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5일 남원 실상사를 찾아가는 길목에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남겼던 곳의 포스팅이다. 인월-월평마을-영월사-중군마을-실상사-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동편제마을,비전마을(가왕 송흥록, 국창 박초월 생가)-국악의 성지(2023.08.04)-관음사 등을 돌아보았다.
남원 운봉읍에서 인월면으로 국도 24번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황산대첩비지가 있는 곳에 전촌마을, 비전마을(동편제마을)이 있다. 람천을 관통하는 대첩교를 지나 좌측에는 황산대첩비지가 있고, 우측으로 가왕 송흥록, 국창 박초월 생가가 있는 비전마을이 있다. 국악의 성지는 황산(698m)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국악의 성지(國樂의 聖地)안내도
Birthplace of Korean Traditional Music
이곳(운봉)은 삼국시대 이래 유구한 역사와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가 흥부가의 무대이자 수많은 명인명창을 배출한 국악의 요람이다.
또한 신라 말 악성(樂聖) 옥보고(玉寶高) 선생은 운상원(운봉)에서 거문고를 전수 보급하였고 조선 후기 판소리의 중시조인 가왕(歌王) 송흥록(宋興祿)선생이 동편제를 창시했으며 이 외에도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박초월 등 많은 국악 선인들이 수련한 곳이다.
이처럼 역사적인 이곳 국악의 성지는 옥보고, 송흥록 선생 일가를 비롯한 국악 선인의 묘역과 위패를 봉안하여 후배 국악인들이 경건하게 참배하고 득음 연수를 하는 터전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6번 송흥록 묘역: 동편제를 창시한 가왕(歌王) 송흥록(宋興祿)선생의 묘가 있다.
국악의 성지는 황산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 걷기에 좋은 장소로 주변의 풍경과 꽃과 나무를 볼 수 있어 좋다!~
가야금산조 / Gayageum Sanjo
[장구반주에 맞추어-가야금(12줄)으로 연주하는 산조]
가야금 산조는 다른 악기의 산조보다 먼저 1890년경 김창조(金昌祖)에 의해 창시되어 현재도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국 가실왕이 6세기에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으며,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을 지었는데,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로 투항하였다고 한다. 이후 가야금은 신라에 널리 퍼져 그 곡 수가 185곡에 이르렀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크게 애호되었다. 산조가야금은 민속풍류, 가야금 병창, 민요, 창극, 무용곡 등의 반주로 널리 쓰였지만, 19세기 말경에 발생한 산조에서 악기의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 가야금 산조야말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순수한 기악 독주곡이다.
거문고산조 / Geomum-go Sanjo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거문고를 위한 독주곡]
가야금 산조가 여성스럽다면 거문고산조는 남성스럽다
술대로 줄을 내리쳐 만들어내는 가락은 자유로운 멋과 낭만을 느끼게 한다
거문고는 중국에서 보내온 칠현금을 고구려의 왕산악이 그 제도를 많이 고쳐 만들었다고 한다. 소리가 깊고 장중하여 예로부터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일컬어졌으며, 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 사이에서 숭상되었다. 지금도 줄풍류를 비롯하여 가곡반주, 거문고 산조 등에서 출중한 멋을 나타내고 있다. 1896년 백낙준에 의해 처음 거문고 산조가 연주되었고, 자유스러운 괘의 이동, 추성이나 퇴성을 이용한 가락의 여음, 자출성의 확대에 따른 음색의 변화, 음역의 확장과 조현법의 변화들은 거문고산조에 나타나는 연주기법들이다. 거문고산조는 수수하면서도 웅장하고 막힘이 없는 남성적인 음악으로, 우조와 계면조를 섞은 빠르고 느린 리듬이 조이고 풀고 하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거문고 Geomumgo: 현금(玄琴)이라고도 한다.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어서 만든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6줄을 매고 술대로 쳐서 소리낸다.
아쟁산조 Ajaeng Sanjo
[아쟁으로 연주하며-심금을 울리는 산조]
산조 아쟁은 음량이 크고 지속적인 음을 내기 때문에 감성적이고 표현력이 풍부한 음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하다
아쟁은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와 당악에만 사용하다가 조선시대에는 향악에도 사용했다.
음량이 크고 지속음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주로 궁중음악 연주에서 저음부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음악가 박성옥이 휴대하기 편하기 위하여 몸통 윗판에 공명판을 덧대고 가는 줄을 사용하여 산조나 민속음악을 연주하기 쉽게 개조하였고, 이것을 창극 반주 등에 사용하다가 1960년대에 들어 한일섭이 아쟁 산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가락은 우조와 계면조가 중심이며, 호소력 있는 애절한 감정의 농도가 짙게 표현되고 있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한(恨)을 느끼게 한다.
산조아쟁: 아쟁은 원래 7현 이었으나, 근대에는 8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농악 Farmer's music
농촌에서 집단노동이나 명절 때 흥을 돋우기 위해서 연주되는 음악.
풍물∙두레∙풍장∙굿이라고도 한다. 김매기∙논매기∙모심기 등의 힘든 일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덜며 나아가서는 협동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데서 비롯되어 지금은 각종 명절이나 동제∙걸립굿∙두레굿과 같은 의식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고 있다.
노동요(勞動謠)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를 말한다. 노래를 하며 힘을내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가질 수 있다.
의례요 Ceremony Songs
의례요는 통과의례(通過儀禮)나 세시의례(歲時儀禮)에서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데, 장례 때 부르는 노래가 주종을 이룬다. 장례절차에 따르는 〈상여소리〉나 〈달구소리〉는 받는 소리가 단순한데 비하여 메기는 소리의 사설이 발달되었다. 〈회다지 소리〉라고도 하는 <달구소리>는 사설만 바꿔서 집터를 다질 때 부르기도 한다.
유성기 Phonograph /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에 유행했던 SP축음기와 판이다. 손잡이로 태엽을 감고 바늘을 판 위에 올리면 바늘 위쪽에 있는 소리통이 울린다. 유성기판의 한면에는 대개 1곡 정도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대금 산조 Daegeum Sanjo
[대금으로 연주하는 산조이며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
대금 산조는 정악 대금보다 음역이 조금 높고 길이가 짧은 산조 대금 또는 시나위 젓대로 연주한다
대금은 신라 때 중금, 소금과 더불어 삼죽(三竹)이라 하여 신라악에 편성되었다. 대금산조는 20세기 초에 박종기에 의하여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며, 그의 가락은 한주환이 이어받았다. 그 뒤 한범수가 박종기, 한주환의 가락 중에서 듣기 좋은 부분만 선택하여 편곡한 것이 한범수류 대금 산조이다.
낮은 음역에서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음이 나고, 높은 음역에서는 장쾌하고 독특한 음색이 난다. 음이 지속되므로 현악기의 산조보다도 자유롭게 음처리와 표현을 할 수 있다.
피리산조 Piri Sanjo
[향피리로 연주하는 산조이며 가장 최근에 연주하기 시작함]
피리는 악기 자체가 지닌 좁은 음역과 입술의 강도, 입김의 조절이 까다로워 연주가 어렵다
피리는 전통음악 연주에서 중심 악기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악기의 한계 때문에 피리산조는 늦게 만들어졌다. 1960년대에 이충선이 대금산조 가락을 따서 부른 것이 피리산조의 계기가 되었는데, 이것은 피리 시나위라고 불릴 정도의 수준이었다. 피리 산조의 계통으로 이충선-서한범 가락, 오진석-정재국가락, 지영희-박범훈 가락이 있다.
피리산조의 멋스러움은 피리 자체의 음량을 최대한 이용한 역동적인 효과와 음색의 변화, 미분음 처리, 밀어올림, 흘러내림, 꺾는 소리 등을 들 수 있다.
단소산조 Danso Sanjo / 흐르되 날지 않는 소리 단소산조
[단소로 연주하는 산조이며 서정적인 가락을 연주하기 적합]
단소는 악기의 구조상 산조와 같은 음악을 연주하기에는 어려운 악기이다
단소는 오래된 황죽이나 오죽을 사용하며, 음역은 두 옥타브에 이르며 음색은 맑고 청아하다. 궁중음악이나 민속악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는데 이러한 단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산조를 단소로 연주하여 세인을 놀라게 한 명인이 추산(秋山) 전용선이다. 전용선이 타계한 후 전용선의 유음(遺音)이 이용구에 의해 재구성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부활한 전용선제 단소 산조는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초·중등학교의 교육용 악기로 주목받고 있다.
해금산조 Haegeum Sanjo / 두줄속의 희노애락 해금산조
[고려 때 들어온 악기로 20세기 초 해금산조가 탄생]
해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로 한범수류와 지영희류가 연주되고 있다
해금은 예로부터 다른 악기에 비해 그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왔지만 근래에 들어 중요성과 역할이 나날이 증대하는 실정이다. 해금 산조는 지용구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산조라 칭하지 않고 해금 시나위라고 불렀다. 오늘날과 같은 틀을 짠 사람은 지영희와 한범수이다.
지영희류 해금산조는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로 구성된다. 지영희류 해금산조는 굿거리 장단의 연주 기교가 매우 섬세하고 굴곡이 많아 특징적이다. 한범수류 해금산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양한 우리 악기
민속 악기 Folk Musical Instruments
민속악기들은 악기가 어디에 쓰였냐에 따라 모습이 다르고, 악기를 만드는 솜씨도 차이가 난다. 또 일반적으로 통용된 악기라 하더라도 불교의 제나 무속의례에 사용될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민속악기들은 악기의 사용 목적에 따라 향토악기, 무속악기, 종교악기로 구분하여 분류할 수 있다.
▪향토악기: 향토악기는 국악기의 모습을 민가에서 모방하여 독특한 형태의 악기로 변모시켰고 생활 주변의 소리나는 물건을 발전시켜 지역적 특성에 맞는 고유의 악기로 만들어 타지방에서 볼 수 없는 그 지방 특성을 지닌 악기가 많다.
▪무속악기: 무속의식의 노래와 춤 반주에 사용되는 악기로 지방에 따라 때와 장소 및 굿의 규모에 따라 악기 구성의 차이가 커서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려우나 주로 삼현육각 편성을 기본 축으로 삼고 있다. 지방의 무속의식에는 선율악기가 편성되지 않는 곳도 있으며, 중요하게 쓰이는 악기도 지방에 따라 다르다.
▪종교악기: 절에서 범패승들이 범패를 부를 때, 작법을 할 때, 시련을 할 때에는 악기를 사용한다. 절에서 사용되는 악기는 법구라고 하여 여러 의식에 사용하고 있으며, 범종, 북, 목어, 운판은 사물이라 부른다.
▪ 장세납(북한악기): 태평소를 개량해 복잡한 조바꿈의 연주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악기로서 그 음색은 코소리에 가깝고 진하며 처량하다.
▪ 옥류금(북한악기): 사다리 모양의 울림통과 그것을 받쳐주는 4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은 33줄이다. 음색은 우아하고도 처량하며 옥을 굴리는 듯이 곱다.
북한 악기 North Korean Musical Instruments
북한의 민족악기는 민족음악을 창조하는 수단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의 민족악기 개량은 악기의 공유한 특성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살리면서 전통악기의 음계·음역 및 음량·음색, 그리고 형태 등의 제한성을 극복하는 방향에서 악기개량이 진행되어 왔다.
▪단소-전래 단소보다 음량의 확대와 취구의 개선으로 조바꿈이 편리
▪양금-12율 반응체계로 조율된 44현으로서 불필요한 여음제거를 위해 새로운 소리멈춤장치를 만들어 민속적 장단과 반음계적 선율진행이 가능
▪장세납-새납(태평소)을 개량해 복잡한 조바꿈의 연주를 가능하게 만들어진 악기
▪해금-종래 2현에서 4현으로 늘었으며 소해금, 중해금, 대해금, 저해금 등 4가지로 확대 개량해 사용
▪가야금-현재 21현의 가야금을 쓰고 있으며, 두손주법이 도입됨으로써 다성적인 형상수법들이 널리 적용
세피리 Sepiri
민속악기로 향피리와 거의 같으나 관이 가늘기 때문에 ‘가는 피리’ 즉 세피리라 한다. 관이 가늘어 작은 음량을 내므로 가곡(歌曲) 반주나 줄풍류(실내악)에 주로 사용된다.
쌍피리 Ssangpiri
강화도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향토악기로 길이 19cm, 내경0.5cm 정도의 시누대 두 개를 명주실로 묶어 관대를 만들고, 여기에 길이 3cm 가량의 서를 각각 꽃은 다음 한꺼번에 입에 물고 분다.
향피리 Hyangpiri
민속악기로 향피리 관의 길이는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이 쓰이는 것이 약간 차이가 난다. 지공(指孔)은 여덟이며, 음역은 두 옥타브 정도이나, 고음은 배음을 활용한다.
당피리 Dangpiri
조선시대 당피리는 관대를 황죽이나 오죽을 써서 굵고, 음량도 크며 음색도 좀 어두운 편이다. 대체로 당악 계열의 궁중음악과 종묘제례악 등에 편성되어 고풍스럽고 권위 있는 느낌을 표현한다.
농악(農樂) Farmers' music
흥을 돋우기 위해 연주되는 음악
농악이란? What is Farmers' music
농악이란 꽹과리, 징, 장고, 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벌이는 일련의 제의적, 음악적, 무용적, 연극적 공연 행위들로 구성되는 한국의 전통공연예술의 일종이다.
한국농악은 역사적으로 부족국가시대부터 연원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강원도,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중심으로 발달해 온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전라도 농악이 가장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전라도 지역에서 전통 농어촌 공동체 사회의 제의적인 핵심 행위인 마을굿을 농악 중심으로 수행해 왔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구분 | 기호농악 | 호남농악 | 영남농악 | 영동농악 | |
좌도농악 | 우도농악 | ||||
전승지역 | 경기, 강원도 영서 충청도 북부 지방 |
전라동부지역 산간 내륙 |
전라서부지역 평야 |
경상도 지역 | 강원도 지역 |
독특한 가락 | 길군악 칠채 | 영산가락, 짝드름 | 오채질 굿 | 호호딱딱 | |
알려진 농악 | 평택농악 | 남원농악, 필봉농악 | 이리 농악 | 차산 농악 | 강릉농악 |
남원농악 Namwon Farmers' music
남원농악은 전 치배(굿치는 사람)가 상모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상쇠 이하 징, 장고잽이 까지는 부포(날짐승의 깃털)를 단 부들상모를 쓰고 소고잽이는 창호지를 길게 오려 단 채상모를 쓴다. 고깔은 일체 쓰지 않는다.
예전에는 무명한복에 삼색 복색을 두르고 짚신을 신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백색 저고리에 청색 조끼를 입고 삼색 복색에 운동화를 신는다. 농기와 영기를 앞에 세우는데 영기에는 창호지로 만든 지전을 건다. 치배는 판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만큼의 인원을 편성하고 뒷굿잽이에는 나발수, 호적수, 대포수, 조리중, 각시, 양반광대 등이 있는데 특히 각시광대는 두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남원농악은 어느 굿보다도 가락이 다양하고 빠르고 느린 가락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좌도농악의 꽃이라 불리는 영산과 미지기는 관객의 흥취를 돋구어 주며 굿을 치는 치배들도 다양한 기량을 연출해 내는 가락이다. 치배들이 쓰는 부들상모는 적자(구슬을 말함)석에 명주실 끈을 넣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누그럽고 구슬을 세우면 곧바로 서지 않고 구부러지며 세워진다. 그래야 다양한 묘기를 연출해 내어 흥미진진한 대목이 많은 굿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판소리란 무엇인가? What is Pansori
판소리란 ‘놀이판’에서 소리꾼이 노래와 사설, 몸짓, 발짓 그리고 고수의 신명나는 북장단이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다
판소리는 광대가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를 펼친 마당이나 공연장에서 고수의 북 반주로 짧게는 세시간, 길게는 여덟시간 정도 걸리는 긴 이야기를 몸짓을 섞어 가며 흥미롭게 노래하는 판의 예술이다. 공연되는 형태로 보면 음악극의 모습이며,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면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는 서사극이다.
판소리는 애초에 ‘소리’라는 범칭으로 불렸으며, 타령(打令), 잡가(雜歌), 광대소리, 극가(劇歌), 창극조(唱劇調)등의 용어로도 통용되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판소리라는 명칭은 신문에서도 사용되었고, 정노식의 <조선창극사> 에도 창극과 함께 이 용어가 쓰이고 있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 두 단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판’은 장면이나 무대 또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공간을 뜻한다. ‘소리’는 노래를 포함하여 성악적 측면이 강화된 무대예술을 말한다. ‘판’에는 물건을 일정한 규격으로 찍어내는 틀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판을 짜다’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판소리는 긴 노래의 사설과 악조(樂調)를 배합하여 하나의 완결된 형태, 즉 판으로 짜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로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판창(板唱)이 일정한 장단을 가진 악조로 부르는 노래라는, 동아시아권에는 흔히 있던 일반적 구송예술을 지칭하는 개념인 바, 판소리는 판에 꽉 짜서 부르는 구체적인 우리 노래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판소리 구성요소 Components of Pansori
판소리는 광대의 소리와 연극적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대는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는데, 노래로 하는 부분과 말로 하는 부분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노래로 부르는 부분을 ‘소리(唱)’라 하고 말로 하는 부분을 ‘아니리’라고 한다. 광대는 서서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연극적 동작도 하는데, 이를 ‘발림’, 혹은 ‘너름새’라고 한다.
▪고수는 광대의 소리에 북을 쳐서 반주하면서, 소리 중간중간에 ‘얼씨구’, ‘좋다’ 따위의 추임새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연행자이다. 흔히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소리판에서는 소리꾼과 광대가 함께 판을 이끌어 나간다.
▪관객은 판소리 공연 도중에 고수와 함께 ‘추임새’를 넣어서 참여한다. 소리의 맥락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추임새를 넣어주는 교양을 갖춘 청중을 귀명창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리판은 좋은 청중 앞에서 고수의 북반주에 맞춰 광대가 소리하는 것을 전형으로 삼는다. 명창의 소리에 대하여 고수와 청중이 추임새를 하면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이야말로 소리판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 기원 (17세기~18세기) Origin of Pansori (17th ~ 18th Century)
판소리는 전통사회에서 공연되었던 다양한 민중예술에서 영향을 받아 생겨난 서민적인 예술이다
판소리에 영향을 미친 전통예술로는 무당의 굿에서 연행하는 무가와, 광대들의 판에서 연행된 재담, 동아시아의 강창문학(講唱文學) 전통, 배우들의 연극인 우희(優戲)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연행예술이 판소리 형성에 크건 작건 영향을 미쳤다.
판소리 광대의 충원자료를 살펴보거나, 긴 사설에 얹어 부르는 노래 형태와 음악어법 등을 참고하면 판소리는 호남지역의 무가와 많이 닮아있다. 이를 근거로 판소리가 무가에서 직접 발생하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판소리 연행이 광대와 고수 두명의 단촐한 연희패로 구성되는 것은 창우집단(唱優集團)의 판놀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창우집단의 연행종목 가운데서 광대가 벌이는 재담을 포함한 가창 연행 예술이 민중층에 기반을 두면서 세속적 인기를 누리게 되자, 육자배기 무악권의 창우광대들이 광대소리를 만들어 부른데서 판소리가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흥보가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었더니, 그 제비가 물어 온 박씨를 심었다가 얻은 박을 타서 보물을 얻어 부자가 되고, 부자이나 심술궂은 형 놀보는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고쳐 주고 얻은 박씨를 심었다가, 박 속에서 나온 상전, 놀이패, 장수 따위에게 혼이 난다는 줄거리 -흥보가 마누라와 함께 박타는 대목-
춘향가 -춘향이 옥에 갇혀 탄식하는 대목-
심청가 -인당수 제물로 팔려가는 심청-
적벽가 -관우장군이 조조를 만나 싸우는 대목-
수궁가 -자라가 토끼화상을 들고 토끼를 찾아나서는 대목-
‘1고수 2명창’ / 1st drummer 2nd noted singers of pansori
좋은 고수를 만나야 명창이 될 수 있다
고수(鼓手)
판소리에서 북장단을 짚어주는 Drummer in Pansori
고수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정해진 리듬을 치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의 완급과 사설이 가진 정서까지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고수는 다양한 장단의 틀을 가지고 창자의 소리 운용 태도에 따라 기교를 달리하여 북을 친다. 소리에 장단을 부쳐 가는 방식으로 ‘대마디 대장’이나 ‘부침새’ 등이 있으며, 고수는 소리의 흐름을 적절히 파악하여 다양한 기교로 북을 쳐서 반주하는 것이다.
‘대마디 대장단’은 박자의 첫 박이 시작함과 동시에 사설의 구절도 시작하며 끝날 때도 함께 끝나야 하는 기교를 말한다. ‘부침새’의 기교로는 ‘엇부침’, ‘잉애걸이’, ‘완자걸이’, ‘괴대죽’ 등이 사용된다. 소리의 맥을 제대로 살려주는 고수의 기능 및 역할을 중요시하여 예전부터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로 고수의 위치를 높여주기도 했다.
고수가 소리판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고 창자를 북돋아주기 위하여 ‘얼씨구’라든지, ‘좋다’ 등 일정한 조흥구를 노래의 사이에 집어넣기도 하는데, 이를 추임새라고 부른다. 관중도 감상하는 자리에서 추임새를 발할 수 있다.
북(鼓)
전통 타악기로 고수가 사용하는 Drums
고수(鼓手)가 쓰는 북은[소리북] 또는 [고장북]이라고 부른다.
북은 나무를 이어 붙여 만들기도 하고(쪽북), 통나무를 파내어 만들기도 한다(통북).
보통 북통의 지름이 40cm 정도이고 북통의 넓이는 25cm 정도 된다. 북통은 가운데가 약간 나오도록 만들지만 북을 놓고 칠 때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북의 왼쪽을 궁편, 오른편을 채편이라고 한다. 북채는 탱자나무나 박달나무를 둥글게 깎아 쓰는데 지름이 약 2cm 정도이고 길이는 25cm에서 28cm 가량 되는 것을 사용한다.
19세기 전반 판소리
판소리 전성기로서 8명의 명창이 뛰어난 활동을 벌였다 하여 전기8명창시대라 한다.
권삼득,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박유전
판소리의 유파 Regional Sects of Pansori
판소리는 전승가문과 지역에 따라 가창 방식과 소리 놓는 법 등의 차이를 가진다
19세기 초반인 전기8명창시대에는 양반층이 판소리의 적극적인 애호가가 되면서부터 판소리가 명예와 부를 보증하는 예술이 된다. 그러자 광대들은 자신의 소리가 정통성과 법통이 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유파가 성립하게 되었다.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의 개념으로 나뉘는 것은 판소리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의 현상으로 전승되는 지역에 따라 소리하는 방식이 각각 독특한 형태로 발달해 왔으며, 그것이 하나의 법제로 굳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판소리의 유파를 나누는 우선적인 기준은 전승지역이다. 전통사회에서는 명성과 교육적 능력을 가진 명창이 사는 집에 학생들이 함께 기식하면서 오랜 시간 학습하였으며 특출난 명창이 사는 지역이 자연스럽게 판소리 전승의 중요 거점이 되었다.
판소리 유파의 구분은 이전의 지역적 기준보다는 명창 자신의 기준에 의하여 유파를 나누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후반 가문을 중심으로 유파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송판 적벽가>라든지 <박유전제 심청가>, <김세종제 춘향가>, <보성소리> 등은 가문으로 계승된 소리의 계보이다.
동편제 東便制 Dongpyeonje
섬진강 동쪽 지역 등지에서 송흥록, 송만갑 가문에서 전승된 판소리
운봉, 구례, 순창, 흥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동편제는 웅장하고 씩씩하며, 기교를 부리지 않고 선천적인 음량을 소박하게 그대로 드러내어 소리하는 특징을 지녔다. 동편소리는 아니리가 길게 발달하지 않았고, 발림도 별로 없고 목으로 내는 통성에 의지하여 연행하는 소리제이다. 동편소리는 ‘대마디 대장단’이라는 말과 같이 장단에 소리를 맞춰서 붙여 나간다.
▪동편제 계보I 송흥록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동편제 계보Ⅱ 신재효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동편제 계보Ⅲ 정춘풍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서편제 西便制 Seopyeonje
섬진강 서쪽 지역 등지에서 전승되어 이어진 여성적인 판소리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 등지에서 전승되는 유파의 소리를 지칭하며, 박유전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은 것이다. 서편제의 음악적 특징은 애원 처절하고 소리의 맛깔스런 꾸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계면조를 주로 써서 슬프고 원망스런 느낌을 처절하게 잘 그려내며,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고 감칠맛 있는 소리를 그려낸다.
▪서편제 계보 박유전의 법제를 표준으로 삼은 것
중고제 中高制 Junggoje
경기 충청지역에서 발전했으나 오늘날 거의 전승이 끊김
‘비동비서’라 하여 소리 스타일이 중간적이며, 창을 할 때 비교적 낮은 음성에서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고, 한계점에 이르렀을 때 음성을 낮추어 부른다. 소리의 높고 낮음이 분명하여 명확히 구분하여 들을 수 있으며, 독서풍으로 노래하여 곡조가 단조롭고 소박한 맛이 있다.
▪중고제 계보: 김성옥-김정근-김창룡 / 염계달-이동백
19세기 중반 판소리
많은 명창들이 판소리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후기8명창시대라 한다.
박만순, 이날치, 송우용, 김세종, 장재백, 정춘풍, 정창업, 김찬업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판소리
19세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활약한 5명창을 근대5명창이라 한다.
김창환, 송만갑, 정정렬, 이동백, 김창룡
국악의 성지
▪개관시간: 매일 09:00 - 18:00
▪휴관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문의 전화: 063-620-6905
▪관람료: 무료
▪주소: 전북 남원시 운봉읍 비전길69, 국악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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