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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충남 서천 장암진성(舒川 長巖鎭城)과 가볼 만한 곳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4.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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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4일 전주-금강하구둑-홍굴이해물짬뽕-장암진성(長巖鎭城)-남포읍성(藍浦邑城)-성주사지 &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을 하루 코스로 가족과 함께 떠났던 여행 이야기 중 오늘은 금강하구둑-홍굴이해물짬뽕-장암진성(長巖鎭城)을 포스팅으로 남겨봅니다. [부록_서천 장암진성 주변 가볼 만한 곳]

전주_호남제일문
전주_호남제일문

 

전주 출발-전주군산 산업도로 21번 국도를 탔다. 금강하구둑을 넘어가면 충청남도이다. 
참고로 위 사진에 나온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9) 선생의 서체입니다.

금강하구둑 군산 방향
금강하구둑 군산 방향
금강하구둑관광지
금강하구둑관광지

 

 

 

주차장 맞은편 홍굴이해물짬뽕
주차장 맞은편 홍굴이해물짬뽕

 

금강 하구둑관광지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주차를 하고 홍굴이해물짬뽕으로 들어갔다. 유원지 입구에 있어서 찾기가 쉽다.

홍굴이해물짱뽕
홍굴이해물짱뽕

 

홍굴이해물짬뽕 8,000원

 

홍굴이해물짬뽕 8,000원 홍합이 많이 들어 있어서 시원한 맛이 좋다. 국물은 일반 짬뽕과 비슷하다. 참고로 현재 2024년 가격을 보니 2,000원이 올라 10,000원이 찍혀 있다. 원래 홍굴이해물짬뽕집이 유명해진 것은 짬뽕이 아닌 해물쟁반짜장이 맛있어서 유명해진 것이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홍굴이해물짬뽕 탕수육
홍굴이해물짬뽕

홍굴이해물짬뽕 탕수육
탕수육 소12,000원

 

탕수육은 소스 및 튀김 모두 그냥 기본이다. 아래는 식당 내부 홀의 모습이다. 안쪽에 방으로 공간이 더 있다.

홍굴이해물짬뽕 식당 내부
홍굴이해물짬뽕 식당 내부

 

아래 사진은 군산 복성루 짬뽕입니다. 과거 군산에서 가장 많이 갔던 짬뽕집입니다.

전국 5대 짬뽕_군산 복성루 짬뽕
전국 5대 짬뽕_군산 복성루 짬뽕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장암진성(長巖鎭城)으로 출발합니다. 주소는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장암리 산1-1, 찾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장암 지하차도를 나와서 바로 표지판 아래에 주차를 하고 건너편 남문지 길로 탐방을 하시면 됩니다.

표지판 옆 공간에 주차
표지판 옆 공간에 주차

 

장암진성 표지판
장암진성 표지판

 

후망산(90m)_남서쪽에 장암진성이 있다
후망산(90m)_남서쪽에 장암진성이 있다

 

장암진성 안내판_남문지
장암진성 안내판_남문지

 

장암진성 長巖鎭城 / Jangamjinseong Fortress
충청남도 기념물 제97호 / Chungcheongnam-do Monument No. 97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 사진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 사진

 

장암진성은 해발 90.1m의 후망산 남서쪽 끝에 있는 평지성*이다. 중종 6년1511에 성을 쌓기 시작하였으나 바로 중지되었다가 중종 9년1514에 완성되었다.
장암진성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당나라가 백제를 침략할 때 가장 먼저 상륙한 곳(기벌포伎伐浦)이자 고려 말에는 최무선(崔茂宣), 1325~1395 장군왜적을 격파한 곳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후망산 뒤로 장항읍이 보인다
후망산 뒤로 장항읍이 보인다

 

돌로 쌓은 성벽의 둘레는 640m이고 동서 너비 190m, 남북 너비 100m로, 위에서 보았을 때 역사다리꼴에 가깝다. 서쪽 벽은 일제강점기 때 대부분 헐려 형태가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 남쪽과 북쪽에 각각 1개소의 문 터가 있고, 동남쪽과 북동쪽 모서리에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치(雉)가 있다. 동쪽 성벽 바깥쪽으로 5~7m 떨어진 곳에는 너비 4m, 깊이 1.2m 정도의 방어용 도랑인 해자(垓子)가 확인되었다. [장암진성 안내판]
*평지에 둘러쌓은 성.

장암진성의 성벽_발굴 보고서를 보고 직접 그렸다
장암진성의 성벽_발굴 보고서를 보고 직접 그렸다

 

현재 확인된 장암진성의 내부시설은 북문(옹성)과 남문, 건물지 4개소, 지상 건물지 14개소, 우물지 3개소, 해자시설 등이 남아있다. 원형 보존구간 성벽은 380m로 1,2,3구간으로 전체 성벽의 59.7%, 복원구간 성벽은 70m로 전체 성벽의 11%, 재현구간 성벽은 150m로 전체 성벽의 23.7%, 소실구간 성벽(도로구간)은 35.7m로 전체 성벽의 5.6% 이다. [서천 장암진성 남문지 개략보고서 참고]

남쪽 방향으로 바다 건너가 군산시
남쪽 방향으로 바다 건너가 군산시

 

서천 장암진성(舒川 長巖鎭城)에 대해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내용을 보며, 좀 더 깊게  알아보겠습니다. 

장암진성의 서쪽에 있는 전망산(56m)_옛 장항제련소
장암진성의 서쪽에 있는 전망산(56m)_옛 장항제련소

 
서천 장암진성 (舒川 長巖鎭城)
▪이칭: 서천포성  ▪소재지: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174번지  ▪충청남도 시도기념물(1995년 3월 6일 지정)
 
정의
조선 초기에, 충청남도 서천군 일대에 축조한 석축 읍성.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후망산(90m)_남서쪽에 장암진성이 있다
후망산(90m)_남서쪽에 장암진성이 있다

 

건립경위
서천 장암진성(舒川 長巖鎭城)은 충청남도 서천 서남단의 후망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나온 궁계산 끝자락에 있다. 둘레 약 660m의 이 성은 구릉과 평지를 역사다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석축식 평산성(平山城)*이다. 남벽과 북벽에는 각각 남문북문이 있다. 동벽에서 5~7m 벌어진 지점에는 폭 4m, 깊이 1.2m의 해자가 있다. 서벽은 벽체가 바다에 접하고 있어 바다를 천연적인 해자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 평산성(平山城) :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 고구려의 평양성, 백제의 사비성이 이에 속한다.

남문지 부근(장암지하차도 위)
남문지 부근(장암지하차도 위)

 

『삼국유사』에는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에 관리 성충이 기벌포(伎伐浦)* 방어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주석에는 기벌포 장암(長巖) · 손량(孫梁) · 지화포(只火浦) · 백강(白江)으로 적고 있다. 기벌포와 관련한 서술에 장암이 언급된 것은 지정학적으로 이 지역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그러나 백제가 장암 지역에 관방 시설을 구축하였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 기벌포(伎伐浦) :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일대의 옛 이름. 금강 하구 일대로, 백제 때 사비성을 지키던 중요한 관문이었다. 나당 전쟁 시기에 신라군과 당군 간에 기벌포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동남쪽 치성에서 본 동쪽방향의 장항읍
동남쪽 치성에서 본 동쪽방향의 장항읍

 

서천 장암진성이 초축된 시기『중종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종실록』에는 1511년(중종 6) 서천포에 성을 짓기 시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 서천군 관방조에 고려시대의 장암진(長巖鎭)수군만호(水軍萬戶)* 1인이 배치된 서천포영(舒川浦營)을 설치하였는데, 중종 9년(1514)에 둘레 1,311척(약 613m), 높이 9척(약 4m)의 규모로 석축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서천포성이 바로 서천 장암진성이다. 따라서 서천 장암진성은 1511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514년에 완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군만호(水軍萬戶) : 조선 시대에, 각 도에 있는 수군의 수영에 속한 종사품 외직 무관(外職武官) 벼슬. 수군우후의 아래이다.
원문> 둘레 1,311척을 m로 환산하면 (약 397m)높이 9척(약 2.7m)가 맞다. 원문 수정이 필요해 보임.

돌출 부위가 동남쪽 치성
돌출 부위가 동남쪽 치성

 

해동지도_서천포(세로원본)
해동지도_서천포(세로원본)

 

위 해동지도를 현재의 방위로 돌려 보면 아래 사진과 같다. 장암진성의 동쪽 산 줄기에 후망산(後望山)이 그려있고, 서쪽 성곽 옆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있고 그 앞으로 전망산(前望山)이 보인다. 또한 장암진성의 북문지남문지가 확인된다.

서천포_전망산前望山-장암진성-후망산後望山
서천포_전망산前望山-장암진성-후망산後望山

 

형태와 특징
18세기에 제작된 『해동지도』에서는 서천 장암진성의 둘레를 1,329척()*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의 규모가 『신증동국여지승람-1,311척』보다 크게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남문과 북문 옹성(甕城)**의 길이를 포함한 결과로 추정된다. 또한 『해동지도』에는 서천 장암진성에 민호(民戶:일반 백성들이 사는 집) 168호, 주사속오군 229명, 군량미 200석 3두, 군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1척이 소속되어 있다고 주기***되어 있다.

* 1,329척 : 약 402.7m [원문수정]
** 옹성(甕城) : 성과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원형이나 방형으로 둘러 쌓은 시설 [원문수정]
[백과사전의 주석 원문은 약650m로 나오는데, 1,329척을 m로 환산하면 402.7m가 나와 위 내용과 맞지 않다. 또한 해동지도의 장암진성의 둘레는 1,392척으로 써 있다. 주석 *, **모두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전주 럭셔리크로우]
***중요하거나 특별한 부분에 붉은 글씨로 표시하거나 기록하는 일. 또는 그렇게 한 것.
민호(民戶) 168호에 대해 개인 생각으로 힘들다고 보인다. 실제 장암진성이 훨씬 커야 가능하고, 현재 크기에서는 68호가 적당해 보인다. 하지만 장암진성과 그 주변까지를 말한다면 충분히 가능함.

#현재 한국민족대백과사전의 오류수정 요청이 모두 받아들여지고 수정되었음.

북쪽 방향 동쪽 성벽
북쪽 방향 동쪽 성벽

 

호서읍지(1871년)_서천포(舒川浦) 장암진(長巖鎭)
호서읍지(1871년)_서천포(舒川浦) 장암진(長巖鎭)

 

한편 『호서읍지』 장암진 지도에서는 성 내부에 동헌 겸 객사, 내아(內衙)*, 창고, 군기고, 사령청(司令廳)**, 삼문(三門)*** 등의 주요 건물이 있었고, 성의 서남부 지역에 다수의 민가民家 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내아(內衙) : 조선 시대에, 지방 관아에 있던 안채.
** 사령청(司令廳) : 사령이 모여 있던 곳.
*** 삼문(三門) : 대궐이나 관청 앞에 세운 세 문. 정문, 동협문, 서협문을 이른다.

※ 민가民家는 호서읍지 상단 중간에 성내성외(城內城外) 62호로 나와 있다. 이는 앞서 해동지도의 168호 내용에 68호가 적당하다는 내 생각과 근접한 수치이다. 

장암진성의 남 석벽_멀리 전망산( 前望山)이 보인다
장암진성의 남 석벽_멀리 전망산(前望山)이 보인다

 

발굴 경위 및 결과
서천 장암진성의 남벽과 서벽 일부가 군장공단 산업도로 개설 구간에 포함되어 1997년에 남문지 및 남벽에 대한 발굴 조사(發掘調査)*가 진행되었다. 이때 이미 파괴된 남벽에 대한 단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구간별로 축성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평지에 위치한 성벽의 기초부는 풍화암반토를 ‘L’자형으로 굴착한 뒤 마사토와 점토를 채운 후 기초석을 쌓은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산지에 세워진 성벽은 풍화암반토를 수평으로 자른 후 갈색의 사질점토(沙質粘土)**를 깔고 성벽을 올린 것을 확인하였다. 성토부(盛土部)에서는 고려시대 도기편과 조선시대 백자편이 수습되었다.

1997년 남문지 발굴조사
1997년 남문지 발굴조사
1997년 남문지 발굴조사
1997년 남문지 발굴조사
1997년 남문지 발굴조사 후 모습 [출처: 서천 장암진성 남문지 개략보고서]

*발굴조사 : 땅속에 묻혀 있는 것을 파내서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조사. 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 밝혀내기 위해 하는 조사.

**사질점토 : 세립분이 50%이상으로 모래 성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찰흙.

멋진 전망산은 1936년 일제에 의해 조선제련주식회사가 들어서 주변 환경이 중금속에 오염되었다
멋진 전망산은 1936년 일제에 의해 조선제련주식회사가 들어서 주변 환경이 중금속에 오염되었다

 

남문지에서는 초석과 문루(門樓)*의 기초 시설이 확인되었다. 이것은 홍예기석(虹霓基石)을 올리기 위한 초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남문의 전면부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 후면부는 평거식(平据式) 형태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토층으로 보아 남문지는 3차례 정도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문루(門樓) : 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

**초석 :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 놓은 돌.

전망산(前望山) 56m_옛 장항제련소의 굴뚝은 1979년에 만든 것
전망산(前望山) 56m_옛 장항제련소의 굴뚝은 1979년에 만든 것

 

2019년 장암진성 부지 내 발굴조사
2019년 장암진성 부지 내 발굴조사

 

2019년에는 서천 장항제련소 주변의 토양정화사업과 관련하여 장암진성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때 조사한 구간은 성 내부, 북문지에서 북동쪽 곡간부, 남동벽 회절 구간이다. 성 내부에서는 서벽과 함께 북문지, 건물지(建物址)* 5동, 지상 건물지 1기, 석열유구 4기, 소성유구(燒成遺構) 1기, 우물 3기, 기타 수혈 50기 등이 확인되었다. 북문지에서 북동쪽 곡간부에서는 제철유구(製鐵遺構) 2기, 수혈유구(竪穴遺構) 8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남동벽 회절 구간에서는 수혈유구 1기 등이 조사되었다.

*건물지(建物址) : 어떤 건물이 있던 터.

2019년 장암진성 부지 내 발굴조사 출토유물
2019년 장암진성 부지 내 발굴조사 출토유물


서천 장암진성의 북문지는 후대에 어지럽혀진 상태이다. 북문지 옹성(甕城)의 내벽은 점토, 석재, 기와를 섞은 기반다짐층 위에 소형 지대석을 놓아 면석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옹성의 외벽은 점토만 다진 후 대형 지대석을 놓은 뒤 면석을 올렸다. 북벽 체성(体城)부의 경우, 외벽은 기반암까지 굴착하여 다짐층을 조성한 뒤 지대석을 놓고 면석을 올리거나, 기반암 위에 잡석 지정(雜石地定)을 하고 면석을 바로 올리기도 하였다. 내벽은 여러 층의 뒤채움돌*을 쌓고 수평 또는 사선으로 뒤채움토를 채워 판축한 양상이 확인된다. 뒤채움토 중간에서 내부 석축 시설도 확인되었다.

*뒤채움돌 : 돌 쌓기 구조물의 뒷면을 채우는 돌. 자갈ㆍ잡석ㆍ깬돌 따위를 말하는데, 주로 메쌓기 공법에서 많이 이용된다.

서벽은 현재 도로 안쪽으로 옛날에는 해수가 들어왔다
서벽은 현재 도로 안쪽으로 옛날에는 해수가 들어왔다

 
서벽은 전체 범위는 알 수 있으나, 체성부의 상부가 유실되어 지대석과 뒤채움돌만 확인할 수 있었다. 서벽은 북벽에 비해 비교적 큰 지대석을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서벽은 해수가 유입되는 지점이라 말뚝 지정, 잡석 지정을 통해 지반을 강화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서천 장암진성의 성벽은 대체로 대지 조성, 기저부 굴착, 말뚝 혹은 잡석 지정, 지대석 조성, 면석 축조시 뒷채움석 설치, 뒷채움토 성토의 과정으로 축조되었다.

군산 점방산(占方山)136m에서 본 전망산과 후망산
군산 점방산(占方山)136m에서 본 전망산과 후망산

 

장암진성 내부에서는 다수의 건물지 유구가 확인되었다. 성벽에서는 고려시대 도기가 수습되었으나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은 16세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사료의 내용과 성의 초축 시기는 대체로 일치하지만, 고려시대에 서천 장암진성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성 내부에서는 건물지가 소실된 후에 대지를 다시 조성하여 17~18세기도 성을 운영한 양상이 보인다.

금란도와 전망산 굴뚝이 보인다
금란도와 전망산 굴뚝이 보인다

 

의의 및 평가
서천 장암진성의 축성법은 조선시대 초기 읍성의 축성법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인근에 있는 서천과 서해안 지역의 읍성에 비해 기반의 조성이나 면석의 치석이 간략화된 특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천 장암진성은 축성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해 바다가 햇빛에 반짝인다
서해 바다가 햇빛에 반짝인다

 

장암진성은 고려시대에 부르던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서천포읍성서천포진성이라 불렸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중종 9년(1514)에 완성되었다고 확인된다. 또한  장암진성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당나라가 백제를 침략할 때 가장 먼저 상륙한 곳(기벌포)이자 고려 말 최무선(崔茂宣, 1325~1395) 장군이 왜적을 격파한 곳(진포대첩)으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바다가 보이는 장암진성의 완전한 복원을 기대해 본다.

 

[서천 가볼 만한 곳 / 장암진성 주변 볼 거리]

전망산 뒤로 장항송림 산림욕장이 보인다
전망산 뒤로 장항송림산림욕장이 보인다

 

장항송림산림욕장과 스카이워크_서천 9경 중 8경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 산65

사시사철 울창한 소나무가 1.5km의 해안을 따라 이어져 있어 고즈넉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송림산림욕장의 산책길에는 다양한 꽃이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8월~9월에 만개한 보랏빛 맥문동 꽃은 운치를 더한다. 높이 15m, 길이 250m의 스카이워크에서는 해송림을 발아래 두고 거닐며 서천 바다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서해의 노을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선사 한다. [글 출처: 서천군청 누리집_관광]

장항스카이워크
장항스카이워크

장항스카이타워
장항스카이타워

장항스카이워크-장항송림산림욕장과 갯벌-전망산
장항스카이워크-장항송림산림욕장과 갯벌-전망산

 

국립생태원 에코리움
국립생태원 에코리움

국립생태원
국립생태원 매표소 입구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_서천 9경 중 6경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금강로 1210 국립생태원

▪주소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산로101번길 75 해양생물자원관

국립생태원은 현지생태계를 그대로 재현, 세계 5대 기후대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각 온실에는 기후대별 어류, 파충류, 양서류, 조류 등 2,400여종의 동식물이 살아 숨 쉬고 있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재미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해양생물다양성, 미래해양산업, 해양주제영상, 4D영상 및 기획전시 등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전시관을 갖추고 있으며, ‘씨드뱅크’에는 5,200개의 표본병으로 우리나라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연출하고 있다. [글 출처: 서천군청 누리집_관광]

국립해양생물자원관_드론촬영
국립해양생물자원관_드론촬영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내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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