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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강경 옥녀봉 봉수대와 해조문, 소금문학관, 기독교한국침례회 최초 예배지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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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의 푸르름을 따라 친구와 함께 당일코스로 익산(숭림사)를 시작으로 충남 강경(옥녀봉), 논산(견훤왕릉), 부여(가림성_성흥산성, 궁남지, 낙화암, 수북정)로 떠났었다. 어찌 보면 미루고 미뤄왔던 포스팅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논산8경 중에 7경 강경 옥녀봉(玉女峰)이다.

옥녀봉에서 본 강경하상구과 황산대교
옥녀봉에서 본 강경하상구과 황산대교

 

강경 옥녀봉 부근 주요위치
공영주차장 위에서
공영주차장 위에서
옥녀봉 유래비
옥녀봉 유래비

옥녀봉 유래비

옛날에는 이 산 아래로 흐르는 강물이 어찌나 맑았던지 고기가 노는 것도 보였고 조약돌이 손에 잡힐듯했으며 산은 숲으로 우거져 있는 데다 넓은 들판으로 그 경치가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하늘나라 선녀들이 무리를 지어 달 밝은 보름 무렵 밤에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이곳에 내려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고, 놀다 올라가는 것을 더 없는 영광으로 알고 자랑을 하였으니 이 절경을 옥황상제의 딸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해 팔월 보름날 옥황상제의 딸도 많은 선녀들과 이곳에 내려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앉아서 놀며 보니 휘영청 밝은 달빛이 어찌나 밝은지 참으로 별천지 같은 절경에 심취되어 올라갈 시간조차 잊고 있었다.

옥녀봉에서 본 금강
옥녀봉에서 본 금강

한편 하늘나라 옥황상제는 “어찌하여 딸과 선녀들이 시간이 되었는데 올라오지 않느냐?” 어서 올라오도록 나팔을 불어라 명하였다. 나팔소리를 듣고 선녀들과 옥황상제의 딸은 시간이 없어 서둘러 옷을 입다가 한쪽 가슴을 내보인 채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있었으니 이를 본 옥황상제는 “여봐라 저기 가슴을 내놓고 올라오는 자가 누구나? 당장 저자를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그 땅에서 살도록 떨어뜨려라.” 하며 노하였다.

옥녀가 매일 아침 오른 산
옥녀가 매일 아침 오른 산

그 후 그녀는 하늘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이 땅에 살면서 이름을 옥녀라 하였다. 옥녀는 매일 아침이 되면 산 위에 올라와서 용서를 빌고 하늘나라에 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 위에 올라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옥녀 앞에 거울이 하나 떨어졌다. 그 거울 속에는 그렇게도 그리던 하늘나라 궁궐과 옥황상제의 모습도 보이고 옥녀를 아끼던 선녀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 신하들이 옥황상제에게 자기를 구해줄 것을 아뢰다가 호통을 당하는 모습도 보였다.

용영대에서 본 금강
용영대에서 본 금강

옥녀는 아침마다 산에 올라 기도를 드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끝내 하늘나라에 오르지 못하고 이 땅에서 죽고 말았다. 지금도 이 산 위에는 그녀가 하늘나라의 부름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봉우리 위의 동그랗게 몸처럼 봉우리 진 곳이 있는데 이곳을 후세 사람들은 옥녀가 죽은 자리라 하여 옥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며 그녀가 들여다보던 거울은 바위로 변하여 용영대(龍影臺)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를 영원히 전하고져 이 유래비를 세운다.  / 1992. 7. 논산군수 정운영

금강이 햇빛에 반짝인다
금강이 햇빛에 반짝인다
강경산 송재정(松齋亭)
강경산 송재정(松齋亭)

송재정 안내판
송재정(松齋亭) 현판

옥녀봉구멍가게
옥녀봉구멍가게

 

옥녀봉 보호수 느티나무
옥녀봉 보호수 느티나무

보호수

▪수종 : 느티나무(2본)

▪수령 : 230년

▪품격 : 읍 나무

▪관리자 : 강경읍 북옥리 이장

▪1997년 11월에 논산시 보호수로 지정됨

강경읍 보호수 느티나무 수령 230년 이상
강경읍 보호수 느티나무 수령 230년 이상

 

강경 옥녀봉 봉수대
강경 옥녀봉 봉수대
강경 옥녀봉 봉수대
강경 옥녀봉 봉수대

옥녀봉 봉수대

▪위치: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옥녀봉의 옛 이름은 강경산이었다. 금강물 감돌아 흐르는 강 언덕에 자리한 강경산은 예부터 풍치가 아름다웠고, 그 산정에는 수운정(垂雲亭)이라 부르는 정자와 함께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봉수(烽燧)란 높은 산 정상에 봉화대를 설치하고, 나라에 큰 일이 날 때마다 에는 봉(烽:횃불), 낮에는 수(燧:연기)를 피워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방법이었다. 이와 같은 통신방법이 사용된 것은 아득히 고려 의종(毅宗)때 부터인데, 조선의 세종(世宗)대에 와서, 정식으로 체제가 갖추어졌다. 봉수의 간선(幹線)은 직봉(職烽)이라 하여 동북은 경흥(慶興), 동남은 동래(東萊), 서북은 대륙(内陸)으로는 강계(江界), 해안 지방으로는 의주(義州), 서남은 순천(順川)의 5개 처를 기점으로 하여 서울의 목멱산(木覓山: 남산)을 종점으로 했다. 우리 강경 옥녀봉 봉수대는 직봉 아닌 간봉으로 이웃 익산군 용안면 광두원산(廣頭院山)의 봉수를 받아, 황화산성(黃華山城), 노성(魯城:尼山)으로 연락했고, 노성 봉수대는 북쪽 공주군 월성산(月城山) 봉수대로 전했다.

옥녀봉 곰바위
옥녀봉 곰바위

사진에 햇빛으로 보이지 않지만, 곰바위에는  선주(仙住;신선이 사는 곳)라 써 있다.

곰바위는 봉우회에서 명명
곰바위는 봉우회에서 명명했다,

해조문으로 가는 길
해조문으로 가는 길
해조문 푯말
해조문 푯말
해조문(解潮文)과 영포대(影泡臺)
해조문(解潮文)과 영포대(影泡臺)
해조문 설명

해조문 | 解潮文 | Inscription of Tide table

▪지정별: 논산시 향토유적 제24호

▪위치: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시대: 1860년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으로 강경읍 금강변 옛 강경포구 옆 옥녀봉 정상 부근에 있는 천연 바위 절벽에 가로 131cm, 세로 110cm의 음각(陰刻)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潮汐表)이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조석표(潮汐表)는 시각의 변화만을 다루면서 물발의 세기를 언급할 뿐이었는데, 암각문의 저자 송심두(宋心斗)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원리를 전통사상에 따라 풀이하고 처음으로 만조시각(滿潮時刻)과 함께 물의 높이를 다루고, 또 그것을 계량화하여 표시하였다. 이 점에서 암각 해조문은 비록 소박하지만 현대 조석표의 두 요소인 시각과 높이를 모두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조석표라 할 수 있다. 또한 해조문은 시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심의 높낮이를 계량화하여 기록함으로써 현대적 조석표의 구성 요소를 구비한 획기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해양사(海洋史)에도 큰 의미를 가지는 조석표라 할 수 있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에 유서 깊은 포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포구에 누구라도 쉽게 보고 고기잡이와 항해, 소금 생산 등 해양 관련 모든 부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조문을 새겨 놓은 곳은 강경포구가 유일하다.

해조문解潮文 암각문
해조문解潮文 암각서

해조문 원문
해조문 원문 해석

解潮文(해조문)

地浮與海上下隨氣 (땅은 바다로 더불어 떠 있으면서 기를 따라 오르내린다)

地上江水生於一歸之海爲汐 (땅 위의 강물이 “1”에서 생겨나 바다로 돌아가니 이것이 썰물이 된다)

地下海水成於六入干江爲潮 (땅 아래의 바닷물이 “6”에서 이루어져 강으로 들어가니 이것이 밀물이 된다)

曰潮曰汐十二相沖以卯酉爲首(밀물과 썰물은 십이상이 상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묘와 유에서 시작된다)

以其六數 (그것이 “6”의 수에 의하니) 故三兎六其六而三十六 (따라서 삼토는 6×6=36이요)

三龍減一六於三十六 (삼용은 36에서 1×6을 감한 30이요)

三蛇減二六於三十而十八故潮減 (삼사는 30에서 2×6을 감하여 18이 되니, 이렇게 조수가 줄어든다)

一馬九其六加於十八 (일마는 18에 9×6을 더한 72이요)

三羊八其六加於七十二 (삼양은 72에 8X6을 더한 120이여)

二猿七其六加於一百二十故潮加 (이원은 120에 7×6을 더하니 162 이렇게 조수가 증가한다)

卯辰巳陰包陽而氣縮 (묘,진,사에는 음이 양을 가리니 기가 축소되고)

午未申陽包陰而氣盈 (오,미,신에는 양이 음을 가리니 차오른다)

地之喘息 海之崛吸也 (땅이 헐떡임이요, 바다가 숨을 쉼이다)

※ 여기서 토,용,사,마,양,원은 각각 12간지 묘,진,사,오,미,신으로 만조가 이루어지는 시각을 표시한것임.

 

十五六分 十一成 水之進退 汐潮名有 (십오육에 나누이고, 십과 일에 이루어져, 나아가고 물러나니, 밀물, 썰물이라 이름하네)

時加減通噓吸 歸海入江 自濁清 (때를 따라 불어나고 줄어들며 호흡을 하여, 바다로 들어가고 강으로 흘러들어, 흐려지고 맑아지네)

歲庚申夏 聾窩 宋心斗書 (경신년 [1860년 철종 11년] 여름 농와 송심두 쓰다.)

監董 徐恒淳 權錫 (감동 서향순 권황)

해조문 좌측 암각서
해조문 좌측 암각서
밀물과 썰물의 높이를 표현 한듯
밀물과 썰물의 높이를 표현 한듯

 

해조문 좌측
해조문 좌측 전경

해조문 앞 풍경
해조문 앞 풍경
해조문 근처 바위 암각
해조문 근처 바위 암각서

옥녀봉에는 큰 바위들이 많이 보이며 특히 암각서도 많이 보였다. 아래 사진에 좌측은 글씨가 잘 안 보여 모르겠고, 우측은 영포대(影泡臺)라 쓰여있다.

영포대(影泡臺)

 

 

기독교 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교회(ㄱ자형 교회)
기독교 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교회(ㄱ자형 교회)

기독교 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교회(ㄱ자형 교회)

이곳은 1897년 폴링 선교사가 건축한 우리나라 최초 침례교회이다.

이 교회는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지어진 ‘ㄱ자형 교회’로써 당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 남녀유별(男女有別)의 엄격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1906년 침례회 최초의 총회를 열었으며, 당시 개설한 성경학교는 현재 대전 소재<침례신학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일제는 우리 민족정신 말살 정책으로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한다. 그래서 옥녀봉 중앙에 신사를 짓고 참배에 장애가 된 교회를 탄압한다. 그리하여 전치규 목사, 김재형 목사, 교인 32명을 원산헌병대로 끌고가 투옥시켰고, 전치규 목사는 옥중에서 순교(殉敎)를 당한다. 결국 교회는 일제의 탄압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증여형식으로 부지와 교회를 넘겨준다. 일제는 1943년 교회를 폐교 방화하고, 1943년 5월 14일 몰수한 이 부지를 신사당 부지로 등기 이전하였다.[교회 실외 배너]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예배지 안내판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예배지 안내판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 최초 예배지

▪문화재명 : 구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

▪지정별 : 향토유적 제38호 (2009년 11월 5일)

▪위 치 :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37번지

▪시 대 : 조선시대 말기

조선시대 말기 강경과 인천을 배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 집사의 가택(家宅)이다. 그는 1895년 미국 보스톤의 침례교단에서 파송한 파울링 선교사에게 침례(세례)를 받는다. 그 후 1896년 2월 9일(일요일)이곳에서 5명(파울링 선교사 내외, 아만다 가데린 선교사, 지병석 집사 내외)은 첫 주일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이곳은 침례교 국내 최초의 예배지가 되었고, 기독교 한국침례회가 태동한 곳이 되었다. 또한 <강경침례교회>의 시작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1896년~1899년까지 파울링 선교사가 거처하였는데, 자녀 3남 1녀 중에 장남 고든 파울링이 1899년 사망(死亡)하여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안장(安葬)하였다. 그 후 1900년 스테드만 선교사, 1901년~1935년 최초 한국 침례교단을 조직한 캐나다인 펜윅 선교사가 원산에서 강경을 왕래하며 별세(別世)하기 전까지 거처했던 곳이다.

강경산 소금문학관
강경산 소금문학관

소금문학관 SALT Literature Museum

강경산 소금 문학관은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에게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왜 이곳에 소금문학관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조선시대에 강경장은 평양·대구의 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렸다. 금강을 끼고 호남의 비옥한 평야가 함께 있고 내륙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시대에는 편리한 수운(水運)으로 큰 교역의 장소로 발전한 것이다. 강경포(江景浦)는 서해의 수산물이 모였고 바다와 가까워 소금을 이용한 염장·수산가공법이 유명해졌다. 옛 부둣가인 강경읍 염천동(鹽川洞) 일대에는 젓갈시장과 여러 대형 젓갈 백화점이 있고 전통 발효음식인 젓갈축제(논산 강경젓갈축제)로 강경만의 소금&젓갈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전주럭셔리크로우]

옥녀봉에서 본 강경읍
옥녀봉에서 본 강경읍에 젓갈가게 간판이 보인다.
강경읍 젓갈상회&#44; 백화점&#44; 가게
작은 젓갈가게는 훨씬 많다.
논산 강경산 소금문학관
내가 갔을 때는 문을 닫아 내부 사진이 없다.

소금문학관 루프탑에 금강을 배경으로 포토 포인트가 있다.

강경 포토 포인트
ㄱㅏㅇㄱㅕㅇ포토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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