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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익산 근대문화유산 춘포역과 호소카와 농장을 가다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3.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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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근대문화유산 답사 춘포역호소카와 농장, 봉개산은 2022년 9월 1일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이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춘포...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현장으로 GO GO~!

춘포역(春浦驛)
춘포역(春浦驛)

 

춘포역 역사놀이터
춘포역 역사놀이터

 

 

 

 

 

춘포역 전경
춘포역 전경

 

춘포역(春浦驛)

춘포역사는 1914년에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처음에는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으로 익산(당시 이리) - 전주 간 25.3km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1996년에 춘포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1997년에는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삼례역에서 관리했다. 2011년 5월 13일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폐역되었다. 춘포면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근대역사문화유산들이 자리하고 아래로는 아름다운 만경강이 흐르고 있다. 익산 최대 곡창지인 ‘춘포’의 수탈 역사(歷史)를 대표하는 건물이 바로 이 역사(驛舍)다. 

춘포역사
춘포역 부속 건물

춘포 마을지도
춘포 마을지도

 

춘포 마을지도

춘포(春浦)우리말 이름‘봄개’이다. 봄개봄 나루라는 뜻으로 ‘봄개’의 음이 변해 ‘봉개’로 되었다. 봉개산 즉, 춘포산은 춘포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중심지이고 익산천이 흐르는 곳으로 옛날 배가 들어와 지리적인 요충지로 꼽혔다. 호남지역 농업 수탈 지역이었던 춘포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일본인 가옥(호소카와 농장가옥), 대장도정공장, 춘포역사 등이 위치하고 있다.

과거 전북 익산군 춘포면 대장촌리 였지만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춘포면이 익산시로 편입되고, 대장촌이라는 지명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춘포리로 바뀌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대장촌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일본인 지주들의 농장이 자리를 잡으며 대장촌의 뜻을 ‘큰 농장이 있는 마을’로 사용하여 그 의미가 달라졌는데 대장촌이란 지명의 추방은 오해와 편견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춘포역의 우측에 위치
춘포역의 우측에 위치

 

모형 기차와 미끄럼틀
모형 기차와 미끄럼틀

 

사진과 설명
사진과 설명

 

춘포역사는 1914년에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다
춘포역사는 1914년에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다

 

춘포역사는 1914년에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처음에는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으로 익산(당시 이리) - 전주 간 25.3km를 연결하는 전라선의 보통 역으로 시작하였다이후 1996년에 춘포역으로 이름을 바꾸고 1997년에는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삼례역에서 관리했다. 2011년 5월 13일 전라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폐역되었다춘포면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근대역사 문화유산들이 자리하고 아래로는 아름다운 만경강이 흐르고 있다익산 최대 곡창지인 ‘춘포’의 수탈 역사(歷史)를 대표하는 건물이 바로 이 역사(驛舍)다.

철길이 없어지기전 춘포역 전경
철길이 없어지기전 춘포역 전경

 

철길이 없어지기전 춘포역 전경

전라선 철도는 당시 이리(裡里)-구이리(舊裡里)-대장-삼례-전주간을 운행하였다. 춘포역은 전주-군산을 잇는 27번 국도변에 자리한다.

대장-(5.7K)-삼례
대장-(5.7K)-삼례

 

대장DAEJANG-(5.7K)-삼례

춘포역은 아침, 저녁으로 학생들이 붐비는 곳이었다. 통학생 수는 전주가 70여명, 이리(현 익산)는 200여명이었으며, 춘포면 춘포리, 덕실리, 인수리, 용연리, 김제군 백구면, 완주군 일부가 춘포역에서 통학을 했다.

1980년 대장역(춘포역)역무원들
1980년 대장역(춘포역)역무원들

 

1980년 대장역(춘포역)역무원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춘포역’은 역사적,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이다.  *등록문화재 제210호

춘포에 거주한 일본 사람들
춘포에 거주한 일본 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춘포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지었고, 수확한 곡식들을 고향인 일본으로 보냈다. 많은 논을 매매해서 춘포 주민들에게 대신 농사를 짓게 하고 수확한 곡식을 춘포역을 이용해 군산까지 옮기고, 또 군산에서 배로 일본까지 옮겼다.

1917년, 만경강 목교를 달리던 꼬마열차
1917년, 만경강 목교를 달리던 꼬마열차

 

1917년, 만경강 목교를 달리던 꼬마열차와 광궤열차 등장을 알리는 기사

全州裡里間開通(전주이리간개통)-1929년 9월 12일자 동아일보

오늘날 보통 열차는 표준궤로 1,435mm이다. 1914년 처음 운행한 열차는 사철(私鐵)로 폭이 좁은 762mm 협궤(狹軌) 단선철도로 시작했다. 협궤철도는 건설투자비, 운행비, 보수비 등의 비용이 저렴했기에 근거리에 운행되었다. 서로 마주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의 작은 열차 여서 꼬마열차 혹은 ‘동(童)차’라고도 불렸는데 전주-이리-군산을 잇는 서민들의 중요한 기차였다. 특히 통학생들이 많이 이용했다.

일제는 경편철도를 국유화하면서 일반철도로 광궤화*하는데 1929년에 오늘날의 열차궤도와 같은 노선이 이루어졌다.

 

*광궤화: 열차의 레일 사이의 폭이 넓은 철도를 광궤, 좁으면 협궤라 한다.

놀이시설 겸 야외 전시장
놀이시설 겸 야외 전시장

 

열차의 뒷 모습으로 조형물 설명과 옛 사진이 있습니다.

사업명 (역사놀이터만들기-Play Ground Iksan)으로 2019.12.~2020.03. 에 익산시, 익산문화관광재단, 익산문화도시사업단에서 춘포초등학생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모형 열차의 안
1914.11.17[개통] - 2011.05.13[폐역]

춘포의 옛 지명
춘포의 옛 지명

 

춘포의 옛 지명

춘포는 익산의 남쪽 만경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만경강은 농사에 필요한 농수(膿水)를 풍부하게 제공했으며, 그 농수를 머금고 평야의 곡식은 흉년을 모르고 익었다. 춘포의 옛 이름대장촌(大場村)이라는 지명에서 수탈의 역사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큰 농사를 지었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넓고 비옥한 토지로 곡창 지대였기 때문에 ‘쌀촌’이라 불렸다고도 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로는 1954년 형제상회로 설립한 쌍방울로 출근하는 여자승객들이 많아서 한 때 ‘딸촌’이라 불렸다.

1933.8.6. 대장(용연)교회 여름 성경학교 사진
1933.8.6. 대장(용연)교회 여름 성경학교 사진

 

1933년 대장(용연)교회 여름 성경학교 사진

만경강 물길을 타고 선교사가 들어왔고 대장교회는 1919년 이리 4.4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호소카와 농장
호소카와 농장

 

호소카와 농장 일본인 / 호소카와 농장 주임사택

춘포지역의 엄청난 규모의 농장은 일본 호소카와가의 농지였으며 그 규모는 당시 호남지역에서 세 번째였다고 한다. 호소카와 도정공장에는 12대의 정미기가 있었으며 공정을 통한 현미는 군산항에서 일본 오사카항으로 운송됐다.

춘포사람들의 저항정신
춘포사람들의 저항정신

 

춘포사람들의 저항정신

일제강점기 춘포에는 헌병출장소, 우편소, 호소카와 농장(細川農場), 이마무라 농장(今村農場)등이 있었다. 춘포사람들이 일제에 소작쟁의로 저항한 1932년 10월 28일 동아일보 기사

춘포 출신 사람들 옛 사진
춘포역 앞 익산스탬프투어함

춘포 역사놀이터
춘포 역사놀이터

 

삼례와 동익산 사이 춘포가 있다
삼례와 동익산 사이 춘포가 있다

 

춘포역사 앞
춘포역사 조형물

봉숭아 꽃과 역사입구
봉숭아 꽃과 역사입구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_등록문화재 제210호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_등록문화재 제210호

 

춘포역은 등록문화재 제210호로 문화재구역은 전 구역이 금연구역이다. 개방시간은 평일, 주말 및 공휴일: 10:00 ~ 17:00(무인개방)이다.

춘포역 관람안내
춘포역 관람안내

 

춘포역 안은 간이역 느낌으로 매우 작았습니다.

춘포역 내부
춘포역 내부

 

춘포역 내부
춘포역 내부

춘포역 내부
춘포역 내부

 

아이들이 만든 찰흙 작품(춘포역, 기차 등)이 전시돼 있다.

아이들이 만든 찰흙 작품
아이들이 만든 찰흙 작품

춘포의 수탈 역사
춘포의 수탈 역사

 

원래는 여기가 대장역인데 큰 대(大), 마당 장(場)자

‘큰 뜰’ 이라고 해서 일본인들이 여기를 만든거에요. 그래서 대장역 앞에 창고도 있었고 마구간이 한 11개 있었고, 어마어마하게 큰 정미소가 지금도 남아있어요. 수탈을 위해서 생긴거에요.

춘포역 바로 뒤로 기차가 지나간다
춘포역 바로 뒤로 기차가 지나간다

 

익산 최대 곡창지인 ‘춘포’의 수탈 역사(歷史)를 대표하는 건물 춘포역(春浦驛)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기차소리가 나서 돌아본다. 때마침 역사 뒤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호소카와 농장 앞에 흐르는 천
호소카와 농장 앞에 흐르는 천

 

춘포역을 뒤로하고 구 일본인 가옥(호소카와 농장가옥)으로 이동해본다. 중촌경로당 왼편에 위치하고 있다. 경로당 앞으로 모정이 있고, 앞으로는 작은 천이 흐른다. 

모정 앞 하천
모정 앞 하천

 

모정 옆으로 오랜만에 보는 호두나무 열매가 있어서 사진을 남겨보았다.

호두나무 열매
호두나무

호두나무 열매
호두나무 열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_Former Japanese Plantation House in Chunpo-ri, Iksan

국가등록문화재 제211호

구 일본인 가옥
구 일본인 가옥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일제강점기 대규모 농장 중 하나였던 호소가와 농장*에서 사용하던 집이다. 건축물대장에는 1922년에 이 집을 지었다고 쓰여 있다. 이 집은 지붕이 중첩되고 2층 발코니가 돌출된 외관과 재료, 평면 등에서 일본식 2층 목조주택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집의 내부는 부분적으로 개조되었으나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이 일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이주민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지금도 일본인들이 살던 집들이 남아 있다. 이 집은 춘포역사, 대장도정공장 등과 함께 일제의 농업 수탈 현장을 증언하고 있다.

 

*호소가와 농장: 호소가와는 1904년부터 춘포 인근의 3개 군에서 약 360만 평의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었다.

구 일본인 가옥
구 일본인 가옥

 

구 일본인 가옥 2층 부분
구 일본인 가옥의 유리창문

구 일본인 가옥 측면
구 일본인 가옥 측면

 

봉개산
봉개산

 

봉개산=춘포산(49m)

춘포(春浦)의 우리말 이름은 ‘봄개’이다. 봄개는 봄 나루라는 뜻으로 ‘봄개’의 음이 변해 ‘봉개’로 되었다. 봉개산 즉, 춘포산은 춘포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중심지이고 익산천이 흐르는 곳으로 옛날 배가 들어와 지리적인 요충지로 꼽혔다. 

2022년 9월 1일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올려봅니다.

춘포산 정상에 있는 정자
춘포산 정상에 있는 정자

 

봉개산 주변으로 많은 산소(묘)가 있었다. 산 정상에는 정자가 하나 있다. 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길이 있을 텐데, 나는 이날 끝내 길을 찾지 못했다.

봉개산
춘포산

이날 드론을 올려 봉개산(춘포산)의 주변 들녘과 산의 모습도 담아보았다. 

동쪽 방향(봉동, 고산)의 서방산-종남산 등이 보인다
동쪽 방향(봉동, 고산)의 서방산-종남산 등이 보인다

오른쪽 가장 큰 산이 모악산이다
봉개산 우측으로 논과 춘포면이 보인다

사진중앙에 빌딩이 우석대학교 본관
사진중앙에 빌딩이 우석대학교 본관

 

지금까지 익산 춘포면의 봉개산(춘포산)과 근대문화유산 춘포역, 호소카와 농장 일본인 가옥을 둘러보고 춘포의 옛 이름인 대장촌(大場村)이라는 지명에서 수탈의 역사를 찾아 볼 수 있었던 "전주 럭셔리크로우"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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