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오후 5시에 출발해 김제 망해사로 운전대를 잡았다. 생각보다 길이 좁아 멀게 느껴진다.
전주 군산 간 산업도로를 택했다. 공덕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어느덧 만경리에 가까워지자 큰 저수지가 나왔다. 아래 사진은 김제 능제저수지다.
잠깐 쉬면서 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 진봉면에 들어올 때 즈음 길 옆으로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논이 나온다.
이날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해가 아직도 한참 남아있지만 꽤 어두운 편이다. 드디어 이정표가 나오고 목적지에 가까워진다. 망해사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들어서 조금만 올라가면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바로 앞에는 이정표가 여럿 있다. 위로 직진하면 전망대가 나오고 우측 아래로 내려가면 바로 망해사다.
여기에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왼편에 두곡서원이 나온다. 그리고 위로 직진하면 바로 전망대가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는 망해사이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 같아 두곡서원은 가지 않았다. 그래도 구독자를 위해 안내판의 글씨를 옮겨 적는다.
두곡서원(杜谷書院)은 성리학자 강원기(康元紀)[1423~1498]의 거처가 있던 곳으로, 배향되어 있는 사람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봉호당 문헌공 강원기, 난계 함부림(咸傳霖) 등이다. 성리학자 강원기는 야은(冶隱)길재(吉再), 정몽주와 더불어 경전을 읽어 유풍(儒風)을 크게 진작시켰다. 그가 경원과 은성 두 고을의 수령으로 있을 때 충성과 효도의 길을 가르쳐 주는 「이존록*」 이라는 책을 만들어 집집마다 나누어 주기도 했다.
태조 때 좌부승지에 제수되었으나, 그 후 간청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만경현(지금의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정착해서 이곳의 세 가지 폐단**을 고쳐주어 주민들의 고충을 풀게 되었다. 그 뒤 지방 사람들은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두곡서원을 세우고 배향하였다. 그는 후세에 『봉호집(鳳湖集)***』이라는 유집을 남겼다.
다음은 위 본문을 공부한 내용이다. [자료 출처: 김제시 홈페이지]
*이존록 : 충(忠), 효(孝), 도(度)를 중시한 서책
**세 가지 폐단(삼폐) : 고려 때부터 세 가지 큰 폐단이 있어 백성들이 크게 곤욕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첫째, 고려 때부터 시행하여 군사상 통신 역할을 했던 봉수대의 문제였다. 만경강 입구 황해에 반도처럼 뻗어 있는 진봉산맥의 맨 끝 길곶(吉串)이 있었던 곳이다. 이 필꽃마을 뒷산이 바로 봉화로, 여기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운영상 필요한 경비를 각출해야 하는 재정상의 피해를 입어야 했다. 둘째, '공마(貢馬)'라 하여 매년 300필의 말을 길러서 나라에 바쳐야 하는 문제였다. 현재는 농경지이지만 옛날에는 그곳이(지금 행정구역으로 진봉면 남상, 남하마을 목야지였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300필의 말을 길러서 나라에 바치는데 그 어려움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인력 동원 문제며 말을 구입하는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셋째, '공려' 라 하여 매년 6천 편의 숫돌을 만들어 나라에 바쳐야 하는 문제였다. 만경강에 접하고 있는 석소(石所) 뒷산에서 매년 숫돌 6,000편을 다듬어 만든 제품을 나라에 바치는 일이다. 이것 역시 인력 동원과 재정상 문제 등으로 백성들은 오랫동안 고통을 겪고 살아야 했다. 더욱 곤란을 겪은 것은 행정구역이 동일하다는데 있다. 이 세 가지 모두 진봉면 심포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연중 쉴 새 없이 노역과 재정의 부담을 안아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고통을 받아오던 주민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성리학자 강원기에 의해 안았던 짐을 풀게 되었다.
***봉호집(鳳湖集) : '봉호집'이라 표제한 단권 칠언사율(七言四律)로 된 '등영락와관해시' 등 13편의 시가 수록된 서책
자~ 다시 오늘의 목적지 망해사(望海寺)를 향해 출발!~
망해사로 발걸음을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숲의 빼곡한 나무들이 시야를 터주는 때가 나온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만경강과 습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눈 앞으로 봉화산 숲길안내판과 뒤로는 망해사 안내판과 부도전이 있다.
또 이런 안내판을 놓칠 내가 아니다. 망해사에 대해 아는 건 바다 근처에 있다는 것과 낙조가 아름답다는 정보뿐이니...
망해사(望海寺)
만경강 하류 서해에 접하여 멀리 고군산 열도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는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초라한 편이다.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이곳에 와 사찰을 지어 수도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중국 당(唐)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 조선시대인 1589년(선조 22) 진묵대사가 망해사 낙서전(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8호)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망해사 낙서전은 1933년과 1977년에 중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진묵대사가 망해사에 계실 때는 바닷가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어 해산물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하루는 굴을 따서 먹으려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왜 스님이 육식을 하느냐며 시비를 걸자 스님은 “이것은 굴이 아니라 석화(바위에 핀 꽃)다” 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석화의 어원이 바로 진묵대사와 얽혀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ㄱ자형의 이 건물은 팔작지붕이며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뒤에 근래에 만든 종이 걸려 있다. 진봉산 고개 넘어 깎은 듯이 세워진 기암괴석의 벼랑 위에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 있어 이름 그대로 망해사이다.
망해사(望海寺) 역사를 읽어 보니 "망해사, 진묵대사, 석화"로 연결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냐고 할 것 같다! 그리고 완주 송광사 편을 잘 보았다면 진묵대사가 기억날 것이다.
다시 앞으로 조금 걸어 가 넓은 만경강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만경강과 소나무, 담장을 보았다면 바로 왼편 시야에 절의 모습이 보인다.
아래 사진 가운데 한자의 독음은(聽潮軒) 들을청 · 조수조 · 집헌으로 청조헌이라 읽는다. 즉 파도소리를 듣는 집이다!
이렇게 사진에 나온 건물이 망해사의 전부다. 또한 다른 사찰처럼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이 없다!
이전 망해사(望海寺)의 역사이야기에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초라한 편이다." 라는 말이 와닿은 순간이다.
이곳의 공포(栱包)는 불국사 대웅전의 공포와 비슷한 용두가 있다.
삼성각(三聖閣)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찍은 우물의 모습이다.
삼성각(三聖閣)을 보고 다시 계단으로 내려와 만경강이 있는 종루 쪽을 보면 아래의 사진의 모습이 나온다.
아래 사진은 종루(종각)에 있는 범종으로 중간 부위(비천상)와 윗부분 용통과, 용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까지 약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으니 낙서전(樂西殿)을 살펴보자.
낙서전(樂西殿)은 문이 잠겨 있어 가까이 가서 볼 수 없었다. 옆에 낙서전과 팽나무 안내판을 살펴본다.
망해사(望海寺)의 팽나무 | 도지정 기념물 제14호 /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004 / 수량: 2주 / 지정일: 2001년 12월 27일
망해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부설거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낙서전(樂西殿) 전면에 서있는 팽나무는 선조 22년(1589년) 진묵대사가 낙서전(樂西殿)을 창건하고 그 기념으로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두 그루의 망해사 팽나무는 문화재인 낙서전 그리고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와 더불어 망해사의 명물이다.
망해사가 처음 창건되고 그 이후 약 900년이 넘어 팽나무가 심어졌다고 하니 정말... 망해사는 대단한 역사를 품고 있었다!
망해사 낙서전(望海寺 樂西殿)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8호 /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이 건물은 조선 선조 22년(1589)에 진묵스님이 처음 지은 것으로, 1933년과 1977년에 고쳐지었다. 망해사는 만경강 하류 진봉산 기슭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자리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부설 스님이 처음 세웠다고 하는데, 그때의 절은 땅이 무너져 바다에 잠겨버렸다고 한다.
이 낙서전은 평면이 (ㄱ)자 형으로, 건물 한 켠에는 마루를 놓고 그 위에 근래에 만든 종을 걸었다. 다른 켠에는 방과 부엌이 딸려있어, 건물이 법당 겸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모양이 불규칙한 나무 기둥으로 세워 자연미를 짙게 풍긴다.
이렇게 망해사를 다 둘러보았다. 참 다행인 건, 완주 송광사 편에서 힘들었는데, 망해사는 그나마 쉬웠다!~ 휴~^^::
이제 노을을 보러 GO GO !~
망해사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다시 나오면 북쪽으로 산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80m만 가면 진봉산(進鳳山_해발:73.2m) 전망대가 나온다.
이제부터는 포토타임이다.
위 사진의 좌측 돌출한 곳이 심포항이다. 구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 ×80배 줌인해봤다.
일반 사진으로는 구획을 여럿 나눠 찍는 게 한계가 있어 파노라마 컷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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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나는가? 싶어 전망대에서 내려왔고, 다시 언덕위에서 아쉬움에 보고 있는데, 서서히 빨간 태양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전망대로 올라가 연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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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아지고, 복잡한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나는 바다를 찾는다. 힐링이 필요하다면 이곳 망해사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은 어떨까? 새만금 동서도로(국도12호선) 신시도~심포항 20.4㎞(폭 20m, 왕복 4차로) 도로에 차가 많아지는 날! 이곳 망해사와 전망대, 두곡서원에도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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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망해사와 전망대에서 다시금 멋진 낙조(落照)를 보고 싶은 전주 럭셔리크로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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