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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럭셔리크로우의 전주 기행
전라도

익산 세계유산센터_고도 한눈 애愛

by 전주 럭셔리크로우 202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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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럭셔리크로우와 함께 떠날 전주 근교 여행지는 백제왕궁(왕궁리유적), 제석사지, 고도리석조여래입상을 거쳐 미륵사지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익산 세계유산센터입니다. 건물의 첫 삽을 뜨던 날부터 완공되기까지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 이제야 그 기록을 블로그에 남겨봅니다.

고도 한눈 愛 익산 세계유산센터
고도 한눈 愛 익산 세계유산센터

 

익산 세계유산센터
익산 세계유산센터

 

고도 한눈 愛 익산 세계유산센터
고도 한눈 愛 익산 세계유산센터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방문객센터로 카페 362가 있습니다. 방문객센터 측면에 익산 세계유산센터 건립부지 내 우물 유적을 살펴보고, 고도지원관과 세계유산관으로 향했습니다.

익산세계유산센터 건립부지 내 우물 유적
익산세계유산센터 건립부지 내 우물 유적

 

우물 유적
우물 유적

 

건립부지 내 우물 유적

이 우물은 세계유산탐방거점센터 건립을 위한 매장유산 발굴조사 중 확인되어 현재의 위치로 이전복원 하였다. 평면형태는 원형에 가깝고 단면은 상부가 넓고 하부로 갈수록 좁아진다. 잘 다듬은 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지표면에서 2.5m이상 기반층을 굴광하여 수직에 가깝게 석재를 쌓았다. 내부에서 고려시대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우물조사전_우물 조사 완료 사진
우물조사전_우물 조사 완료 사진

 

익산세계유산센터 관람안내
익산세계유산센터 관람안내

 

익산세계유산센터 관람안내(Visiting Information)

▪관람료 무료 Admission fee free

▪관람시간 opening hours : 화-일 TUE-SUN 09:00-18:00

▪휴관일 Closed days : 1월 1일, 추석, 설날, 매주 월요일

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하고 공휴일 다음 첫 번째 평일에 대체휴관

-January 1st, Korean Thanksgiving Day, Korean New Year's Day, Every Monday. If Monday is a public holiday, it opens, but it is closed on the first weekday.

▪유의사항 관람예절을 지켜주세요

-외부음식 반입금지 / 건물전체 흡연금지 / 센터 내 뛰지마세요 / 큰소리 내지마세요 / 반려동물 출입금지 / 쓰레기 버리지마세요

고도 한눈愛 익산세계유산센터(Iksan World Heritage Center)

고도지원관
고도지원관

 

세계유산관으로 가기 전에 좌측에 보이는 고도지원관부터 관람했습니다. 

고도지원관 1층

 

고도지원관 1층에는 (사)익산고도육성주민협의회 사무국이 있고, 각종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었다.카달로그의 소개도 익산 고도육성·세계유산 보전관리주민협의회 및 고도 관련업무, 각종 세미나 등을 지원한다고 나온다. 2층은 세미나실이 있습니다.

고도지원관 2층
고도지원관 2층

 

2층 세미나실 통로를 통해 세계유산관으로 갈 수 있었다. 익산과 관련된 전시액자가 보인다.

고도 백제 관련 전시품
익산 관련 전시품_미륵사지석탑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구 유물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구 유물

 

세계유산관 2층
세계유산관 2층
세계유산관 2층_열람실
세계유산관 2층_열람실

 

세계유산관은 분산된 익산의 세계유산 및 백제왕도 핵심 유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에 맞게 2층은 열람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옥상 전망대(Rooftop)도 있습니다.

세계유산관 2층_옥상 전망대
세계유산관 2층_열람실

세계유산관 2층_고도익산과 관련된 책들이 보인다
세계유산관 2층_고도익산과 관련된 책들이 보인다

 

세계유산관 2층을 관람하고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세계유산관 1층_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관 1층_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이란?

유산이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오늘날 그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 중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갖고 있는 부동산 유산을 세계유산이라 칭한다. 즉, 인간이 만든 건축 혹은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생물학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현장과 같이 보존이 필요한 장소를 지칭한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보호·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약칭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였다.

세계유산이란?

백제역사유적지구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대한민국에서 열두 번 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대한민국 중‧서부에 있는 백제의 왕도(王都)와 밀접하게 연관된 유적들로 주변국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문화적 발전이 절정에 이른 백제 후기(475~660)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웅진(공주)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인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 사비(부여)시기 왕도와 관련된 유적인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정림사지·능산리고분군·부여 나성 사비시기 두 번째 수도인 금마저(익산)에 조성된 백제왕궁(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적들은 백제가 중국으로부터 도시계획, 건축기술, 예술, 종교 등을 받아들여 더욱 발전시켜 백제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룩한 증거를 보여주며, 발전된 백제의 문화를 일본과 동아시아에 전해주었음을 증명하는 유산이다.

익산 세계유산센터 주변 유적지
익산 세계유산센터 주변 유적지

 

고도古都

고도古都란 ‘옛 고古’와 ‘도읍 도都’가 합쳐진 단어로서 직역하면 ‘오래된 수도’ 혹은 ‘옛 수도’를 뜻한다. 고대 수도首都는 왕이 정사를 보는 왕궁, 종교시설인 사찰, 왕의 무덤인 왕릉, 수도를 방어하는 방어시설과 같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과거 우리 민족의 정치·문화의 중심지이다. 2004년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제정으로 익산을 비롯한 공주·부여·경주가 백제百濟 와 신라新羅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4대 고도로 지정되었고, 2024년 새롭게 대가야大伽倻 고령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고도익산 古都益山
고도익산 古都益山

 

백제 숨결이 깃든 고도익산(古都益山)

익산益山은 공주·부여와 함께 백제왕도이다. 고대 유일하게 규모와 형태가 확인된 백제왕궁인 왕궁리유적, 백제의 익산 천도 비밀을 간직한 왕실사찰 제석사지, 백제 무왕과 선화부인의 설화가 깃든 국가사찰 미륵사지오금산성, 무왕의 능인 익산쌍릉(익산왕릉원) 등 백제왕도 핵심유적들이 금마와 왕궁면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백제왕궁(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는 공주, 부여 중요유적들과 함께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익산의 문화유산을 알릴 예정이다.

세계유산관 1층 전시관
세계유산관 1층 전시관
세계유산도시 익산
세계유산도시 익산

 

백제의 전륜성왕, 익산에 잠들다

King Seong of Baekje Laid to Rest in Iksan

익산 왕릉원_익산쌍릉
익산 왕릉원_익산쌍릉

 

무왕의 위상을 보여주는 유산, 익산 왕릉원

Legacy of the Power and Authority of King Mu. Royal Tomb Park, Iksan

 

익산 왕릉원_다시 찾은 익산 쌍릉(무왕릉)

한여름 다시 마주하게 될지 몰랐다. 가장 많이 가는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를 연결하는 구간에 백제 무왕과 관련된 유적지가 밀집해 있다. 한여름 유적지 주차장 앞에서 선홍빛 배롱나무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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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쌍릉 ==>(현재 정식 명칭은 익산 왕릉원이다.)

익산시 석왕동산 55

익산에는 남북으로 두 개의 큰 봉분을 가져 익산쌍둥이라 불리는 무덤이 위치하고 있다. 익산쌍릉 무덤의 주인은 수백년간 후대인의 큰 관심 대상이 되었다. <고려사에는 “후조선 무강왕과 비의 능으로 속칭 말통 대왕릉이라고 한다. 일설에는 백제 무왕武王이라고도 하는데,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서동이다”라고 쓰여있다. 반면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충숙왕 16년(1329) 도적이 금마군에 있는 마한의 조상 호강왕虎康王의 능을 도굴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쓰인 조선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당대 지식인들은 쌍릉은 누구의 무덤이며 어느 시기의 무덤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첫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고 쌍릉 내부의 석실이 부여 능산리의 왕릉과 비교할 수 있는 백제 왕족의 무덤임을 확인하였다. 또한, 최근 100년만에 실시된 쌍릉의 조사 결과, 봉분은 흙을 다져서 만드는 판축기법을 활용하여 만들었으며 쌍릉의 대왕릉 내부에서 인골이 담겨있는 목함을 확인하였다. 인골의 분석결과 키 161~170cm의 620-659년 사망한 50대 이상 남성으로 확인되면서 백제 무왕의 무덤임 가능성이 커졌다.

백제왕도 금마저를 방어하다
백제왕도 금마저를 방어하다

 

백제왕도 금마저를 방어하다

Defending Geummajeo, the Capital of Baekje

왕궁을 지키기 위한 방어성벽_오금산성
왕궁을 지키기 위한 방어성벽_오금산성

 

왕궁을 지키기 위한 방어성벽

A Fortress Wall to Safeguard the Royal Palace

 

오금산성, 익산토성, 보덕성_다섯 덩어리의 황금이 나온 오금산

2023년 9월 03일 익산 왕궁리유적과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을 둘러보고 익산토성(오금산성, 보덕성)으로 향했다. 오늘의 포스팅에 나오는 사진은 모두 전주 럭셔리크로우의 사진입니다. 익산토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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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산성 ==>(기존 익산토성에서 오금산성으로 변경됨.)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산 52-2

왕궁리유적으로부터 서북쪽 2.5km에 오금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오금산성은 백제 무왕이 다섯 덩어리의 금을 얻었다는 전설이 있는 오금산五金山이 있다고 하여 ‘오금산성五金山城’이라 불린다. 오금산성을 오르다 보면 고풍스러우면서 반듯하게 쌓여있는 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돌벽은 봉우리와 남쪽 골짜기 약 690m를 둘러싸고 있는 백제때 쌓은 오금산성의 성벽이다. 성벽을 쌓았던 초기에는 흙을 기반으로 한 토성으로 만들어졌으나 나중에 돌로 만든 석성으로 축조되었다. 상쾌한 바람을 맞이하면서 이곳에 오르면 성을 쌓은 목적이 왕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듯 익산의 백제왕궁(왕궁리유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금산성 내부에서는 왕궁과 관련된 시설에서만 확인되는 ‘수부首部’도장이 찍힌 기와가 확인되어 익산 왕궁리유적과 연계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오금산성의 집수시설 안에서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 공산성, 부여 관북리유적에 이어 세번째로 백제의 칠피갑옷조각 그리고 ‘정사丁巳 금재식今在食’이라고 새겨진 봉축편이 확인되면서 7세기대의 익산 경영을 증명함과 동시에 오금산성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금마저의 성산을 지키다_미륵산성
금마저의 성산을 지키다_미륵산성

 

금마저의 성산을 지키다

Protecting the Sacred Mountain of Geummajeo

 

익산 미륵산성 益山 彌勒山城(기준성.용화산성)은 포곡식산성이다

익산 미륵산 치마바위를 보고 다시 차를 돌려 남동쪽 방향으로 이동해 미륵산성(기준성)으로 떠나봅니다. 然臣以爲吾東方城郭之國也。 우리 동방은 성곽의 나라입니다....則其城郭之備, 不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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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성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산 124-1

보살의 몸으로 도솔천에서 머물다가 미래에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가 미륵彌勒이다. 익산에는 미래의 부처가 내려와 살게 될 미륵사가 있고 이를 수호하듯 내려다보고 있는 미륵산이 위치하고 있다. 미륵산은 그 입지로 보아 백제 당시 국가적 의례 공간으로서 일종의 종교적 성산聖山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륵산성은 이러한 산 최정상부와 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과 그 사이의 계곡부를 감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날씨가 맑은 날 산성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멀리 논산·부여까지 남쪽으로는 만경강, 삼례, 전주까지 한눈에 보여 미륵산을 중심으로 금마를 포함한 인근 지역을 넓게 조망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미륵산성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고려사髙麗史」,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와유록臥遊錄」 등 여러 문헌에 의하면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익산으로 내려와 미륵산성을 만들었다고 하여 ‘기준성箕準城’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신검을 공격해 이라 항복을 받았다는 마성이 미륵산성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미륵산성 발굴결과 다수의 백제 유물이 확인되었으며 통일신라, 고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백성의 평안과 안전을 지키다_금마도토성
백성의 평안과 안전을 지키다_금마도토성

 

백성의 평안과 안전을 지키다

Maintaining Peace and Safety for the People

 

익산 금마도토성(金馬都土城)_백제의 치소성, 성황산성, 도토성, 저토성

오늘 전주 럭셔리크로우와 함께 떠날 여행지는 백제왕궁(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를 오가는 길목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금마도토성(金馬都土城)입니다.  조선시대 편찬한 1872년 지방도에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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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도토성

익산시 금마면 아리랑로9-22

백제왕궁(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를 오가는 길목 사이 금마도토성이 자리잡고 있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활개치는 봄이 되면 아름다운 벚꽃이 입구에서 반겨주는 이곳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제시대에 쌓은 토성土城 이다.

발굴결과 금마도토성의 성벽에서는 익산 백제유적인 익산쌍릉, 제석사지, 미륵사지를 조성하면서 사용된 흙을 다지는 판축기술이 확인된다. 또한 ‘금마저金馬渚’라 쓰인 기와와 백제시대 사용된 기와, 토기 등이 확인되어 백제 때 쌓은 성으로 추정한다. 일부 성벽에서는 돌로 쌓은 흔적이 확인되어 백제 이후 성의 개축改築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금마도토성 이름의 유래는 ‘금마저金馬渚’의 ‘물가 저渚’를 ‘돼지 저猪’로 한문을 잘못 옮기면서 현재 토성의 이름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금마도토성은 조선시대 돌림병을 예방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성황단이 있어 성황산성으로도 불리었다.

 

7세기 백제 불교미술의 정수, 꽃피우다

The Pinnacle of Buddhist Art in 7th Century Baekje

연동리석조여래좌상
연동리석조여래좌상

 

백제 최대의 환조석불

The Largest Single-Piece Three-Dimensional-Buddha Sculpture of Baekje

 

익산 미륵산 석불사와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오늘 저와 함께 떠날 곳은 익산 한국불교 화엄종 석불사입니다. 익산 석불사(石佛寺)는 2022년 7월 25일 찍은 사진을 가지고 포스팅 합니다. 이 곳 석불사에는 불신에 광배와 대좌를 갖춘 현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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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리석조여래좌상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

미륵사지에서 북서방향으로 3km 떨어진 곳에 하나의 큰 돌을 깎아 만든 최대 규모의 환조석불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당한 어깨, 균형 잡힌 몸매, 양 어깨를 감싼 옷자락이 길게 내려와 대좌를 덮는 모습을 한 연동리석조여래좌상은 백제시대 최고의 불상중 하나이다. 그런데 연동리석조여래좌상을 살펴보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의 머리를 최근에 다시 만들어 붙이면서 생긴 익살스러운 얼굴과 백제의 불상의 고풍스러운 불상표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연동리석조여래좌상에서 눈여겨볼 것은 기이한 형태의 머리보다도 부처님의 광채를 형상화한 광배이다. 이 광배는 일본 호류지(法隆寺) 금동석가삼존불상(623년)의 광배와 매우 흡사하여 7세기대에 불상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광배에서 태극문양처럼 보이는 불꽃문양*은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에서도 나타나는 문양으로 연동리석조여래좌상의 광배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현재는 익살스러운 머리가 불상에 자리잡고 있지만 섬세한 옷주름의 표현과 불상 곳곳에서 발견되는 백제 미술의 정수를 통해 7세기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거대한 불상의 미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훼룡문계 무늬: 연동리석조여래좌상 광배의 중앙에는 세 겹의 동그라미 속에 16개의 연꽃무늬를 조각했고 바깥부분에 보이는 불꽃무늬를 백제시대 훼룡문계虺龍文系 무늬라 한다. [전주럭셔리크로우]

 

백제의 익산 천도 비밀을 간직하다

Iksan, Bearing the Secret Behind the Transfer of the Capital of Baekje

왕권 강화의 상징, 내불당 제석사
왕권 강화의 상징, 내불당 제석사

 

왕권 강화의 상징, 내불당 제석사

Jeseoksa Temple, the Symbol of- Strengthening of Royal Authority

 

익산 제석사지(益山 帝釋寺址) 및 폐기장(백제 무왕과의 연결고리)

익산 제석사지를 36도가 넘어가는 7월의 어느 날 다녀오게 되었다. 익산 제석사지(益山 帝釋寺址)는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로 1998년 5월 12일 사적 405호로 지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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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제석사지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

익산 왕궁리유적에서 동쪽으로 1km가량 떨어진 곳에 제석사지가 위치하고 있다. <관세음응험기>에 따르면 ‘백제 무왕이 익산 지역으로 천도하여 새롭게 정사를 지어 경영하였으나 639년 큰 화재로 제석정사가 불타고 탑의 심초석에서 사리병을 비롯한 사리장엄구가 그대로 남아 새로 사찰을 지어 사리를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발굴 조사 결과 백제 최대규모의 1탑 1금당 가람이 확인 되었으며, 제석사(帝釋寺)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되면서 이곳이 제석사임이 밝혀졌다. 또한, 제석사지 인근에서는 불에 탄 소조상 조각을 비롯한 백제 기와들이 묻힌 폐기장이 발견되어 1,400년 전 백제 무왕이 경영한 사찰임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제석사는 이름에서 유추하면 부처님이 살고 있는 수미산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천을 모시던 사찰이다. 왕권 강화에 기여한 불교의 수호신을 모시는 이곳은 백제 왕실의 번창과 안녕을 위해 지어진 사찰로 추정된다. 현재 제석사지를 방문하면 과거 거대한 목탑 아래 불가(佛家)의 보물을 품에 안고 있던 심초석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 가람배치
익산 미륵사지 가람배치

 

익산 미륵사지 가람배치

가람(伽藍, 산스크리트어: 상가라마)은 승려가 살면서 수행하는 청정한 장소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사찰은 탑과 금당 그 밖의 여러 부속건물과 이루어져 하나의 큰 가람을 이룬다. 가람의 건물 배치는 나라와 종파에 따라 다르며 삼국시대의 탑과 금당의 배치 구도에 따라 독특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미륵사지는 당시 삼국의 사찰에서 보이지 않는 가람배치를 가지고 있다. 백제에서도 처음으로 확인된 이 구조는 1탑 1금당식 가람이 나란히 3개가 배치된 3탑 3금당이라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보인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에 드신 후 56억 7천만 년 후에 온다는 미륵이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원한다는 미륵신앙을 가람에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설계단계부터 미륵불국토를 염원하는 백제인의 꿈과 무왕의 통치이념을 가람배치에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륵의 땅 금마저, 태평성대를 염원하다

Geummajeo, the Land of Mireuk (Maitreya), Longing for Reign of Peace

백제인의 영원한 불국토
백제인의 영원한 불국토

 

백제인의 영원한 불국토

The Eternal Land of Buddhism of the Baekje People

 

2024 익산 미륵사지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익산 유적지 여행을 좋아하는 제가 자주 가는 곳이 왕궁리유적 & 백제왕궁박물관-익산제석사시-고도리석조여래입상-서동생가터-익산쌍릉-익산오금산성-금마도토성-마한박물관-국립익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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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미륵사지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 세계유산 / World Heritage Site

백제 무왕의 기록을 살펴보면 익산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많이 내려온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서동, 즉 무왕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에 있는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 절을 세우자는 왕비의 간청에 따라 무왕은 지명법사의 신통력을 빌려 하룻밤에 산을 헐어서 못을 메웠고 그 위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미륵사지 발굴 결과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는데, 미륵사는 늪지 위에 세워졌으며 그날의 미륵삼존을 형상화하듯 탑과 금당을 기본 단위로 하는 세 개의 예배 공간이 배치되어 오직 익산 미륵사에서만 ‘3원 가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9년 서쪽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백제 공예의 정수인 미륵사지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중 사리봉영기에는 석탑의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는 ‘기해년己亥年(639년)’이 적혀있어 미륵사지 석탑이 백제 무왕대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는 서쪽의 석탑만이 자리를 지키며 고대 동아시아 최대 사찰의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아득히 먼 1,400년 전 백제 사람들이 담은 큰 염원은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하나로 미륵사지가 등재되면서 현재까지도 계승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_전시관 사진
익산 미륵사지_전시관 사진

 

익산세계유산센터_세계유산관 1층 전시관
익산세계유산센터_세계유산관 1층 전시관

 

고도 한눈 愛 익산세계유산센터
고도 한눈 愛 익산세계유산센터

 

용의 아들, 무왕 태어나다

The Birth of King Mu, a Dragon's Son

용의 아들, 무왕 태어나다
용의 아들, 무왕 태어나다

 

전설의 시작

The Beginning of a Legend

 

익산 백제 무왕의 흔적과 서동생가터(마룡지, 오금산)

지난 7월 8일에 백제 무왕 때 세운 익산 제석사지를 포스팅했었습니다. 오늘은 백제 무왕의 흔적을 따라 무왕이 살았던 생가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백제 무왕이 서동이다, 아니다를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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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지와 서동생가터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383-13

과거부터 용龍은 신성한 상상의 동물로서 제왕과 관련된 다양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중 직접 용의 아들로 표현되는 인물로 백제의 무왕武王이 있다.

《삼국유사》 기이편 무왕조에 따르면 ‘연못가에 홀로 집을 짓고 살던 여인이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해 서동을 낳았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천년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연못이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에 위치하고 있는 ‘마룡지馬龍池’이다.

이른 여름 아름다운 홍련紅蓮이 수려하게 피는 마룡지 주변에서는 백제왕궁인 왕궁리유적과 동일한 기와와 토기 그리고 원형 초석 등이 확인되면서 ‘서동생가터’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서동역사공원 조성지 발굴조사에서는 내부의 더운 공기를 외부로 배출하는 통기구를 가진 석축저장고를 포함하여 북주北周 동전인 오행대포五行大布(574년 주조) 등이 발견되어 당시 이곳이 국제 교류의 중심지였으며 백제왕도로서의 역사적 정체성과 가치를 밝히고 있다.

 

백제, 또 하나의 왕도 익산

Iksan, One of the Capitals of Baekje

익산 역사 문화 연대기
익산 역사 문화 연대기
백제왕궁 사진
백제왕궁 사진

 

무왕의 정치적 중심 왕궁을 짓다

Building a Royal Palace, a Political Center of King Mu

 

익산 백제왕궁박물관과 왕궁리 5층석탑

지난 2008년 개관한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약 1년의 공사를 통해 백제왕궁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 되었습니다. 현재는 임시개관 형식으로 운영중입니다.2022년 06월에 찍은 영상 함께 보시면서 백제

jeonjucastelblog.tistory.com

백제왕궁 Baekje Royal Palace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 / 세계유산 World Heritage Site

용화산 남측 한줄기에는 수 많은 사람이 다양한 집무를 보았던 시설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는 정원 그리고 내부의 속사정을 감추며 사방으로 펼쳐진 담장 길을 갖춘 장소가 위치하고 있다. <관세음응험기>,<대동지지> 등의 기록과 수십 년의 발굴조사와 연구자료를 기반으로 밝혀진 백제 제30대 무왕이 천도하여 조성한 백제의 왕궁(왕궁리유적)이다.

왕궁리유적지
왕궁리유적지

 

익산 백제왕궁은 남쪽이 낮아지는 구릉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를 편평하게 하도록 기초단계부터 계획적으로 경사면을 따라 대지를 평탄하게 다졌다. 자연지형을 활용하면서 남쪽에는 대형건물을 포함한 부속건물 그리고 북쪽에는 정원과 공방 등을 조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방에는 남북 492m, 동서 234m의 직사각형 구조의 궁장은 2:1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백제 후기에 제작된 각종 토기와 정밀한 세공을 통해 제작된 금·유리제품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석 등 수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왕궁리오층석탑
왕궁리오층석탑

 

익산백제 왕궁은 구조와 형태가 중국의 고대 도성 구조와 매우 유사하고 삼국시대 궁궐의 구조·기능과 축조 과정 그리고 고대 동아시아 국가의 문화 교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인정받아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하나로 등재되었다.

아름다운 익산 8경
아름다운 익산 8경

 

아름다운 익산 8경

백제왕궁-제석사지-미륵사지-오금산성-금마도토성-미륵산성-익산쌍릉-익산연동리석조여래좌상 [포스팅을 모두 했음]

개인적으로 이 8곳의 유적지가 언제부터 익산 8경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명칭 수정이 필요하다면 "익산 백제역사문화 8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익산 8경
익산 8경?

 

기대가 컸던 탓인지, 건물 규모에 비해 다소 아쉬운 전시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세계유산관 1층의 유적지 설명 판넬과 벽면 페인트 마감은 깔끔함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여러 전시관을 방문해 보았지만, 이곳처럼 페인트칠이 덧칠되거나 희미하게 보이는 부분이 눈에 띄는 곳은 드물었습니다. 사진으로 담으니 더욱 도드라져 보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언젠가 보수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익산 세계유산센터
익산 세계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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