람들에게 잊혀졌던 과거의 모습에서 발굴을 통해 확인된 백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4부. 왕궁의 생활문화
4부에서는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왕궁의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시는 화장실, 정원, 공방, 토기, 부엌, 인장기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왕궁의 화장실
왕궁의 정원
왕궁의 공방
왕궁의 토기
왕궁의 부엌
수부首府 도장을 찍은 기와 Roof Tiles with stamped Letters
왕궁에서는 기와의 표면에 도장을 찍은 기와가 60여 종류 넘게 확인되었습니다. 도장 내용을 보면 백제의 행정구역 명칭, 연대를 표시한 것, 생산자의 이름을 한 글자씩 표시한 것, 특별한 표시를 위해 한 글자만을 찍은 것, 글자가 아닌 기호를 표시한 것 등 다양합니다. 기와 생산 과정이나 검수 과정에서 생산지나 생산자, 생산 연대, 기와의 사용처 등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_왕궁리유적
5부. 왕궁에서 사찰로
5부에서는 백제 말기 이후, 왕궁은 사찰로 변화됩니다. 왕궁사, 대관관사, 관궁사 등이 새겨진 명문기와를 통해 사찰의 이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홀로그램을 통해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함과 유리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왕궁에서 사찰로 From the Royal Palace to the Buddhist Temple
백제왕궁은 백제 말 또는 통일신라 초기에 탑 · 금당 · 강당을 갖춘 사찰로 변모하게 됩니다. 사찰 터에서는 ' 왕궁사 , 대관관사 , 관궁사 ' 등의 사찰 이름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고 있어 사찰의 이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왕궁에서 사찰로 변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무왕이 익산 쌍릉에 모셔지면서 무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1층 상설전시관을 보고 이제 2층 왕궁의 서가를 보고나면 끝부분에는 ICT로 피어나는 백제정원관이 있다.
2층 모든 시설 입구에는 직원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안내에 따라 체험하시면 됩니다.
특히 아이와 함께 오시는 분들은 아이와 함께 꼭 체험을 하시길 권장합니다!~
ICT로 피어나는 백제정원관
어린이 디지털 체험실
홀로그램 아트 시어터
한 어린이가 왕궁리5층석탑 근처에서 연을 날리다가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데,...???.........궁금하면 직접 가보시길!~^^*
가상체험관 / 무왕의 도시 잠을 깨다
백제왕궁 발굴체험실
고고학과 문화재 발굴조사를 쉽게 이해하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어린이 진로 체험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옥상 쉼터가 남았는데, 안전상의 이유로 개방여부는 불투명합니다. 홍보를 위해 허락을 구해서 촬영.
야외전시
건물의 기단석, 초석, 계단석, 담장석, 정원석, 탑의 옥개석, 기와편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왕궁리유적 출토 기와 王宫里遺蹟 出土 蓋瓦
왕궁리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는 총 30 만점 정도 기와편이 출토되어 다른 유물에 비해 많이 수습 되었는데, 그중 일부를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전시하고 있다. 기와는 왕궁리유적의 왕궁이나 사찰 건물, 담장의 지붕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막새기와와 함께 시대별로 만드는 흙과 제작 방법, 기와의 무늬에서 차이가 있어 유적의 연대를 결정 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사진이 많아서 더 길게 쓰는 것은 지양해야 할 듯합니다. 백제 무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왕궁리유적과 멀지 않은 곳에 익산 무왕릉(쌍릉)이 있고, 무왕의 이야기 및 서동설화도 있고 무왕 이후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그리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그 아들 이야기 까지...역사는 지금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누가 알았을까요? 백제 무왕의 이야기가 일본의 관세음응험기에 있을줄... 출토된 유물 및 유적지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왕궁리유적에서 "전주 럭셔리크로우"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백제왕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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