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7월 01일 당시 전주 럭셔리크로우의 발길이 닿은 곳은 전라북도 임실 진구사지입니다.
사진을 많이 찍는 이유와 포스팅에 제가 만족할 정도의 정보가 되었을 때 올리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계절에 상관없이 올라오는 포스팅이 있습니다. 이날은 임실 요산공원-진구사지-관촌사선대와 운서정을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일단 포스팅 준비가 된 진구사지 편을 올려드립니다.
임실 진구사지(任實 珍丘寺址)
▪전라북도 기념물
▪지정(등록)일 : 2020.12.28
▪소재지 : 전라북도 임실군
▪시대 : 통일신라~조선전기
당초 용암리사지로 불리던 이 절터는 1992년 발굴과정에서 진구사(珍丘寺) 명문기와가 출토됨에 따라 <삼국유사>,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동문선>, <조선왕조실록> 등에 해당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진구사는 7세기 후반 고구려계 승려 보덕의 제자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이후 신라 하대에는 ‘*휴’라는 선사가 주석하면서 선종사찰로 변모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조계종, 희종의 왕자 경지가 주석하였으며, 원 간섭기에는 대표적인 권문세가였던 조인규 형 혼기와 아들 의선이 진구사에 주석하면서 천태종 사찰로 바뀌었다. 고려 말에는 신인종으로 바뀌었고, 조선 태종대에는 88개 자복사 중 중신종의 자복사로 지정되었다. 이후 폐사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구사지는 발굴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임실 진구사지 석등>,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상>, <임실 중기사 철조여래좌상>이 각각 보물,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삼층석탑 등이 남아있다. [글 출처: 문화재청]
임실 진구사지 석등 任實 珍丘寺址 石燈
▪보물 제267호 寶物 第267號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등은 우리나라에 있는 석등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것 이다. 아쉽게도 석등의 윗부분이 파손되어 원래 모습이 손상되었지만 섬세하고도 정교한 문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팔각의 받침대에 새긴 연꽃과 구름무늬, 그리고 가늘고 길다란 안상(眼象)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선명히 남아있다. 큼직 한 귀꽃으로 장식된 덮개는 웅장한 느낌이 든다. [글 출처: 진구사지 (구) 석등 안내판]
실제로 일반 사찰의 석등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높이, 크기 모두 압도적입니다. 남원 실상사 석등의 높이가 5m로 진구사지 석등보다 치수로는 조금 작게 나오지만, 진구사지의 석등이 훨씬 높고 크게 보입니다.
여름에 찾아가서인지 사지 주변으로 풀이 많이 자라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개망초가 가장 눈에 많이 보이네요. 그래서 개망초와 석등을 놓고 찍은 사진이 좀 많습니다. ^^*
정말이지 석등을 앞에서 봤을 때 너무 비현실적으로 커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석등의 조각이 너무 정교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석등 중 2번째로 큰 크기라 합니다.
그럼 안내판에 나온 임실 진구사지 석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임실 진구사지 석등 / 任實 珍丘寺址 石燈 / Stone Lantern at Jingusa Temple Site, Imsil
보물 제267호 / Treasure No. 267
임실 진구사지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는 5.18m이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진구사’ 명문(銘文: 쇠붙이나 돌 또는 그릇 따위에 새겨 넣은 글) 기와가 출토되자 이전 명칭인 용암리사지 석등을 진구사지 석등으로 바꾸었다.
진구사는 7세기경 고구려계 적멸(寂滅)과 의융(義融)이 창건한 이래 통일신라시대에는 열반종 사찰 이었다가 고려시대에는 조계종 사찰에서 천태종 사찰로 바뀌었고, 조선 전기인 태종 7년(1407년)에는 88개의 자복사(資福寺: 국가의 복을 기원하는 절)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석등의 팔각 받침대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안상(眼象: 눈의 모양. 또는 눈처럼 생긴 모양)을 새기고, 그 위에 올린 연화대석(蓮花臺石: 돌로 만든 연꽃 문양의 조명 시설)에는 팔각으로 연화문을 새겼다. 석등의 끝에는 큼직한 귀꽃(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을 달아 장식하였다.
석등은 북 모양의 간주석(竿柱石: 석등의 기둥)을 사이에 두고 상대석의 앙련(仰蓮: 연꽃이 위로 향한 것처럼 그린 모양. 또는 그런 무늬)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또한 화사석(火舍石: 등불을 밝히도록 된 석등의 중간 부분)위로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을 두었으며, 옥개석 추녀 끝에 큼직한 귀꽃을 세웠다. 석등은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이 섬세한 문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위의 내용을 봤으니 얼마나 큰 석등인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느꼈을 것입니다. 높이 5.18m로 크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석등입니다.
문화재 설명
이 석등은 옮겨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높은 받침을 두고 그 위로는 지붕돌과 상륜부를 올렸다.
아래받침돌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크게 새기고, 위에는 커다란 연화문과 구름문을 장식하여 신성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가운데 기둥은 장고 모양으로 기교 있게 마련하였다. 윗받침돌은 연꽃을 화려하게 표현하여 장엄함이 연출되도록 했고, 그 위에 있는 화사석(火舍石)은 각 면에 창을 내어 부처의 진리를 상징하는 불빛이 멀리 퍼져나가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직한 꽃을 장식하여 멋스러움과 돌을 다루는 석공의 뛰어난 솜씨를 엿보게 한다. 상륜부는 일부만 남아있는데, 팔각형의 큼직한 노반석과 그 위에 다른 부재를 받쳤던 별도의 부재가 놓여 있다.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구례 화엄사 석등이나 남원 실상사 석등처럼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웅장하면서도 비례가 잘 어울려 안정된 모습이다. 당시 진구사의 위상을 엿보게 하는 걸작이다.[글 출처: 문화재청]
조금 아쉽지만 드론 촬영 영상, 사진을 거의 못 찾고, 남은 4장 컷만 보여드립니다.
보주에 해당하는 노반부의 윗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말 궁금했거든요. 결론은 우리나라 최대의 석등으로 알려진 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과 남원 실상사 석등(보물 제 35호) 처럼 보주 부위(상륜부)가 더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위 내용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석등 사진도 동서남북 돌아가며 담았고, 사지 주위의 모습도 살펴보겠습니다.
3층석탑
원형이 아닌 석탑 일부의 모습이나,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삼층석탑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전체적으로 작은 석탑입니다. 그래도 원형 모습은 고선사지, 황복사지, 감은사지 삼층석탑의 전체적인 형태를 생각해 봅니다.
현재 임실 진구사지 3층 석탑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탑신부 지붕돌이 남아 있는 형태입니다.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 任實 珍丘寺址 石造毗盧遮那佛 坐像
Stone Seated Vairodana Buddha at Jingusa Temple Site, Imsil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 / Jeolla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82
비로자나불은 지혜와 광명을 형상화한 부처를 말하며, 법신불法身佛이라고도 한다.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후기인 860~870년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좌상은 머리에 육계肉髻가 솟아 있는데 그 높이가 윤곽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낮다. 두 손은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의 손가락으로 왼손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양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대의大衣는 배 부분에서 세 줄로 만든 나비 형태의 띠 매듭으로 표현되어 있다.
연화좌대蓮華坐臺의 하대 상석上石에는 8면에 안상眼象과 사자를 새겼고, 중대석에는 8면에 보살좌상을 새겼다. 보살좌상은 결가부좌한 두 손을 가슴 부근에서 합장하고 있다. 중대석 위아래에 복련伏蓮과 앙련仰蓮이 새겨져 있다. 이 석불은 1920년부터 중기사中基寺에 모셔져 있었는데 2014년 진구사지 경내로 옮겼다.
대좌 위에 시줏돈이 놓여 있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고자 측면에 잠시 내려 놓았습니다. 전각 안에는 CCTV가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중대석의 8면에 보살좌상을 새겼고 하대 상석上石 8면에 안상眼象과 사자를 새겼다.
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석등이 나를 맞이했다. 섬세하게 조각된 돌계단을 따라 오르니, 마치 신비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듯했다. 석등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한참을 서성였다. 석공들의 혼이 담긴 작품 앞에서 나는 자연스레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임실 진구사지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몰랐던 석등의 각 명칭을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정교한 석공의 솜씨가 빛난 보물이 있는 임실 진구사지 다음에 또 오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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